대한민국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
1. 박근혜 정권의 성취에 대한 평가
1) 국내정치
지난번 총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했다는 사실이 가리키듯, 박근혜 정권의 국내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낮다. 보수 시민들에겐 허망하게도, 박대통령의 납득하기 어려운 정치가 최순실 추문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어지럽고 요령부득이었던 인사행태는 현 정권의 도덕성을 허물었고 국정 전반의 부실을 낳았다. 다른 편으로는, 북한 정권을 추종하고 대한민국의 전복을 기도한 ‘통일진보당’을 검거하고 법원의 해산명령을 통해 우환의 뿌리를 잘라낸 일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이념을 넘어 실용으로 ”라는 구호를 내걸고 우리사회의 가장 근본적 문제인 이념의 좌경화를 외면한 터라, 좌파 정권들이 물러난 뒤에도 우리 사회는 이념적 건강이 점점 악화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수행한 것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한민국을 헐뜯고 좌파이념을 전파하는 중등교육 역사교과서 들이 우리 사회에 끼친 해독은 참으로 컸다. 그런 상황에 대한 처방인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비록 실행은 서툴렀지만,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2) 외교
중국이 초대강국으로 떠오르면서, 우리 외교의 중심적 과제는 중국의 점증하는 영향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키는 일이 되었다. 이 일에서 박근혜 정권은 비참하게 실패했다. 중국에 맞서려면, 미국과의 동맹으로 우리의 대항력을 늘려야 한다. 현 정권은 거꾸로 중국에 굴종하면서 중국의 환심을 사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 어리석은 정책으로 우리는 중국에 업신여김을 당하고 미국으로부터는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미동맹이 미일동맹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놓치고 일본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 일도 아쉽다. 그래도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강화하기 위한 선결조건인 ‘개성공단 폐쇄’를 단행한 것은 박대통령의 큰 업적이다. 개성공단은 북한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힌 일이어서 대통령으로선 정치적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더욱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
3) 안보
주한미군의 최종단계 사드 미사일 포대 배치는 좌파의 선동선전, 배치 후보지역주민들의 이기적 행태, 그리고 중국의 외교적 압력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 정권은 꿋꿋이 추진해왔다. 사드 배치가 무산되면 한미동맹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현 정권의 안보정책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4) 경제
시장경제의 원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경제민주화’를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경제공약으로 내건 순간, 박근혜 정권의 경제성적은 결정되었다. 경제민주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뒤늦게 깨닫고 그것의 실행을 슬그머니 중지했지만 공식적으로 철회하지 않은지라, 경제는 불필요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결국 우리 경제 는 빠르게 활력을 잃었고 국민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졌다. 특히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졌다. 생각해보면, 이런 경제 침체가 박대통령이 맞은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다. 살기 어려워지면 민심이 사나워지고, 사나운 민심은 조만간 지도자에게로 향한다. 박대통령에겐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고 일컬어졌지만 지지자들의 박대통령에 대한 실망은 이미 오래전에 그 콘크리트 구조물을 허약하게 만들어서 가벼운 충격에도 무너질 지경이 되었다. 만일 경제가 성장하고 사람들의 삶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다면, ‘최순실’추문이 그렇게 큰 폭발력을 지닐 수 있었을까?
박대통령이 측근들과 불법행위들을 ‘공모’했다는 검찰의 발표는 충격적이지 만, 객관적으로 살피면 현 정권의 잘못은 역대 정권들보다 심각한 것은 아니다. 측근들의 전횡에선 김영삼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훨씬 심했고, 대기업의 재산권의 침해에선 김대중 정권은 거의 사회주의 수준이었으며, 대기업들로부터 거둔 준조세는 현 정권이 가장 적었다. 대통령 자신의 불법행위를 따지더라도 북한정권에 거액을 비밀리에 불법 송금한 김대중 대통령의 행위보다 더 중대한 불법행위가 박대통령에 의해 저질러졌을 것 같지는 않다.
경제가 침체해서 지지의 수위가 낮아지면 배는 숨어있던 온갖 암초들을 만난다. ‘경제민주화’공약을 빼놓고는 현 정권의 경제정책들은 거의 다 옳은 방향을 지향했다. 반어적으로 이제는 그 사실이 문제가 된다. 현 정권의 정치적 역량의 부족에 ‘국회선진화법’으로 국회가 마비되었다는 사정이 겹쳐서 현 정권의 경제개혁은 청사진만 제시되었을 뿐 실행된 정책들이 드물다. 이제 그런 개혁 정책들은 추문에 오염 되었고 가까운 장래에 다시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5) 총평
이렇게 보면, 현 정권의 성취가 평소의 느낌보다는 상당히 크다는 것이 드러난다. 외교에서 중국에 대한 편향과 경제에서 경제민주화를 빼 놓으면 다음 정권이 그대로 이어받을 만한 정책들을 추구해왔다. 비록 능력이 부족했고 정치적 환경이 어려워서 실제로 이룬 것들은 크지 않지만 무능하다고 비난 받을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현 정권의 정책과 성취를 박대통령 자신을 둘러싼 추문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긴요하다. 벌써 현 정권의 정책들을 “최순실이 간여했다”는 주장으로 폄하해서 고사시키려는 시도가 나온다.
2. 보수의 고뇌
4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맞섰을 때 박후보와 함께 일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안되면 큰일이지만, 돼도 큰일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박근혜가 되면 보수가 망하고 문재인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탄식도 들렸다. 즉 보수는 ‘덜 나쁜 후보’를 뽑은 것이다. 두 후보를 변별하는 여러 특질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안보에 관한 생각과 정책이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그런 사정을 유창하게 드러낸다.
문재인 후보가 줄곧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보좌관이었으므로 먼저 노무현 정권의 안보정책을 살피는 것이 순서다. 휴전이후 대한민국의 안보가 가장 불안했던 시기는 노무현 정권이 나라살림을 맡았을 때였다. 기억하는가, 당시 떠돌았던 “적화는 되었는데 통일은 안되었다”라는 절망적 농담을. 근자에 새삼 밝혀져 문재인 후보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국제연합의 북한 인권 결의안 기권’문제는 이미 당시에 노무현 정권이 민감한 외교와 안보문제들에 관해 북한 김정일 정권의 ‘지침’을 받았음을 섬뜩하게 보여주었다.
씁쓸하게도, (미국과 한국사이가 소원해지도록) 만든 것은 우리 자신이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드러내놓고 미국에 대해 비우호적 태도를 보였다. 반미감정은 조직적으로 키워졌고, 주한미군에 관한 협상과정에서 정부는 미국의 분노를 일부러 일으켜 철군을 유도하는 듯한 정책을 폈다. 북한 핵무기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에서 한국은 근본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두둔해서 미국의 발목을 잡았다. 심지어 미국이 제공한 군사기밀들이 북한으로 유출되는 상황까지 나와서 미국이 중요한 정보를 아예 한국에 제공하지 않게 되었다.
노무현정권의 실질적 제2인자였던 문재인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지금쯤 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미군의THAAD 배치를 맨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사실에서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한국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THAAD는 주한미군을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보호할 무기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은반체계를 개발했고 계속 개량해 왔으므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려면 필수적인 무기이다. 그런 무기의 배치를 반대한다면 주한미군을 북한의 핵무기 앞에 아무런 방어조치 없이 노출시키라고 요구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얘기엔 미군에게 한국에서 나가도 좋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리고 주한미군이 나가도 좋다는 얘기엔 대한민국을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그대로 노출시킨다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담겼다. 국방에 관한 이런 견해와 정책이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작용했다면 대한민국의 안보는 분명히 허약해졌을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도 반대한다. 그러나 만일 일본이 주일미군이 한반도에 출격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미군으로선 한국을 도울 길이 없을 뿐 아니라 한국을 도울 이유가 사라진다. 본질적으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해왔고 그런 전략적 판단에 따라 행동해 왔다. 지금도 우리가 유사시 일본의 큰 경제력과 발전된 제조업에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부쩍 커진 북한의 위협에 대해 두 나라가 군사정보를 공유하자는 뜻이다. 그것을 문제인 후보가 이끄는 제1야당은 “대한민국 군 정보를 일본에 갖다 바치는 매국협정”이며 “일본 군국주의 망령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일본은 대잠수함 감시부문에서 세계 2위의 능력을 갖고 있다. 협정이 체결되면 정보와 첩보수집 출처가 더욱 다양해져 북의 잠수함 활동을 좀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이 획득한 북한 핵 미사일 관련 정찰위성 정보도 미국을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얻는 게 가능하다. 한국은 이미 러시아를 포함한 32 개국과 군사정보공유협정을 맺고 있고 중국에도 제안해 놓은 상태다. 그런데도 일본만은 안 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본은 이미 60여 개국과 이 협정을 맺고 있다. 국익을 위한 군사정보교류협정조차 반대하는 야당지도자에게 어떻게 군통수권을 맡길 수 있겠는가.
위에서 인용한 ‘동아일보’의 사설이 지적했듯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너무 늦었다. 4년 전 이명박 정권이 일본과 협의를 끝냈지만 정치력의 부족으로 체결에 실패한 터이다. 북한의 후견국 러시아와 이미 체결했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전적으로 지원한 중국에 제안한 협정을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군사적 우방 일본과 체결하면 “매국협정”이 된다고 다음 대통령은 자기라고 믿은 정치지도가가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아래서 이처럼 허약해졌을 안보는 사회의 모든 분야들 에서 갖가지 2차 및 3차 효과들을 낳았을 것이다. 특히, 경제 분야의 혼란과 불안은 클 터이다. 자본의 이탈과 투자의 저조는 경제를 허약하게 만들고 허약해진 경제는 국방력의 약화와 패배주의를 부추기고 다시 경제활동을 위축시켜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한국 국민들의 해외 탈출도 빠르게 늘어났을 것이고 이념적 분열은 격화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보수의 고뇌가 있다. 도덕적 권위를 잃고 불법행위에 연루되어 대통령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후보라는 것을 4년 전에 알았더라도 그 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상황이 대한민국 보수를 고뇌하게 만든다. 역설적으로 그 곤혹스러운 상황이 대한민국 보수가 지켜야할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아프게 일깨워준다.
자유로운 사회들에서 보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체제를 감싸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지향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로운 사회”이며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위에 서 있다. ‘보수’ 또는 ‘우파’라 불리는 “자유주의”는 어떤 상황 아래서도 이 “보편적 그리고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을 기본 사명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복 거 일 / 소설가
※ 본 칼럼은 소설가 복거일씨가 지은 책자 “대한민국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2016년 12월 10일, 출판사:북앤피플)”의 ‘서언’에 나오는 글로, 저자의 승낙을 얻어 한미우호협회 편집위원회에서 일부 수정 편집한 글입니다.
대한민국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
1. 박근혜 정권의 성취에 대한 평가
1) 국내정치
지난번 총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했다는 사실이 가리키듯, 박근혜 정권의 국내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낮다. 보수 시민들에겐 허망하게도, 박대통령의 납득하기 어려운 정치가 최순실 추문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어지럽고 요령부득이었던 인사행태는 현 정권의 도덕성을 허물었고 국정 전반의 부실을 낳았다. 다른 편으로는, 북한 정권을 추종하고 대한민국의 전복을 기도한 ‘통일진보당’을 검거하고 법원의 해산명령을 통해 우환의 뿌리를 잘라낸 일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이념을 넘어 실용으로 ”라는 구호를 내걸고 우리사회의 가장 근본적 문제인 이념의 좌경화를 외면한 터라, 좌파 정권들이 물러난 뒤에도 우리 사회는 이념적 건강이 점점 악화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수행한 것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한민국을 헐뜯고 좌파이념을 전파하는 중등교육 역사교과서 들이 우리 사회에 끼친 해독은 참으로 컸다. 그런 상황에 대한 처방인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비록 실행은 서툴렀지만,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2) 외교
중국이 초대강국으로 떠오르면서, 우리 외교의 중심적 과제는 중국의 점증하는 영향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키는 일이 되었다. 이 일에서 박근혜 정권은 비참하게 실패했다. 중국에 맞서려면, 미국과의 동맹으로 우리의 대항력을 늘려야 한다. 현 정권은 거꾸로 중국에 굴종하면서 중국의 환심을 사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 어리석은 정책으로 우리는 중국에 업신여김을 당하고 미국으로부터는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미동맹이 미일동맹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놓치고 일본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 일도 아쉽다. 그래도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강화하기 위한 선결조건인 ‘개성공단 폐쇄’를 단행한 것은 박대통령의 큰 업적이다. 개성공단은 북한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힌 일이어서 대통령으로선 정치적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더욱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
3) 안보
주한미군의 최종단계 사드 미사일 포대 배치는 좌파의 선동선전, 배치 후보지역주민들의 이기적 행태, 그리고 중국의 외교적 압력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 정권은 꿋꿋이 추진해왔다. 사드 배치가 무산되면 한미동맹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현 정권의 안보정책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4) 경제
시장경제의 원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경제민주화’를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경제공약으로 내건 순간, 박근혜 정권의 경제성적은 결정되었다. 경제민주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뒤늦게 깨닫고 그것의 실행을 슬그머니 중지했지만 공식적으로 철회하지 않은지라, 경제는 불필요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결국 우리 경제 는 빠르게 활력을 잃었고 국민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졌다. 특히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졌다. 생각해보면, 이런 경제 침체가 박대통령이 맞은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다. 살기 어려워지면 민심이 사나워지고, 사나운 민심은 조만간 지도자에게로 향한다. 박대통령에겐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고 일컬어졌지만 지지자들의 박대통령에 대한 실망은 이미 오래전에 그 콘크리트 구조물을 허약하게 만들어서 가벼운 충격에도 무너질 지경이 되었다. 만일 경제가 성장하고 사람들의 삶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다면, ‘최순실’추문이 그렇게 큰 폭발력을 지닐 수 있었을까?
박대통령이 측근들과 불법행위들을 ‘공모’했다는 검찰의 발표는 충격적이지 만, 객관적으로 살피면 현 정권의 잘못은 역대 정권들보다 심각한 것은 아니다. 측근들의 전횡에선 김영삼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훨씬 심했고, 대기업의 재산권의 침해에선 김대중 정권은 거의 사회주의 수준이었으며, 대기업들로부터 거둔 준조세는 현 정권이 가장 적었다. 대통령 자신의 불법행위를 따지더라도 북한정권에 거액을 비밀리에 불법 송금한 김대중 대통령의 행위보다 더 중대한 불법행위가 박대통령에 의해 저질러졌을 것 같지는 않다.
경제가 침체해서 지지의 수위가 낮아지면 배는 숨어있던 온갖 암초들을 만난다. ‘경제민주화’공약을 빼놓고는 현 정권의 경제정책들은 거의 다 옳은 방향을 지향했다. 반어적으로 이제는 그 사실이 문제가 된다. 현 정권의 정치적 역량의 부족에 ‘국회선진화법’으로 국회가 마비되었다는 사정이 겹쳐서 현 정권의 경제개혁은 청사진만 제시되었을 뿐 실행된 정책들이 드물다. 이제 그런 개혁 정책들은 추문에 오염 되었고 가까운 장래에 다시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5) 총평
이렇게 보면, 현 정권의 성취가 평소의 느낌보다는 상당히 크다는 것이 드러난다. 외교에서 중국에 대한 편향과 경제에서 경제민주화를 빼 놓으면 다음 정권이 그대로 이어받을 만한 정책들을 추구해왔다. 비록 능력이 부족했고 정치적 환경이 어려워서 실제로 이룬 것들은 크지 않지만 무능하다고 비난 받을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현 정권의 정책과 성취를 박대통령 자신을 둘러싼 추문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긴요하다. 벌써 현 정권의 정책들을 “최순실이 간여했다”는 주장으로 폄하해서 고사시키려는 시도가 나온다.
2. 보수의 고뇌
4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맞섰을 때 박후보와 함께 일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안되면 큰일이지만, 돼도 큰일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박근혜가 되면 보수가 망하고 문재인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탄식도 들렸다. 즉 보수는 ‘덜 나쁜 후보’를 뽑은 것이다. 두 후보를 변별하는 여러 특질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안보에 관한 생각과 정책이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그런 사정을 유창하게 드러낸다.
문재인 후보가 줄곧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보좌관이었으므로 먼저 노무현 정권의 안보정책을 살피는 것이 순서다. 휴전이후 대한민국의 안보가 가장 불안했던 시기는 노무현 정권이 나라살림을 맡았을 때였다. 기억하는가, 당시 떠돌았던 “적화는 되었는데 통일은 안되었다”라는 절망적 농담을. 근자에 새삼 밝혀져 문재인 후보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국제연합의 북한 인권 결의안 기권’문제는 이미 당시에 노무현 정권이 민감한 외교와 안보문제들에 관해 북한 김정일 정권의 ‘지침’을 받았음을 섬뜩하게 보여주었다.
씁쓸하게도, (미국과 한국사이가 소원해지도록) 만든 것은 우리 자신이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드러내놓고 미국에 대해 비우호적 태도를 보였다. 반미감정은 조직적으로 키워졌고, 주한미군에 관한 협상과정에서 정부는 미국의 분노를 일부러 일으켜 철군을 유도하는 듯한 정책을 폈다. 북한 핵무기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에서 한국은 근본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두둔해서 미국의 발목을 잡았다. 심지어 미국이 제공한 군사기밀들이 북한으로 유출되는 상황까지 나와서 미국이 중요한 정보를 아예 한국에 제공하지 않게 되었다.
노무현정권의 실질적 제2인자였던 문재인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지금쯤 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미군의THAAD 배치를 맨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사실에서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한국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THAAD는 주한미군을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보호할 무기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은반체계를 개발했고 계속 개량해 왔으므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려면 필수적인 무기이다. 그런 무기의 배치를 반대한다면 주한미군을 북한의 핵무기 앞에 아무런 방어조치 없이 노출시키라고 요구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얘기엔 미군에게 한국에서 나가도 좋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리고 주한미군이 나가도 좋다는 얘기엔 대한민국을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그대로 노출시킨다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담겼다. 국방에 관한 이런 견해와 정책이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작용했다면 대한민국의 안보는 분명히 허약해졌을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도 반대한다. 그러나 만일 일본이 주일미군이 한반도에 출격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미군으로선 한국을 도울 길이 없을 뿐 아니라 한국을 도울 이유가 사라진다. 본질적으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해왔고 그런 전략적 판단에 따라 행동해 왔다. 지금도 우리가 유사시 일본의 큰 경제력과 발전된 제조업에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부쩍 커진 북한의 위협에 대해 두 나라가 군사정보를 공유하자는 뜻이다. 그것을 문제인 후보가 이끄는 제1야당은 “대한민국 군 정보를 일본에 갖다 바치는 매국협정”이며 “일본 군국주의 망령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일본은 대잠수함 감시부문에서 세계 2위의 능력을 갖고 있다. 협정이 체결되면 정보와 첩보수집 출처가 더욱 다양해져 북의 잠수함 활동을 좀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이 획득한 북한 핵 미사일 관련 정찰위성 정보도 미국을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얻는 게 가능하다. 한국은 이미 러시아를 포함한 32 개국과 군사정보공유협정을 맺고 있고 중국에도 제안해 놓은 상태다. 그런데도 일본만은 안 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본은 이미 60여 개국과 이 협정을 맺고 있다. 국익을 위한 군사정보교류협정조차 반대하는 야당지도자에게 어떻게 군통수권을 맡길 수 있겠는가.
위에서 인용한 ‘동아일보’의 사설이 지적했듯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너무 늦었다. 4년 전 이명박 정권이 일본과 협의를 끝냈지만 정치력의 부족으로 체결에 실패한 터이다. 북한의 후견국 러시아와 이미 체결했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전적으로 지원한 중국에 제안한 협정을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군사적 우방 일본과 체결하면 “매국협정”이 된다고 다음 대통령은 자기라고 믿은 정치지도가가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아래서 이처럼 허약해졌을 안보는 사회의 모든 분야들 에서 갖가지 2차 및 3차 효과들을 낳았을 것이다. 특히, 경제 분야의 혼란과 불안은 클 터이다. 자본의 이탈과 투자의 저조는 경제를 허약하게 만들고 허약해진 경제는 국방력의 약화와 패배주의를 부추기고 다시 경제활동을 위축시켜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한국 국민들의 해외 탈출도 빠르게 늘어났을 것이고 이념적 분열은 격화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보수의 고뇌가 있다. 도덕적 권위를 잃고 불법행위에 연루되어 대통령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후보라는 것을 4년 전에 알았더라도 그 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상황이 대한민국 보수를 고뇌하게 만든다. 역설적으로 그 곤혹스러운 상황이 대한민국 보수가 지켜야할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아프게 일깨워준다.
자유로운 사회들에서 보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체제를 감싸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지향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로운 사회”이며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위에 서 있다. ‘보수’ 또는 ‘우파’라 불리는 “자유주의”는 어떤 상황 아래서도 이 “보편적 그리고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을 기본 사명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복 거 일 / 소설가
※ 본 칼럼은 소설가 복거일씨가 지은 책자 “대한민국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2016년 12월 10일, 출판사:북앤피플)”의 ‘서언’에 나오는 글로, 저자의 승낙을 얻어 한미우호협회 편집위원회에서 일부 수정 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