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합의 폐기 이후 우리의 대북 대응 방안
김 열 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들어가며
2018년 9월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간 군사합의’가 채택되었다. 한국은 이를 충실히 지켜왔으나 북한은 밥 먹듯이 이를 어겼다. 서해 완충구역에 해안포와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심지어 한국 영토에 무인기를 날려 보내기도 했다. 북한이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정찰위성을 발사하자 한국은 9.19 합의의 일부 효력 정지를 발표했다. 북한의 기습을 방지하기 위한 전선에서의 정보 획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북한이 9.19 전면 폐기를 선언하면서 북한 GP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병력 및 장비를 투입하기 시작했고 해안포 등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우선 9.19 합의의 문제점과 북한의 위반 사례 등을 살펴본 후 북한의 향후 행동 전망과 이에 따른 우리의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9.19 군사합의의 문제점
9.19 군사합의의 문제점은 첫째, 밀실 합의였다는 점이다. 남북기본합의서나 비핵화 공동선언을 협의할 때는 2년 이상의 실무 및 고위급 회의를 거쳐 채택했다. 그러나 9.19 합의는 판문점 선언 5개월 만에 충분한 협의도 없이 추진되었고 체결 3일 전에야 일부 언론의 일부 보도만 있었을 뿐이다. 국민적 합의도 없었고 군 내부의 합의도 부족했다.
둘째, 군비통제의 기본 원칙에 역행했다는 점이다. 군비통제는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오판 가능성 줄여야 하나 오히려 감시활동을 금지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증대시켰다. 상대방에 대한 정찰활동을 더욱 강화하여 상대방의 움직임에 대한 투명성을 증가시켜야 하는데, 9.19합의는 공중에서의 활동을 제약함으로써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정보획득을 제약하게 만든 것이다. 유럽은 자국의 공중을 개방하는 공중개방조약(Treaty on Open Skies, 1992)까지 만들어 상대방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했던 것과 비교 된다.
셋째, 합의 사항에 대한 이행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검증 장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믿지만 검증하라(trust but verify)의 격언을 실천하지 못했다. 검증 장치가 없으면 북한이 합의 사항 준수 여부를 판단하기 곤란하다. 또한, 합의 사항을 위반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제도적 장치도 없다. 결국 상대방의 선의에 맡길 수밖에 없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체결했다. 협정 체결시 양국은 ‘상대국의 약속 위반이 의심스러울 경우 사찰팀을 연간 100회 이상 24시간 전 사전 통고 후 급파’할 수 있는 긴급사찰 제도를 보장했다. 이런 검증체계 덕분에 미소간의 핵군비통제는 수십 년간 지속될 수 있었다. 남북한은 1991년 비핵화공동선언에 서명하면서 상호사찰에 합의했다. 한국은 과거의 미소처럼 24시간 전 통고 후 긴급사찰을 연간 50회까지 허용하자고 했지만, 북한은 1개월 전 사전 통고하는 사찰을 연간 2회만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이는 사찰받기 전에 사찰대상을 미리 숨겨 놓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런 합의로 어떻게 군비통제가 성공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9.19합의 때에는 이런 검증 제도도 논의되지 않았다.
넷째, 9.19합의는 비핵화와 연계하지 않은 재래식 군비통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비핵화와 재래식 군비통제가 병행해서 가거나, 또는 비핵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 비핵화는 그대로 둔 채 재래식 군비통제만 추구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북한은 재래식 군비통제를 통해 한국에 족쇄를 채운 후 안심하고 핵미사일 개발에 전념할 수 있었다.
다섯째, 북한이 원하는 것(Cherry Picking) 위주로 9.19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은 핵화생무기, 미사일, 장사정포, 특수부대, 잠수함정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비대칭 전력은 공군/감시정찰 능력, 해군력, 한미동맹 등이 될 것이다. 그런데 9.19 합의는 한국의 비대칭전력 활동을 제약했다. 한국은 다양한 정찰수단을 가지고 있었지만, 북한의 정찰 수단은 허접한 무인기 정도였다. 북한은 전선지역에 대한 한국의 정찰을 막기 위해 비행 지역을 제한했던 것이다. 결국, 북한은 한국이 비교 우위에 있는 ‘눈’만 골라서 이를 막은 것이다. 해상 완충구역도 덕적도~초도까지 135Km로 합의했다. 이는 북방한계선 북쪽 50Km, 남쪽 85Km로써 한국에게 불리한 합의였다. 특히, 덕적도는 인천보다 더 낮은 위도의 섬이기에 서울이 위험할 수 있음에도 이를 수용한 것이다.
여섯째, 상호 동수 보유 또는 균형 감축의 원칙을 무시했다. 군축은 등가성의 원칙을 유지 하거나 최종 보유수가 같아야 한다. 북한 GP는 160여개였고, 한국 GP는 60개였다. 그렇다면 감축한 후의 GP 보유 개수가 같거나, 또는 같은 비율로 줄여야 했으나 줄이는 숫자를 같게 한 것이다. 유럽재래식무기감축(CFE) 조약은 1990년 서구의 나토(NATO)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간에 체결됐다. 재래식 무기 중에서 전차(2만대), 전투기(6800기), 공격 헬기(2000기), 장갑차(3만대), 대포(2만문) 등 5개 분야에 대해서 보유의 상한선을 두고 그 현황을 의무 검증하는 조약이었다. 5대 분야를 많이 보유했던 소련과 동구권이 훨씬 더 많이 감축했다. 9.19합의는 군비통제의 기본과 이런 역사적 사례조차 무시한 합의였다.
9.19 합의에 대한 북한의 위반 vs 한국의 준수 노력 및 대응
9.19 합의 이후 북한은 해안포 포문 개방 위반 등 3400여 회가 넘는 위반을 했다. 주요 위반 사례만 열거해도 17회가 넘는다. 김정은은 2019년 11월 서해의 창린도를 방문하여 해상완충구역으로 해안포를 사격할 것을 직접 지시한바 있다. 2020년 5월에는 한국 GP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2022년 10월부터 12월까지는 무려 13회에 걸쳐 동서해상 해상완충 구역에 포병사격을 했다. 1,300발이 넘는 포탄을 발사한 것이다. 2022년 11월에는 해상완충 구역에 단거리탄도미사일(SRBM)까지 발사했다. 그중의 한 발은 NLL 이남 26Km, 속초 동쪽 56Km 해상에 낙탄했다. 이 사고로 울릉도 일대에 경계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북한은 2022년 12월 말에 한국 영토에 5대의 무인기를 침입시켰고 그중의 일부가 서울 상공을 침입하기도 했다. 9.19 합의는 말할 것도 없고 남북기본합의서와 정전협정까지 위반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급기야 2023년 4월에는 군 통신선마저 일방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이에 반해 한국은 9.19합의 준수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전방지역에서의 야외기동훈련은 기동훈련 대신 지휘조만 참여하는 훈련으로 변경했고, 포사격을 위해 합의에 위반되지 않는 사격장으로 이동해서 사격 훈련을 하기도 했다. 특히 서해 5도를 사수하는 해병대 대원들은 포사격 훈련을 위해 육지로 이동해서 훈련했다. 이동 비용만 100억원 넘는 국방비가 소요되었다. 군단 및 사단 무인기는 비행 금지구역 제한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이런 합의 준수 노력과 함께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해군은 2022년 11월 울릉도 방향으로 날아온 북한의 단거리탄도미사일을 인양하여 분석한 결과, 북한제 SA-5 지대공 미사일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NLL 이남으로 발사한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한국의 F-15K와 KF-16이 공대지미사일 3발을 동해 'NLL 이북 공해상,북한이 도발한 미사일의 낙탄 지역과 상응한 거리'의 해상에 정밀 사격을 실시하였다. 북한이 무인기를 침투했을 때도 육군은 무인 정찰기 '송골매' 1대는 서쪽 내륙지역, 다른 1대는 동쪽 해안을 따라 군사분계선(MDL) 이북 5km 지점까지 진출해 정찰한 뒤 복귀했다. 한국의 군용기가 MDL을 넘어 북한 상공으로 직접 침투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첫 사례였다. 북한은 한국의 무인기 침투를 눈치채지 못해 대응도 하지못했다.
한국의 일부 효력 정지와 북한의 전면 파기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1월 초,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국방과학연구소(ADD)로부터 무인기 대응 전력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북한이 다시 이같이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군사합의 효력정지를 검토하라”고 안보실에 지시했다. 그 이후 안보관련 부서들은 9.19합의 전면파기, 9.19합의 효력 정지, 9.19합의 일부 효력정지, 9.19합의 무시 등 4가지 대안을 놓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
2023년 9월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청문회가 있었다. 신원식 후보자는 “9.19 군사합의 자체가 북한에만 유리하고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합의”라고 하면서 “폐기까지는 못가더라도 효력 정지는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 공격이 발생했다. 이 사태를 계기로 9.19합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놓쳤기 때문이다. 북한도 기습 공격을 할 것인데 한국만 계속9.19 합의를 지킨다면 큰 실수가 된다는 점에서 쟁점이 된 것이다.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북한은 11월21일 정찰위성을 발사했다. 북한은 천리마로 명명된 로켓에 실린 만리경 1호가 제 궤도에 안착 했다고 선전했다. 북한은 한국군, 일본 자위대,태평양 상의 미군에 대한 실시간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정찰위성까지 쏘아 올린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비교 우위에 있는 정찰 수단들을 9.19 합의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선지역의 북한 포나 병력의 이동 등을 실시간으로 추적해야 기습을 방지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데 이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4가지 대안 중에서 9.19합의 일부효력정지를 대안으로 선택하고 이를 결정했다. 9.19합의 중 1조 3항, 즉 군사분계선 상공에서 모든 기종들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한 효력을 정지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비교 우위에 있는 한국의 정찰 수단들이 9.19 이전처럼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이 이런 결정도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법)의 제23조에 근거하고 있다. 제23조는 “남북합의서 효력 범위에 따르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해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한국은 이 법에 근거하여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를 거쳐 9.19합의의 일부 효력 정지를 발표했다.
한국의 조치가 합법적이고 이성적이라면 북한의 조치는 일방적이고 감정적이었다. 9.19합의의 사문화는 김정은이 2019년 창린도를 방문하여 해상완충구역에 포사격을 지시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은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폭파 다음날 북한 총참모부 대변인은, 9.19 군사합의 파기를 경고했다.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 그리고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에 군 부대를 재주둔시키고 서해상 군사훈련도 부활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를 현실화하지 않았다.
한국이 9.19 일부 효력정지를 발표한 다음 날북한 국방성은 성명을 통해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겠다고 했다. “9·19 남북군사합의에 구속되지 않겠다.” "지상, 해상, 공중에서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들을 즉시 회복한다.” 그리고 "군사분계선(MDL)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파괴했던 GP에 병력과 중장비를 투입하기 시작했고 판문점 JSA에 근무하는 북한 초병들이 권총을 휴대하기 시작했으며, 해안포의 포문을 개방했다.
향후 전망과 대책
북한은 이런 초기 조치에 이어 2단계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2단계 조치란 DMZ 일대에서의 포사격 훈련과 빈번한 야외기동 훈련, 동·서 해상 포사격과 해상 기동훈련, 그리고 MDL 일대상공에서의 북한 무인기 비행 등이 될 것이다.
이런 단계를 지나면 북한은 본격적인 국지 도발을 할 가능성도 있다. 상상해 볼 수 있는 도발로는 북한 함정의 NLL 침범, 북한 방사포의 NLL이남으로 사격, 제2의 연평도 포격 도발, 서해 5도 중 일부 점령 시도, 무인기로 한국 영공 침투, 북한 잠수함/장 한국 침투, 공격적인 댓글 달기 등 사이버전, 그리고 GP 총격, DMZ 매복 및 목함지뢰 도발 등이 있을 수 있다.
예상되는 북한의 조치와 도발에 대해 한국은 기본원칙을 정하고 이 원칙에따라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기본원칙은 이순신 장군의 명언을 실천하는 것이다. “생즉사, 사즉생” 못지않게 유명한 어록이 바로 물령망동 정중여산 (勿令妄動 靜重如山)이다. 조선 수군 최초의 승전이었던 옥포해전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조선 수군에게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태산과 같이 무겁게 행동하라”고 한 것이다. 한국은 이순신 장군의 말씀처럼 북한이 하는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1:1로 대응하기보다는 신중하고 무겁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도발한 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발 자체를 못 하게 하는 것이다. 억제의 3요소는 능력(capability), 신뢰(credibility), 그리고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다. 보복과 응징할 수 있는 능력, 만일 도발한다면 반드시 보복 및 응징한다는 신뢰성, 그리고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의사전달이 중요한 것이다. 한국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과거 수차례 보복 및 응징한 사례도 있기에 신뢰성에도 문제가 없다. 따라서 끊임없이 한국의 이런 의지를 북한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군 통신선마저 차단한 상태이기에 공개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북한 도발시 “즉, 강, 끝”을 외치고 있다. 즉,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의사소통이 억제력 발휘에 도움이 된다.
둘째, 북한이 또다시 9.19 합의를 어기고 도발한다면 한국도 이에 대응해야 한다. 우선, 북한의 도발 양상에 따라 9.19 합의의 전면 파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1조 3항만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전면 파기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
셋째, 판문점 선언의 파기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판문점 선언에는 2018년 5월 1일부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MDL 일대 확성기 방송과 시각 매개물 게시 및 전단 살포가 금지되었다. 만일 북한이 도발할 경우, 한국은 판문점 선언조차 파기하거나, 또는 파기하지 않더라도 전선지역에서 심리전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넷째, 도발에 따른 대응부대를 사전에 지정하고 부단히 훈련해야 한다. 상급부대는 하급 부대에게 북한 도발시 보고하거나 물어보지 말고 선조치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북한 도발시 도발 유형에 따라 대응 부대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도발 시나리오에 따라 즉각 대응해야 하는 부대들을 사전에 지정하고 부단히 훈련해야 한다.
다섯째, 9.19합의 위반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제 및 대응이다. 9.19 합의에 대한 문제가 쟁점으로 떠 오르면 여기에 대한 대응책이 우선순위로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북한 위협의 핵심은 핵미사일 위협인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해 대응도 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9.19 합의 폐기 이후 우리의 대북 대응 방안
김 열 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들어가며
2018년 9월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간 군사합의’가 채택되었다. 한국은 이를 충실히 지켜왔으나 북한은 밥 먹듯이 이를 어겼다. 서해 완충구역에 해안포와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심지어 한국 영토에 무인기를 날려 보내기도 했다. 북한이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정찰위성을 발사하자 한국은 9.19 합의의 일부 효력 정지를 발표했다. 북한의 기습을 방지하기 위한 전선에서의 정보 획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북한이 9.19 전면 폐기를 선언하면서 북한 GP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병력 및 장비를 투입하기 시작했고 해안포 등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우선 9.19 합의의 문제점과 북한의 위반 사례 등을 살펴본 후 북한의 향후 행동 전망과 이에 따른 우리의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9.19 군사합의의 문제점
9.19 군사합의의 문제점은 첫째, 밀실 합의였다는 점이다. 남북기본합의서나 비핵화 공동선언을 협의할 때는 2년 이상의 실무 및 고위급 회의를 거쳐 채택했다. 그러나 9.19 합의는 판문점 선언 5개월 만에 충분한 협의도 없이 추진되었고 체결 3일 전에야 일부 언론의 일부 보도만 있었을 뿐이다. 국민적 합의도 없었고 군 내부의 합의도 부족했다.
둘째, 군비통제의 기본 원칙에 역행했다는 점이다. 군비통제는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오판 가능성 줄여야 하나 오히려 감시활동을 금지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증대시켰다. 상대방에 대한 정찰활동을 더욱 강화하여 상대방의 움직임에 대한 투명성을 증가시켜야 하는데, 9.19합의는 공중에서의 활동을 제약함으로써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정보획득을 제약하게 만든 것이다. 유럽은 자국의 공중을 개방하는 공중개방조약(Treaty on Open Skies, 1992)까지 만들어 상대방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했던 것과 비교 된다.
셋째, 합의 사항에 대한 이행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검증 장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믿지만 검증하라(trust but verify)의 격언을 실천하지 못했다. 검증 장치가 없으면 북한이 합의 사항 준수 여부를 판단하기 곤란하다. 또한, 합의 사항을 위반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제도적 장치도 없다. 결국 상대방의 선의에 맡길 수밖에 없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체결했다. 협정 체결시 양국은 ‘상대국의 약속 위반이 의심스러울 경우 사찰팀을 연간 100회 이상 24시간 전 사전 통고 후 급파’할 수 있는 긴급사찰 제도를 보장했다. 이런 검증체계 덕분에 미소간의 핵군비통제는 수십 년간 지속될 수 있었다. 남북한은 1991년 비핵화공동선언에 서명하면서 상호사찰에 합의했다. 한국은 과거의 미소처럼 24시간 전 통고 후 긴급사찰을 연간 50회까지 허용하자고 했지만, 북한은 1개월 전 사전 통고하는 사찰을 연간 2회만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이는 사찰받기 전에 사찰대상을 미리 숨겨 놓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런 합의로 어떻게 군비통제가 성공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9.19합의 때에는 이런 검증 제도도 논의되지 않았다.
넷째, 9.19합의는 비핵화와 연계하지 않은 재래식 군비통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비핵화와 재래식 군비통제가 병행해서 가거나, 또는 비핵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 비핵화는 그대로 둔 채 재래식 군비통제만 추구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북한은 재래식 군비통제를 통해 한국에 족쇄를 채운 후 안심하고 핵미사일 개발에 전념할 수 있었다.
다섯째, 북한이 원하는 것(Cherry Picking) 위주로 9.19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은 핵화생무기, 미사일, 장사정포, 특수부대, 잠수함정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비대칭 전력은 공군/감시정찰 능력, 해군력, 한미동맹 등이 될 것이다. 그런데 9.19 합의는 한국의 비대칭전력 활동을 제약했다. 한국은 다양한 정찰수단을 가지고 있었지만, 북한의 정찰 수단은 허접한 무인기 정도였다. 북한은 전선지역에 대한 한국의 정찰을 막기 위해 비행 지역을 제한했던 것이다. 결국, 북한은 한국이 비교 우위에 있는 ‘눈’만 골라서 이를 막은 것이다. 해상 완충구역도 덕적도~초도까지 135Km로 합의했다. 이는 북방한계선 북쪽 50Km, 남쪽 85Km로써 한국에게 불리한 합의였다. 특히, 덕적도는 인천보다 더 낮은 위도의 섬이기에 서울이 위험할 수 있음에도 이를 수용한 것이다.
여섯째, 상호 동수 보유 또는 균형 감축의 원칙을 무시했다. 군축은 등가성의 원칙을 유지 하거나 최종 보유수가 같아야 한다. 북한 GP는 160여개였고, 한국 GP는 60개였다. 그렇다면 감축한 후의 GP 보유 개수가 같거나, 또는 같은 비율로 줄여야 했으나 줄이는 숫자를 같게 한 것이다. 유럽재래식무기감축(CFE) 조약은 1990년 서구의 나토(NATO)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간에 체결됐다. 재래식 무기 중에서 전차(2만대), 전투기(6800기), 공격 헬기(2000기), 장갑차(3만대), 대포(2만문) 등 5개 분야에 대해서 보유의 상한선을 두고 그 현황을 의무 검증하는 조약이었다. 5대 분야를 많이 보유했던 소련과 동구권이 훨씬 더 많이 감축했다. 9.19합의는 군비통제의 기본과 이런 역사적 사례조차 무시한 합의였다.
9.19 합의에 대한 북한의 위반 vs 한국의 준수 노력 및 대응
9.19 합의 이후 북한은 해안포 포문 개방 위반 등 3400여 회가 넘는 위반을 했다. 주요 위반 사례만 열거해도 17회가 넘는다. 김정은은 2019년 11월 서해의 창린도를 방문하여 해상완충구역으로 해안포를 사격할 것을 직접 지시한바 있다. 2020년 5월에는 한국 GP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2022년 10월부터 12월까지는 무려 13회에 걸쳐 동서해상 해상완충 구역에 포병사격을 했다. 1,300발이 넘는 포탄을 발사한 것이다. 2022년 11월에는 해상완충 구역에 단거리탄도미사일(SRBM)까지 발사했다. 그중의 한 발은 NLL 이남 26Km, 속초 동쪽 56Km 해상에 낙탄했다. 이 사고로 울릉도 일대에 경계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북한은 2022년 12월 말에 한국 영토에 5대의 무인기를 침입시켰고 그중의 일부가 서울 상공을 침입하기도 했다. 9.19 합의는 말할 것도 없고 남북기본합의서와 정전협정까지 위반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급기야 2023년 4월에는 군 통신선마저 일방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이에 반해 한국은 9.19합의 준수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전방지역에서의 야외기동훈련은 기동훈련 대신 지휘조만 참여하는 훈련으로 변경했고, 포사격을 위해 합의에 위반되지 않는 사격장으로 이동해서 사격 훈련을 하기도 했다. 특히 서해 5도를 사수하는 해병대 대원들은 포사격 훈련을 위해 육지로 이동해서 훈련했다. 이동 비용만 100억원 넘는 국방비가 소요되었다. 군단 및 사단 무인기는 비행 금지구역 제한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이런 합의 준수 노력과 함께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해군은 2022년 11월 울릉도 방향으로 날아온 북한의 단거리탄도미사일을 인양하여 분석한 결과, 북한제 SA-5 지대공 미사일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NLL 이남으로 발사한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한국의 F-15K와 KF-16이 공대지미사일 3발을 동해 'NLL 이북 공해상,북한이 도발한 미사일의 낙탄 지역과 상응한 거리'의 해상에 정밀 사격을 실시하였다. 북한이 무인기를 침투했을 때도 육군은 무인 정찰기 '송골매' 1대는 서쪽 내륙지역, 다른 1대는 동쪽 해안을 따라 군사분계선(MDL) 이북 5km 지점까지 진출해 정찰한 뒤 복귀했다. 한국의 군용기가 MDL을 넘어 북한 상공으로 직접 침투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첫 사례였다. 북한은 한국의 무인기 침투를 눈치채지 못해 대응도 하지못했다.
한국의 일부 효력 정지와 북한의 전면 파기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1월 초,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국방과학연구소(ADD)로부터 무인기 대응 전력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북한이 다시 이같이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군사합의 효력정지를 검토하라”고 안보실에 지시했다. 그 이후 안보관련 부서들은 9.19합의 전면파기, 9.19합의 효력 정지, 9.19합의 일부 효력정지, 9.19합의 무시 등 4가지 대안을 놓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
2023년 9월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청문회가 있었다. 신원식 후보자는 “9.19 군사합의 자체가 북한에만 유리하고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합의”라고 하면서 “폐기까지는 못가더라도 효력 정지는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 공격이 발생했다. 이 사태를 계기로 9.19합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놓쳤기 때문이다. 북한도 기습 공격을 할 것인데 한국만 계속9.19 합의를 지킨다면 큰 실수가 된다는 점에서 쟁점이 된 것이다.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북한은 11월21일 정찰위성을 발사했다. 북한은 천리마로 명명된 로켓에 실린 만리경 1호가 제 궤도에 안착 했다고 선전했다. 북한은 한국군, 일본 자위대,태평양 상의 미군에 대한 실시간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정찰위성까지 쏘아 올린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비교 우위에 있는 정찰 수단들을 9.19 합의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선지역의 북한 포나 병력의 이동 등을 실시간으로 추적해야 기습을 방지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데 이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4가지 대안 중에서 9.19합의 일부효력정지를 대안으로 선택하고 이를 결정했다. 9.19합의 중 1조 3항, 즉 군사분계선 상공에서 모든 기종들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한 효력을 정지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비교 우위에 있는 한국의 정찰 수단들이 9.19 이전처럼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이 이런 결정도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법)의 제23조에 근거하고 있다. 제23조는 “남북합의서 효력 범위에 따르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해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한국은 이 법에 근거하여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를 거쳐 9.19합의의 일부 효력 정지를 발표했다.
한국의 조치가 합법적이고 이성적이라면 북한의 조치는 일방적이고 감정적이었다. 9.19합의의 사문화는 김정은이 2019년 창린도를 방문하여 해상완충구역에 포사격을 지시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은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폭파 다음날 북한 총참모부 대변인은, 9.19 군사합의 파기를 경고했다.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 그리고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에 군 부대를 재주둔시키고 서해상 군사훈련도 부활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를 현실화하지 않았다.
한국이 9.19 일부 효력정지를 발표한 다음 날북한 국방성은 성명을 통해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겠다고 했다. “9·19 남북군사합의에 구속되지 않겠다.” "지상, 해상, 공중에서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들을 즉시 회복한다.” 그리고 "군사분계선(MDL)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파괴했던 GP에 병력과 중장비를 투입하기 시작했고 판문점 JSA에 근무하는 북한 초병들이 권총을 휴대하기 시작했으며, 해안포의 포문을 개방했다.
향후 전망과 대책
북한은 이런 초기 조치에 이어 2단계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2단계 조치란 DMZ 일대에서의 포사격 훈련과 빈번한 야외기동 훈련, 동·서 해상 포사격과 해상 기동훈련, 그리고 MDL 일대상공에서의 북한 무인기 비행 등이 될 것이다.
이런 단계를 지나면 북한은 본격적인 국지 도발을 할 가능성도 있다. 상상해 볼 수 있는 도발로는 북한 함정의 NLL 침범, 북한 방사포의 NLL이남으로 사격, 제2의 연평도 포격 도발, 서해 5도 중 일부 점령 시도, 무인기로 한국 영공 침투, 북한 잠수함/장 한국 침투, 공격적인 댓글 달기 등 사이버전, 그리고 GP 총격, DMZ 매복 및 목함지뢰 도발 등이 있을 수 있다.
예상되는 북한의 조치와 도발에 대해 한국은 기본원칙을 정하고 이 원칙에따라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기본원칙은 이순신 장군의 명언을 실천하는 것이다. “생즉사, 사즉생” 못지않게 유명한 어록이 바로 물령망동 정중여산 (勿令妄動 靜重如山)이다. 조선 수군 최초의 승전이었던 옥포해전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조선 수군에게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태산과 같이 무겁게 행동하라”고 한 것이다. 한국은 이순신 장군의 말씀처럼 북한이 하는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1:1로 대응하기보다는 신중하고 무겁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도발한 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발 자체를 못 하게 하는 것이다. 억제의 3요소는 능력(capability), 신뢰(credibility), 그리고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다. 보복과 응징할 수 있는 능력, 만일 도발한다면 반드시 보복 및 응징한다는 신뢰성, 그리고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의사전달이 중요한 것이다. 한국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과거 수차례 보복 및 응징한 사례도 있기에 신뢰성에도 문제가 없다. 따라서 끊임없이 한국의 이런 의지를 북한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군 통신선마저 차단한 상태이기에 공개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북한 도발시 “즉, 강, 끝”을 외치고 있다. 즉,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의사소통이 억제력 발휘에 도움이 된다.
둘째, 북한이 또다시 9.19 합의를 어기고 도발한다면 한국도 이에 대응해야 한다. 우선, 북한의 도발 양상에 따라 9.19 합의의 전면 파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1조 3항만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전면 파기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
셋째, 판문점 선언의 파기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판문점 선언에는 2018년 5월 1일부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MDL 일대 확성기 방송과 시각 매개물 게시 및 전단 살포가 금지되었다. 만일 북한이 도발할 경우, 한국은 판문점 선언조차 파기하거나, 또는 파기하지 않더라도 전선지역에서 심리전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넷째, 도발에 따른 대응부대를 사전에 지정하고 부단히 훈련해야 한다. 상급부대는 하급 부대에게 북한 도발시 보고하거나 물어보지 말고 선조치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북한 도발시 도발 유형에 따라 대응 부대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도발 시나리오에 따라 즉각 대응해야 하는 부대들을 사전에 지정하고 부단히 훈련해야 한다.
다섯째, 9.19합의 위반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제 및 대응이다. 9.19 합의에 대한 문제가 쟁점으로 떠 오르면 여기에 대한 대응책이 우선순위로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북한 위협의 핵심은 핵미사일 위협인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해 대응도 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