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년 칼럼] 북한 독재자에게 속지 않는 게 安保다

신년 칼럼

북한 독재자에게 속지 않는 게 安保다


방 형 남  편집위원장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청룡처럼 비상해야 할 2024년 대한민국의 시작이 어수선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피습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갈등은, 대한민국 정치가 국익과 민생을 위한 화합이나 공조는 외면하고 오로지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는 싸움판으로 추락할 전조처럼 보인다. 4월 총선이 여당과 야당 모두에게 죽느냐 사느냐의 대결이기는 하다.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이 승리하면 국정운영에날개를 달게 되겠지만, 민주당이 다시 다수당이 되면 정권 발목 잡기가 더욱 맹위를 떨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4월 총선은 2024년 최대의 내우(內憂)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선거 이후 대한민국의 국운(國運)은 또다시 요동칠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나라를 이끌어온 주요 동력은 국민 수준에 한참 뒤떨어진 3류 정치가 아니었다. 어느 정당이 득세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방향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국민의 땀과 노력으로 일궈온 국가의 행진에 결정적 차질을 초래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여야 가릴 것 없이 민심을 제대로 읽는 안목과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의원들이 많이 선출돼 나름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에 기여하기를 바랄뿐이다.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가서 담당해야 할 몫이다.

  지도자가 일방적 지지와 존경을 받는 시대는 지났다. 정보화 시대를 살다보니 지도자의 성공은 쉽게 희석되고 잘못과 실수는빠르게 확산된다. 비판과 질책은 넘치고 칭찬과 격려는 설 땅이 많지 않다. 현재 자유민주 국가 지도자 가운데 누가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가. 미국 일본 유럽의 지도자들이 대부분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고 있다. 정보화 시대 지도자들이 겪는 숙명이다.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일부 독재국가에서나 강제된 충성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지율 그래프 변화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목표(공약)를 실천해나가는 뚝심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다. 대통령도, 국민을 대표하겠다는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사사건건 대립하며 갈라진 여론도 비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공공선을 위해 최대 공약수를 뽑아내는 정치력이 있으면 해결된다.

  하지만 나라 밖으로부터 오는 도전인 외환(外患)은 집안싸움인 국내 갈등과는 다르다. 자칫하면 우리가 모든 것을 잃는 제로섬 게임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우리가 직면한 최대의 외환은 북한 독재자의 위협이다.

  남북 관계에는 확실한 상수(常數)가 있다. 남한의 5년 단임 대통령들이 종신 임기를 누리는 북한 독재자와 힘겨운 대결을 하는 구도가 굳어졌다. 북한 독재자가, 임기 초반에는 국정운영의 틀을 잡느라 후반에는 레임덕의 그림자에 밀려 허덕이는 남한 지도자보다 언제나 유리한 상황이다. 김정은은 시간 싸움에서는 언제나 우세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세습 독재자가 사라지는 급변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런 구도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김정은은 올해 40세 청춘이니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불리한 대결 구도를 깨고 어떻게 국면을 전환시킬 것인가.

  지난 해 연말 스스로 가면을 벗어던진 김정은이 해법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노동당 전원회의 5일차 회의에서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이 아니라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고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해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남한 대통령을 유인해 추파를 던지던 그동안의 모습이 연출이었다고 만천하에 고백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발표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무력 불사용과 불가침 합의 재확인’ 합의, 2019년 9월 평양에서 했던 ‘민족적 화해와 협력’ 선언이 모두 거짓 속임수였다고 실토한 것이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이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내놓은 2000년 6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힙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공동선언과, 2007년 10월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는 노무현대통령과의 합의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속에 칼을 품고 역대 남한 대통령에게 올리브 가지를 흔들었다는 고백이다. 남과 북의 동포를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규정했으니 혈통까지 멋대로 조작하는 권한이 그에게 있다는 말인가.

  이로써 역대 대통령들이 그동안 북한 독재자에게 속아 평양으로, 판문점으로 달려갔던 것이 확인됐다. 2000년 정상회담은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 위기에서 김정일 체제를 건져줬고, 2007년 정상회담은 모처럼 결집된 국제사회의 북핵 해결 전선에 균열을 만들었다. 그동안 북한으로 넘어간 엄청난 달러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시설 등은 북한에게는 참으로 따뜻한 정상회담 쇼의 답례품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삶은 소대가리’ 등의 인간적 모멸을 받더니 이제는 북한의 남한 지도자 갈라치기의 도구가 되기에 이르렀다.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던 다를 바 없었다”며 “우리를 붕괴시키려는 흉악한 야망”이라고 한국의 역대 대북정책을 싸잡아 공격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해 문 대통령을 “참 영특하고 교활한 사람이였다”고 추켜세우는 술수까지 부렸다.

  보수 정부의 대북정책도 김정은의 고백 앞에 빛을 잃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도,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도 실현 가능성 없는 혼자만의 공상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다행이다. 북한 독재자의 속셈을 알게됐으니 앞으로의 대북 정책은 분명해야 한다. 더는 북이 핵을 포기한다느니, 평화의지가 있다느니 하는 이적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북이 도발을 해도 “대화를 유도하려는 것”이라며 편을 들던 궤변론자들은 사라져야 한다. 남북간에 실천이 담보되지 않는 합의는 정상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라도 해도 의미가 없게 됐다. 핵을 손에 쥔 북한 독재자를 이롭게 하는 지원은 단 한 푼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김정은의 위협이 실제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수십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추정 30기,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 35~65기추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중거리탄도 미사일(IRBM)은 물론 전술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단거리탄도미사일까지 보유하고 있다. 초대형방사포(KN-25), 무인수중공격정 해일, 화살 1·2 순항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등으로도 핵탄두를 날릴 수 있다. 지난 해 11월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발사한 데 이어 올해 3기를 추가로 발사할 계획이어서 조만간 남한을 샅샅이 내려다볼 능력도 갖추게 된다. 공격의 단추를 누를 수 있는 사람이 10살짜리 딸을 미사일 발사장에 데리고 다니며 후계자 수업을 하는 비이성적인 독재자라는 사실을 함께 떠올리면 등골이 서늘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올해 상반기까지 증강된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완성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원천 봉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핵전력과 한국의 비핵전력을 결합한 새로운 확장억제 체제가 올 상반기중 완성되면 8월 한미연합 UFS 연습 때 훈련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적이 도발하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한다’는 ‘즉 강 끝 원칙’을 내세우며 결연함을 보이고 있다. 

  올해 국방비는 전체 국가 예산의 8.9%인 57조원에 달한다. 돈이 모자라 세계 최빈국 북한의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싸워야 한다면 전력(全力)을 다해 공격할 것이라는 결연한 지도자의 의지와 압도적 군사력이 어우러져야 김정은의 경거망동을 막는 억제력이 될 수 있다. 청룡의 해, 만만치 않은 풍파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끝내 승천하는 용처럼 대한민국이 승리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