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슈&분석 Issue&Analysis] 중동정세 전망과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중동정세 전망과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성 일 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


  작년 10월 7일 하마스가 알아크사 홍수작전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중동정세는 거대한 격변을 겪고 있다. 20세기 중동분쟁이 아랍-이스라엘 분쟁이었다면 20세기 말 1979년부터 21세기는 이란-이스라엘 분쟁의 시대이다. 20세기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분쟁이었다면 21세기는 이스라엘과 이란 그리고 이란의 연대조직 간의 분쟁이다. 20세기가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압박하기 위한 전쟁이었다면 21세기는 이스라엘의 절멸을 추구하는 전쟁이었다. 그 정점에 작년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작전이 있다.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시작된 분쟁은 역내로 확전되었다. 하마스를 돕기 위해 가장 먼저 참전한 조직은 레바논의 헤즈볼라이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란이 레바논의 시아파 조직을 규합해 만든 단체이다. 헤즈볼라의 주 목표는 역내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영향력을 줄이고 결국 퇴출시키는 것이다. 헤즈볼라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 다음은 예멘의 후티 세력이 하마스와 연대를 위해 대이스라엘 항전에 참여했다. 후티는 이란의 12이맘파 시아파와 다른 자이디 시아파이다. 후티는 이란의 지원으로 발전된 드론과 미사일 무기체계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다. 후티는 홍해를 지나는 이스라엘 선박과 서방 선박 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어 물류와 공급망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전쟁 중 주 시리아 이란 영사관을 공습해 이란혁명수비대 알고도스의 장성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를 암살했다. 이에 대응해 이란은 4월 14일 최초로 이스라엘 본토를 350여기의 탄도미사일, 순항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해 공격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와 요르단은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과 드론 60%를 요격해 이스라엘을 도왔다. 미국은 항공모함을 걸프지역으로 급파해 이스라엘을 돕고 확전을 차단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처음으로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한 것은 이란의 ‘전략적 인내’가 변화 조짐을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신감으로 충만한 이란이 역내에서 적극적인 군사대응으로 전략을 수정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란의 마사일과 드론을 막아낸 방공망은 2020년 이스라엘과 UAE와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해 관계를 정상화한 이후 미국이 추진한 중동방공망(MEAD)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이란의 동향 정보를 제공하며 이스라엘을 도왔다. 요르단은 전투기를 동원해 이란의 드론을 격추시켰다. 새로운 방공망 체계는 사우디와 UAE도 유사시 이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했다.


  주지하듯 가자 전쟁은 단순히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이 아니다. 가자 전쟁을 넓은 시각으로 보면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이다. 하마스는 오랜 기간 이란의 무기와 재정 지원을 받아왔다. 헤즈볼라와 후티 역시 이란이 지원해온 조직으로 이란의 연대조직으로 볼 수 있다. 이란이 반이스라엘 반미국 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이다. 이전엔 대표적인 친미 국가였으나 혁명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이란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억압하는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것을 국가의 과업으로 설정하고 역내에 연대조직을 조성했다. 이런 연대조직으로 ‘저항의 축’을 만들고 이스라엘을 에워싸는 ‘하나의 전선’을 구축해 ‘불의 고리’를 만들어온 게 바로 이란이다. 작년 가자 지구 전쟁 이후 이 저항의 축이 불의 고리를 만들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1967년 6일 전쟁: 이슬람주의 세력의 부활


  존스 홉킨스 대학의 이란 전문가 발리 나스르 교수는 이미 2000년대 초반 시아파의 부활(The Shia Revival)이란 저서를 통해 시아파 시대의 도래를 예견했다. 20세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중동은 순니파 주도의 세계였다.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이미 19세기에 논의되기 시작한 아랍 민족주의가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전 아랍과 이슬람 세계의 주 담론이었다. 1950년대 이후 중동세계를 구가한 사상은 누가 뭐라해도 아랍민족주의였다. 1952년 이집트 자유장교단의 혁명 이후 가말 압둘 나세르는 이집트는 물론 아랍세계를 통합하기 위해 아랍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아랍민족주의 담론이 시들기 시작한 것은 3차 중동전쟁에서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에 무너진 이후부터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6일만에 전쟁에 패하자 아랍 시민들은 일제히 아랍민족주의에 실망하고 허탈감에 빠졌다. 이들을 달래줄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이슬람주의자들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세속 이데올로기 아랍민족주의가 아니라 이슬람이 이슬람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이후 중동지역에서 이슬람 세력의 활약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아프간 무자헤딘의 등장은 이슬람 세력의 등장을 예고했다. 같은 해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중동과 이슬람 세계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란의 혁명은 이슬람법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전혀 새로운 통치 시스템을 시도했으며 이슬람 통치의 실현을 꿈꾸는 이슬람주의자에게 희망을 주었다. 1981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암살 공격에 쓰러졌다. 1982년 이란은 레바논에 연대조직 헤즈볼라를 창설해 역내 헤게모니 확보에 매진한다. 1987년 가자 지구 무슬림형제단으로 출발했던 이슬람주의 단체는 이름을 바꿔 하마스로 재탄생한다. 1988년 오사마 빈라덴은 순니파 지하디스트 살라피 단체 알카에다를 창설한다. 그야말로 이슬람주의 세력의 대약진이라고 할 수 있다.


순니파 중심의 미국의 대중동정책


  미국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이란을 포함한 걸프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이란은 혁명 이후 반미로 돌아섰다.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사우디아라비아, UAE(아랍에미리트), 이집트와 쿠웨이트 등 순니파 국가들과 연대하며 중동정책을 추진해 왔다. 반면 중요한 정치 세력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던 시아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역내 시아파들은 정치·경제적 차별을 받아왔다. 이라크, 레바논, 파키스탄과 예멘의 시아파들은 오랜 기간 집권세력의 천대를 받아왔으며 경제와 사회적 차별 탓에 참담한 삶을 살아왔다. 이라크의 시아파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점차 차별을 받기 시작하면서 위축되기 시작했다. 레바논의 시아파는 순니파와 기독교인들의 등살에 밀려 최악의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예멘의 또 다른 시아파인 자이디파로 알려진 후티 세력은 순니파 집권세력의 차별을 받아오다가 점차 세력을 넓혀 강력한 무장조직으로 거듭났다. 2000년 이후 휴전을 위해 예멘 정부와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2014년 쿠데타로 수도 사나를 장악했다. 사회·경제적 차별을 받아온 시아파는 이란을 중심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이란은 1982년 레바논에서 천대받는 시아파를 규합하여 헤즈볼라를 창설하였고 예멘의 후티 세력이 사우디와 UAE의 공격에 곤경에 처하자 군사물자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2003년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 것은 이란에 축복이었다. 미국이 8년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을 괴롭혀온 후세인을 사형에 처하자 이란은 역내 유일한 맹주가 되었다. 역내 순니 정권의 맹주인 이라크가 무너지면서 팽팽한 균형에 균열이 가고 힘의 균형은 이란으로 기울게 된다. 이라크 인구의 절반이 시아파인 만큼 이란이 이라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현재 이란을 빼고 이라크의 정세를 논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란의 헤게모니는 위에서 논한 연대조직에 그치지 않는다. 이란의 재래식 무기, 특히 탄도미사일과 드론은 주변 순니 아랍국가에 큰 위협이 된다. 실제 2019년 예멘의 후티 와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 정유회사 아람코의 탈황시설 두 곳을 타격하자 사우디의 일일 원유생산량이 반토막났다. 국제유가를 결정짓는 세계 최고의 정유회사가 드론과 순항미사일 공격에 타격을 입자 사우디는 즉각 미국의 조치를 원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침묵하였다. 트럼프 역시 이란을 자극해 역내에 큰 무력충돌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을 피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무대응에 충격을 받은 사우디와 UAE는 자국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원칙은 유지하되, 방산체계의 다변화를 위해 러시아와 중국과 적극적인 협력을 모색한다.


  2018년 트럼프가 이란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후 이란은 핵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현재 이란은 핵문턱 국가로 짧게는 1주일 길게는 몇주안에 핵탄두를 만들수 있는 물질과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란이 핵탄두 개발에 성공하면 사우디를 필두로 역내 순니 국가들은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중동지역이 핵도미노화 되는 것이다. 걸프 아랍국가들이 꾸준히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오랜 정적이었던 이스라엘과도 손을 잡으려는 이유는 이란의 막강한 군사력 때문이다. 2020년 UAE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것은 미국의 전폭적인 군사원조를 얻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물론 UAE는 방산 협력뿐만 아니라 첨단기술 협력을 위해 이스라엘이 필요하다. 사우디가 국내 여론의 반대뿐만 아니라 이슬람 세계의 역풍을 우려하면서도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구상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이란 때문이다.


  결국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역내 이란의 헤게모니는 확장되었고 여기에 순니파 아랍국가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중동지역 정치질서를 결정한다는 발리 나스르 교수의 예측은 오늘의 중동을 설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1981년 6개 걸프 아랍국가들이 걸프협력회의(GCC)를 창설한 것은 이란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ISIS(이슬람 국가)가 출현한 것은 2003년 이후 미국이 이라크에 시아파 정권을 수립하자 이에 반대하는 순니파와 오갈데 없어진 사담 후세인의 잔당들이 대거 ISIS에 합류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2014년 이라크가 ISIS 격퇴에 어려움을 호소하자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민병대(PMF)가 조성되었고 결국 이라크에서 ISIS를 몰아냈다. 이 작전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이란혁명수비대 알고도스의 여단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였다. 이란은 ISIS를 물리치는데 큰 역할을 한 PMF를 해체하지 않고 이라크 국내 정치에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 활용하였다. 결국 PMF는 이라크 정규군에 편입되었지만 여전히 친이란 성향을 보이고 있고 이란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이한 상황을 낳았다. 현 중동의 진영을 살펴보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순니 아랍국가가 연대하는 진영을 미국이 지원하고 있고, 이란은 자신의 연대조직과 여기에 맞서는 형국이다. 이란을 필두로 한 역내 시아파 세력과의 화해가 중동지역 안정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소수종파인 그들이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생존권과 자치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역내 부의 분배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과제임은 분명하나 왕도는 없다.


  가자지구의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이후 미국과 이란의 개입에 따른 확전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는 동맹의 중요성이다. 이스라엘의 비공식 동맹국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란과 이란의 연대조직의 전방위 공격을 이스라엘이 막아낼 수 있었을까? 미국의 탄약지원이 없으면 이스라엘은 장기전을 수행할 수 없다. 동맹은 유사시 우리를 구해줄 유일한 생명줄임을 일깨워 준다. 둘째는 자강 즉 자주국방이다. 아무리 든든한 동맹이 있어도 스스로 준비하지 않으면 동맹의 도움만으론 자신을 구하지못한다.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새로운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국방기술에 목숨을 걸 정도로 투자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든든한 동맹과 꾸준한 자주국방만이 살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