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 Bulletin



GT Bulletin 제23호 (5․9 선택과 한·미 관계)

5․9 선택과 한·미 관계

무서운 현실주의자 트럼프는 한국에서 반미를 외치고 중국이 대북제재에 협조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손을 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지난 4월 초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 해결책을 위한 양 정상 간의 모종의 밀약이 의심되는 가운데, 일본이 이제 ‘전쟁할 수 있는 강한 나라’로 변신하고 재무장을 가속화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한다면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떨어지게 되며, 그렇게 될 경우 미국으로서는 “굳이 싫다”는 한국을 끌어안고 중국과 게임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한국 국민은 눈앞에 다가온 5월의 대통령 선거 시에 이러한 전략적 상황을 심각하게 고려해야한다.

한 달 후 대선 결과 한국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 한·미 동맹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이며, 한국의 안보는 지금처럼 지켜질 것인가―이것이 지금 한국의 절체절명의 문제다. 낙관적으로 봐서 한·미의 ‘관계’는 유지되더라도 적어도 군사적 ‘동맹’은 약화될 것이고 비관적으로 보면 동맹 관계에 이상이 생겨 미국은 일본 열도를 방어선으로 하는 ‘애치슨라인’으로 후퇴하고 한국은 대륙 쪽으로 방치될 수 있다.

그 한쪽의 열쇠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쥐고 있다. 그가 내세운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는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 제일주의의 복합이다. 그는 외교-정치인이 아니라 현실-거래주의자다. 실익이 있으면 아베 일본 총리의 경우처럼 두 손을 잡아 흔들고 미국의 이익에 배치되면 메르켈 독일 총리의 경우처럼 악수를 외면하는 ‘무서운’ 사람이다.

다른 한쪽의 열쇠는 한국의 새 대통령과 그의 정부 손에 놓여 있다. 좌파가 이겨 반미 내지 중도적 정책이 현실화된다면 한·미 관계는 급속히 냉각될 것이다. 사드 배치를 재검토하고 개성공단을 재개하는 등 미국의 대북 제재에 비협조적이면서 미국에 노(no)를 연발하며 반미의 기세를 노골화해 미군 주둔 비용 증액에 난색을 표하고 주한 미군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질 때 트럼프라는 ‘무서운 현실주의자’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는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를 가르는 애치슨라인을 설정하고 한국에서는 손을 떼는 극단적 선택을 능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트럼프가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여건은 이렇다.

첫째는 이번 대선에서의 한국인의 선택이다. 좌파 세력이 그동안 공개리에 천명해온 대미·대북·대중·대일 정책을 충분히 인지한 상황에서 한국인이 내린 결론이라면 미국은 이를 거스를 명분이 없다.

둘째, 보수 세력의 궤멸이다. 과거 좌파 정권 때도 반미적 또는 친북적 노선은 충분히 노정됐었지만 그때는 보수·우파 세력이 건재했다. 보수·우파가 정치적으로 건강하고 좌파 정부를 견제할 힘이 있었기에 미국은 좌파의 주장에 이끌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셋째의 여건은 중국의 자세다. 중국은 대북 영향력 행사에 미온적이다. 트럼프의 압력으로 북한에 압력을 가할 경우 공산국가 맹주로서의 지위와 권위를 잃을 것이기에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던 애슈턴 카터는 지난 2일 ABC 방송에서 “미국은 역대 중국 지도자들에게 북한 문제에 협조를 구했지만 중국은 북한에 특유한 역사적·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선제타격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카터는 “미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할 경우 북한의 반격과 한·미의 재반격으로 한반도에서는 6·25전쟁 이후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선제타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트럼프는 중국을 통해 압력을 가할 수도 없고, 미국 스스로 선제타격도 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릴 것이다. 결국 중국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난주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 어떤 명시적 언급도 없이 마감된 이면에는 중국의 모종의 언약과 미국의 묵시적 양해가 있었을 여지를 말해주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만을 믿고 안보에 무신경해 온 우리 정신 상태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가? 그래서 강대국 간의 밀약을 의심해야 하는 것이 한국 같은 약소국의 처지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의 밀약이 새삼 떠오른다.

넷째는 일본의 재무장이다. 일본이 ‘전쟁할 수 없는 나라’였을 때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맨몸으로 개입해야 했고 그나마 동맹국인 한국의 역할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강한 나라’로 변신했고 미국과의 관계도 더욱 굳건해진 상황에서는 미국은 든든한 안전판이 생긴 셈이다. 굳이 “싫다”는 한국을 끌어안고 중국과 게임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어졌다고 보는 관측이 가능하다.

다섯째는 미국 국민의 변화이고 시대의 변화이다. 지금은 강대국이 짜고 작은 나라의 정치 체제를 바꾸거나 지도자를 갈아치우는 방식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또 북한이 미국의 인명과 재산을 건드리지 않는 한 단순히 위험만으로 보복할 수 없는 시대다. 게다가 세기에 걸쳐 온갖 세계 문제에 개입해온 미국은 이제 과부하에 걸려 있고 국민은 피곤하다. 트럼프의 등장은 그런 민심의 결과다.

그러나 이 모든 여건과 상황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것은 한국인의 선택이다. 한국이 여전히 한·미 동맹의 틀 안에서 상호 보완하며 안보와 경제의 호혜성을 유지해 나가길 원한다면 미국은 굳이 모험할 이유가 없고 현상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국민의 선택이 미국의 존재와 개입을 재고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미국은 더 이상 이 땅에 연연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시대의 변화를 냉철하게 읽는 방법이다.

 

※이 글은 조선일보 2017년 4월 11일자 신문 A34면에 실린 <김대중 칼럼>의 글을 조선일보의 사용 승인을 얻어 한미우호협회에서 일부 수정 편집한 글입니다.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