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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안호원
한국열린사이버대 특임교수
우리가 용서는 하되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6.25전쟁이다. 올해는 6.25 전쟁 73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휴전 상태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모임에서 한 분이 “앞으로 북한의 독재자를 제거한다 해도 ‘충성심’으로 세뇌된 북한군의 강한 반발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한다. 어찌 보면 좀 식상한 말 같지만 사실은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혹자는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군들이 무슨 전쟁을 하겠는가”. 그러나 여전히 북한군은 정신력으로 보나, 강인한 민족의 특성으로 보나,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될 존재다. 특히 우리 군과는 달리 10년 이상 강한 훈련으로 다져진 수많은 특수여단들이 어느 순간 어디로 뛸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들이다.자칫 잘못했다가는 지난 날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한국군과 미국군이 밀려 내려왔던 1.4 후퇴 때처럼 무서운 역 후과가 초래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지론이긴 하지만, 북한의 2200만 국민과 인민군은 김정은의 명령이 없으면 전 당·군·민이 한순간에 화석같이 그 자리에서 굳어져 버리는 시스템이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수뇌부만 제거되면, 북한군은 배터리가 방전된 로봇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바로 73년 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북한 국민과 인민군 단결의 중심인 최고사령부, 즉 김일성이 살아서 건재했기에 중국에 지원군을 간청하여 압록강까지 올라갔던 미군을 포함한 16개국의 유엔군과 한국군이 다시 퇴각을 했고 오늘과 같은 민족 분열과 고통이 있게 된 것이다.
6.25 전쟁은 북한군의 기습남침과 지연전 및 낙동강 방어선 사수, 인천상륙작전과 총반격 및 한·중 국경선으로의 북진, 중공군 개입과 새로운 전쟁의 시작, 휴전회담과 고지탈환으로 전개되었다. 6.25 전쟁의 성격을 보면 우선 통일 지향의 침략전쟁으로 냉전을 구조화 했다. 또 내전의 성격을 띠면서도 세계의 독립 국가들이 대거 참여한 국제전으로 유엔 집단 안보의 최초 사례가 되었다. 6.25 전쟁은 대한민국으로선 5000년 민족사의 가장 참혹한 파괴와 살상을 가져다 준 북한의 반민족적 침략전쟁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대한민국의 대변혁을 가져다 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대규모 참전이 이루어졌고, 그 후 연합으로 전쟁을 치룬 한·미 양국은 혈맹이라는 특수 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6.25 전쟁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굳세어라 금순아’ 와 ‘비목’이다. 그리고 장진호 전투, 흥남부두 철수 등 모두 가슴 저리는 아픔의 추억꺼리다. 6.25 전쟁 역시 자칫하면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가 사라질 뻔한 위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작전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은 세계 3대 상륙작전이라 일컬어지며 불리해졌던 전세를 한 번에 뒤 엎은 드라마 같은 사건이었다. 작전명 ‘Operation Chromite.’ 이것은 6.25 전쟁 당시 수세에 몰려있던 우리가 전세를 역전시켰던 가장 대표적이고도 위대한 사건이다. 성공률 1/5000, 온갖 악재를 뚫고 이뤄낸 이날의 승리는 세계전사에 있어 노르망디상륙작전과함께 세계 2대 상륙작전으로 꼽힐 만큼 우리 역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 4대 ‘해신’으로 꼽히는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모든 것을 잃고 완전히 무너진 조선의 수군을 이끌고 출전한 명량대첩에서 왜군을 상대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대승을 이끈다. 13척 vs133척, 그 어떤 전례도 없고,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이날의 승리는 지금도 세계 전쟁사 사가들에 손꼽히는 전투 중 하나다. 이순신 장군과 맥아더 장군이 인류사가 꼽는 위대한 장군인 이유는 단순히 뛰어난 전적 때문이 아니다. 결코 이기지 못할 전투, 결코 성공치 못할 작전을 성공시킨 인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참모가 말렸고, 심지어 수많은 이탈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두 장군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순신이 없었다면 조선은 일본에 속국으로 남았을 것이고, 맥아더가 없었더라면 한반도는 공산국가로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없었을 것이다.
맥아더 장군은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손자병법에 나오는 ‘성동격서’ 방법을 택했다. 동쪽에서 소리를 처서 적군의 시선을 쏠리게 한 다음 적의 허점이 되는 서쪽을 공격하는 전법이다. 이런 전법으로 맥아더 장군은 마치 상륙할 것처럼 거짓 무전을 적에게 흘리면서 평양 서쪽 남포로 상륙을 한다거나 혹은 해주, 전라도 군산, 원산,주문진, 울진 등 정신없게 만들며 어디로 상륙을 하는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폭격을 가하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장사상륙작전’이다. 적의 시선을 끌기위한 페이크 상륙작전이었는데 이때 허겁지겁 모은 것이 10대 소년 772명의 중고등학생들이다. 차출된 소년병들이 장사상륙작전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장비는 소총 한 자루와 탄약이 전부였다. 그러나 북한군의 집중사격으로 배가 좌초되면서 상륙지점 50m전에 헤엄쳐 상륙한 학도병들은 적의 포화를 뚫고 장사리 상륙에 성공, 당시 포항과 영천 방면을 잇는 국도를 점거하고, 적의 북상을 저지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소년병들 대부분이 전사했다. 이런전공(戰功)에도 불구, 장사리 상륙작전은 그 기록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고 기밀에 부쳐져 있었으나, 좌초된 ‘문산 호’와 전사자들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들은 지금 국립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작전이 성공하면서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전과(戰果)를 거두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인천상륙작전은 손쉽게 교두보를 확보했다. 또한 손실도 매우 미미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진정한 의의는 유엔군의 우회 기동을 통해 북한군의 병참선을 일거에 차단하였으며, 이로 인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의 계기를 조성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인천상륙작전에 이은 서울 수도 탈환의 성공은 심리적으로 국군 및 유엔군의 사기를 크게 제고시키는 반면, 북한군의 사기는 결정적으로 떨어뜨리게 했다. 인천상륙작전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대부분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맥아더 장군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승리를 역사에 기록할 수 있게 한 것은 당시 이름 모를 학도병들과 계급 없는 캘러 부대원과 지역주민, 그리고 우리 국군들의 값진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하고자 한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위기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던 우리 국군,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하고 전선(戰線)에 투입된 민간인과 학도병. 그들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임무를 완수해 낸 영웅들이다. 성웅 이순신의 명량대첩. 영웅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테르모필레 전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전투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과 같이 한 사람이 길목을 지켜 천 명을 막아낸 또 하나의 대표적 사례다. 스파르타 군대의 용맹은 실로 대단하다. 단 300명의 군사로 30만 대군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좁은 골짜기를 사수하는 그들의 모습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그러나 명량대첩이 대승을 거둔 것과는 달리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스파르타 군대는 패배했다. 그 이유는 바로 배신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군에게 승리를 안겨준 자는 뜻밖에도 대장에게 야단을 맞은 스파르타 병사가 홧김에 페르시아군에 스파르타군의 약점과 골짜기의 우회로를 알려주면서 스파르타군은 전멸되고 만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반인류적 악의 세력에 의해 국제적 안보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는 글로벌 위기의 순간, 대한민국은 오히려 스파르타의 병사 같은 ‘내부의 반역자’(?) 때문에 더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외부의 적보다 더 악랄한 내부 반역자들과 싸워야 할 처지가 되었다. 반인류적 악의 세력에 의해 국제적 안보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는 글로벌 위기의 순간, 대한민국은 오히려 ‘내부의 반역자들’ 때문에 더 많은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참으로 위험하고, 안타까운 것은 지금 대한민국이 아직도 6.25 전쟁 전범인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중국 몽에 동참하고 싶다며 중국 공산당에 충성하는 세력(?)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과격단체가 평화를 빙자한 국가보안법 철폐, 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더니 급기야는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과 한미동맹 해체 등을 요구하면서 ‘통일선봉대’ 라는 조직을 만들어 미군 기지를 돌며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 이 조직은 미군 기지마다 가서는 주로 ‘미군 철수’ 구호를 외친다. 특히 이들 단체는 지난번 서울 집회에선 북한이 지령으로 민노총에 보냈다는 ‘한미군사연합훈련을 중지하라’는 내용의 소위 ‘연대사’를 거침없이 공개 낭독했다. 도대체 이들 단체가 왜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인지 공산당 조직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구호가 대한민국 전체를 심히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령 저들이 주장하는 대로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한다고 치자. 그러면 어떻게 될까. 두말할 필요 없이 ‘안보’가 단숨에 무너질 것이다. 미군의 철수와 동시에 북한이 쳐들어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과거 정부에서 GP를 없애고, 철책과 지뢰밭을 제거하고, 판문점 도로를 넓히고, 탱크방벽을 허물었으니 얼마나 잘 들어오겠는가. 9.19 남북 합의대로 하면 해병대가 지키고 있는 백령도는 북한에 의해 무력으로 점령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서해와 동해는 어떤가. 중국의 바다가 되고, 어장이 될 것이며, 독도는 일본해군이 주둔할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독도를 점령해도, 중국이 ‘서해’를 자기네 소유라 해도 미국은 못본 척할 것이 분명하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미·일 동맹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 강 건너 불을 보듯 뻔하다. 문제는 이들 단체들의 ‘치외 법권적’ 작태를 보고도 강력히 대응하지 않는 한국의 공권력에 있다. 법질서가 제대로 기능한 나라라면 공권력이 이처럼 무기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미군이 주둔 중인데도 각종 도발을 해오고 있다. 지금은 핵을 가진 최악의 불량국가다. 그런 북한을 추종한다면 공산당이 맞다. 지금은 이름조차 잃어버린 월남,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며 국민의 결집된 ‘항전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항전의지는 적(敵)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공고해진다.첨단무기보다 장병들의 정신교육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9.19 남북군사합의로 이처럼 중요한 정신교육체계가 처참하리만치 무너졌다. 실전 대응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현장 훈련은 아예 금지되었다.
남북 평화체계를 구축하려면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흔들림 없는 국방태세는 정치적 협상력의 근간이다. 미국의 효율적 외교, 국방정책은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한·미 동맹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동맹은 무엇인가? 6.25 전쟁에서 미군 장병 33,686명이 전사했다. 전쟁 전(前) 한국이 지구 어느 쪽에 있는지 알지도 못한 젊은이들이었다. 한국은 그들이 생명을 바친 조국이 되었다. 그렇게 맺어진 두 나라의 혈맹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당시 이 대통령은 6.25 전쟁 당시 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휴전협정” 승인을 거부했다. 그러나 휴전을 묵인하는 대신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미 국무부장관 “덜레스”는 그런 종류의 조약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된 것도어찌 보면 하늘의 선택이자 축복이라 생각된다. 다른 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면 역사가 바뀌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을 수도 있다. 공산주의의 진정한 무서움은 인간성을 붕괴시키고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사상통제를 구축하여 자유의 파괴와 세계의 노예화이다.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킨 대한민국 국민, 곧이어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부국강병을 위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다. ‘한강의 기적(Miracle of Han River)’으로 불리는 성장과 질서가 함께하는 세월이었다. 88올림픽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발전은 세계를 놀라게 했고, 마침내동구권 붕괴의 단초가 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후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나라로 전락했다. 민주화의 미명아래 성장과 질서 대신 침체와 혼란이 나라를 뒤덮었다. 무엇보다 진정한 자유가 갖는 자율과 규율, 권리와 책임이란 전혀 상이한 요소가 결합된 대원칙을 잊은 것이었다. 불과 10년 만에 IMF와 친북정권이 연이어 탄생하였고 현재 대한민국은 자유와 용공, 내전과 갈등의 나라로 전락하였다. 문제는 한국의 위기가 결코 한국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 유일의 냉전국이자 역사상 가장 무서운 테러집단 북한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동구권이 붕괴되고 아시아 공산국들도 개방과 개혁이 대세임에도 이를 거부한 예외지대였다. 절대 빈곤과 집단 아사에도 핵개발에 집중하였고 오늘날은 핵과 미사일로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북한과의 맹목적 평화체제를 추구하며 국방 빗장을 풀어버린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은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지난 정부 집권 후 5년간 거짓 평화에 몰두하는 사이 군(軍)은 물론 일반 국민까지 안보의식이 통째로 흔들렸다. 평화지상주의에 취한 나머지 한·미 군사훈련은 중단됐고, 북한 도발에 대한 군사적 대응 역량도 떨어졌다.
항전의지는 적(敵)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공고해진다. 따라서 첨단무기보다 장병들의 정신교육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9.19 남북군사합의로 이처럼 중요한 정신교육체계가 처참하리만치 무너졌다. 실전 대응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현장 훈련은 아예 금지되었다. 남북 평화체계를 구축하려면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흔들림 없는 국방태세는 정치적 협상력의 근간이다. 미국의 효율적 외교·국방정책은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한·미 동맹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최빈국 중 하나인 북한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핵무기와 신형 탄도미사일을 계속 개발하는 것은 ‘믿고 있는 자금줄’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진실은 그 안에 있다. 북한의 전술핵무기를 포함한 핵 능력이 고도화 될수록 한·미의 전략적 선택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전술핵무기의 특성을고려할 때 이제는 북한이 남한을 향해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국가의 주권(主權)과 국격(國格)을 지키는데,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사례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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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안호원
한국열린사이버대 특임교수
우리가 용서는 하되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6.25전쟁이다. 올해는 6.25 전쟁 73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휴전 상태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모임에서 한 분이 “앞으로 북한의 독재자를 제거한다 해도 ‘충성심’으로 세뇌된 북한군의 강한 반발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한다. 어찌 보면 좀 식상한 말 같지만 사실은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혹자는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군들이 무슨 전쟁을 하겠는가”. 그러나 여전히 북한군은 정신력으로 보나, 강인한 민족의 특성으로 보나,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될 존재다. 특히 우리 군과는 달리 10년 이상 강한 훈련으로 다져진 수많은 특수여단들이 어느 순간 어디로 뛸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들이다.자칫 잘못했다가는 지난 날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한국군과 미국군이 밀려 내려왔던 1.4 후퇴 때처럼 무서운 역 후과가 초래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지론이긴 하지만, 북한의 2200만 국민과 인민군은 김정은의 명령이 없으면 전 당·군·민이 한순간에 화석같이 그 자리에서 굳어져 버리는 시스템이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수뇌부만 제거되면, 북한군은 배터리가 방전된 로봇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바로 73년 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북한 국민과 인민군 단결의 중심인 최고사령부, 즉 김일성이 살아서 건재했기에 중국에 지원군을 간청하여 압록강까지 올라갔던 미군을 포함한 16개국의 유엔군과 한국군이 다시 퇴각을 했고 오늘과 같은 민족 분열과 고통이 있게 된 것이다.
6.25 전쟁은 북한군의 기습남침과 지연전 및 낙동강 방어선 사수, 인천상륙작전과 총반격 및 한·중 국경선으로의 북진, 중공군 개입과 새로운 전쟁의 시작, 휴전회담과 고지탈환으로 전개되었다. 6.25 전쟁의 성격을 보면 우선 통일 지향의 침략전쟁으로 냉전을 구조화 했다. 또 내전의 성격을 띠면서도 세계의 독립 국가들이 대거 참여한 국제전으로 유엔 집단 안보의 최초 사례가 되었다. 6.25 전쟁은 대한민국으로선 5000년 민족사의 가장 참혹한 파괴와 살상을 가져다 준 북한의 반민족적 침략전쟁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대한민국의 대변혁을 가져다 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대규모 참전이 이루어졌고, 그 후 연합으로 전쟁을 치룬 한·미 양국은 혈맹이라는 특수 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6.25 전쟁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굳세어라 금순아’ 와 ‘비목’이다. 그리고 장진호 전투, 흥남부두 철수 등 모두 가슴 저리는 아픔의 추억꺼리다. 6.25 전쟁 역시 자칫하면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가 사라질 뻔한 위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작전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은 세계 3대 상륙작전이라 일컬어지며 불리해졌던 전세를 한 번에 뒤 엎은 드라마 같은 사건이었다. 작전명 ‘Operation Chromite.’ 이것은 6.25 전쟁 당시 수세에 몰려있던 우리가 전세를 역전시켰던 가장 대표적이고도 위대한 사건이다. 성공률 1/5000, 온갖 악재를 뚫고 이뤄낸 이날의 승리는 세계전사에 있어 노르망디상륙작전과함께 세계 2대 상륙작전으로 꼽힐 만큼 우리 역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 4대 ‘해신’으로 꼽히는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모든 것을 잃고 완전히 무너진 조선의 수군을 이끌고 출전한 명량대첩에서 왜군을 상대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대승을 이끈다. 13척 vs133척, 그 어떤 전례도 없고,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이날의 승리는 지금도 세계 전쟁사 사가들에 손꼽히는 전투 중 하나다. 이순신 장군과 맥아더 장군이 인류사가 꼽는 위대한 장군인 이유는 단순히 뛰어난 전적 때문이 아니다. 결코 이기지 못할 전투, 결코 성공치 못할 작전을 성공시킨 인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참모가 말렸고, 심지어 수많은 이탈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두 장군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순신이 없었다면 조선은 일본에 속국으로 남았을 것이고, 맥아더가 없었더라면 한반도는 공산국가로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없었을 것이다.
맥아더 장군은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손자병법에 나오는 ‘성동격서’ 방법을 택했다. 동쪽에서 소리를 처서 적군의 시선을 쏠리게 한 다음 적의 허점이 되는 서쪽을 공격하는 전법이다. 이런 전법으로 맥아더 장군은 마치 상륙할 것처럼 거짓 무전을 적에게 흘리면서 평양 서쪽 남포로 상륙을 한다거나 혹은 해주, 전라도 군산, 원산,주문진, 울진 등 정신없게 만들며 어디로 상륙을 하는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폭격을 가하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장사상륙작전’이다. 적의 시선을 끌기위한 페이크 상륙작전이었는데 이때 허겁지겁 모은 것이 10대 소년 772명의 중고등학생들이다. 차출된 소년병들이 장사상륙작전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장비는 소총 한 자루와 탄약이 전부였다. 그러나 북한군의 집중사격으로 배가 좌초되면서 상륙지점 50m전에 헤엄쳐 상륙한 학도병들은 적의 포화를 뚫고 장사리 상륙에 성공, 당시 포항과 영천 방면을 잇는 국도를 점거하고, 적의 북상을 저지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소년병들 대부분이 전사했다. 이런전공(戰功)에도 불구, 장사리 상륙작전은 그 기록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고 기밀에 부쳐져 있었으나, 좌초된 ‘문산 호’와 전사자들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들은 지금 국립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작전이 성공하면서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전과(戰果)를 거두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인천상륙작전은 손쉽게 교두보를 확보했다. 또한 손실도 매우 미미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진정한 의의는 유엔군의 우회 기동을 통해 북한군의 병참선을 일거에 차단하였으며, 이로 인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의 계기를 조성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인천상륙작전에 이은 서울 수도 탈환의 성공은 심리적으로 국군 및 유엔군의 사기를 크게 제고시키는 반면, 북한군의 사기는 결정적으로 떨어뜨리게 했다. 인천상륙작전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대부분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맥아더 장군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승리를 역사에 기록할 수 있게 한 것은 당시 이름 모를 학도병들과 계급 없는 캘러 부대원과 지역주민, 그리고 우리 국군들의 값진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하고자 한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위기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던 우리 국군,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하고 전선(戰線)에 투입된 민간인과 학도병. 그들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임무를 완수해 낸 영웅들이다. 성웅 이순신의 명량대첩. 영웅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테르모필레 전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전투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과 같이 한 사람이 길목을 지켜 천 명을 막아낸 또 하나의 대표적 사례다. 스파르타 군대의 용맹은 실로 대단하다. 단 300명의 군사로 30만 대군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좁은 골짜기를 사수하는 그들의 모습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그러나 명량대첩이 대승을 거둔 것과는 달리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스파르타 군대는 패배했다. 그 이유는 바로 배신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군에게 승리를 안겨준 자는 뜻밖에도 대장에게 야단을 맞은 스파르타 병사가 홧김에 페르시아군에 스파르타군의 약점과 골짜기의 우회로를 알려주면서 스파르타군은 전멸되고 만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반인류적 악의 세력에 의해 국제적 안보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는 글로벌 위기의 순간, 대한민국은 오히려 스파르타의 병사 같은 ‘내부의 반역자’(?) 때문에 더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외부의 적보다 더 악랄한 내부 반역자들과 싸워야 할 처지가 되었다. 반인류적 악의 세력에 의해 국제적 안보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는 글로벌 위기의 순간, 대한민국은 오히려 ‘내부의 반역자들’ 때문에 더 많은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참으로 위험하고, 안타까운 것은 지금 대한민국이 아직도 6.25 전쟁 전범인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중국 몽에 동참하고 싶다며 중국 공산당에 충성하는 세력(?)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과격단체가 평화를 빙자한 국가보안법 철폐, 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더니 급기야는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과 한미동맹 해체 등을 요구하면서 ‘통일선봉대’ 라는 조직을 만들어 미군 기지를 돌며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 이 조직은 미군 기지마다 가서는 주로 ‘미군 철수’ 구호를 외친다. 특히 이들 단체는 지난번 서울 집회에선 북한이 지령으로 민노총에 보냈다는 ‘한미군사연합훈련을 중지하라’는 내용의 소위 ‘연대사’를 거침없이 공개 낭독했다. 도대체 이들 단체가 왜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인지 공산당 조직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구호가 대한민국 전체를 심히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령 저들이 주장하는 대로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한다고 치자. 그러면 어떻게 될까. 두말할 필요 없이 ‘안보’가 단숨에 무너질 것이다. 미군의 철수와 동시에 북한이 쳐들어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과거 정부에서 GP를 없애고, 철책과 지뢰밭을 제거하고, 판문점 도로를 넓히고, 탱크방벽을 허물었으니 얼마나 잘 들어오겠는가. 9.19 남북 합의대로 하면 해병대가 지키고 있는 백령도는 북한에 의해 무력으로 점령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서해와 동해는 어떤가. 중국의 바다가 되고, 어장이 될 것이며, 독도는 일본해군이 주둔할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독도를 점령해도, 중국이 ‘서해’를 자기네 소유라 해도 미국은 못본 척할 것이 분명하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미·일 동맹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 강 건너 불을 보듯 뻔하다. 문제는 이들 단체들의 ‘치외 법권적’ 작태를 보고도 강력히 대응하지 않는 한국의 공권력에 있다. 법질서가 제대로 기능한 나라라면 공권력이 이처럼 무기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미군이 주둔 중인데도 각종 도발을 해오고 있다. 지금은 핵을 가진 최악의 불량국가다. 그런 북한을 추종한다면 공산당이 맞다. 지금은 이름조차 잃어버린 월남,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며 국민의 결집된 ‘항전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항전의지는 적(敵)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공고해진다.첨단무기보다 장병들의 정신교육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9.19 남북군사합의로 이처럼 중요한 정신교육체계가 처참하리만치 무너졌다. 실전 대응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현장 훈련은 아예 금지되었다.
남북 평화체계를 구축하려면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흔들림 없는 국방태세는 정치적 협상력의 근간이다. 미국의 효율적 외교, 국방정책은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한·미 동맹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동맹은 무엇인가? 6.25 전쟁에서 미군 장병 33,686명이 전사했다. 전쟁 전(前) 한국이 지구 어느 쪽에 있는지 알지도 못한 젊은이들이었다. 한국은 그들이 생명을 바친 조국이 되었다. 그렇게 맺어진 두 나라의 혈맹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당시 이 대통령은 6.25 전쟁 당시 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휴전협정” 승인을 거부했다. 그러나 휴전을 묵인하는 대신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미 국무부장관 “덜레스”는 그런 종류의 조약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된 것도어찌 보면 하늘의 선택이자 축복이라 생각된다. 다른 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면 역사가 바뀌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을 수도 있다. 공산주의의 진정한 무서움은 인간성을 붕괴시키고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사상통제를 구축하여 자유의 파괴와 세계의 노예화이다.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킨 대한민국 국민, 곧이어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부국강병을 위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다. ‘한강의 기적(Miracle of Han River)’으로 불리는 성장과 질서가 함께하는 세월이었다. 88올림픽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발전은 세계를 놀라게 했고, 마침내동구권 붕괴의 단초가 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후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나라로 전락했다. 민주화의 미명아래 성장과 질서 대신 침체와 혼란이 나라를 뒤덮었다. 무엇보다 진정한 자유가 갖는 자율과 규율, 권리와 책임이란 전혀 상이한 요소가 결합된 대원칙을 잊은 것이었다. 불과 10년 만에 IMF와 친북정권이 연이어 탄생하였고 현재 대한민국은 자유와 용공, 내전과 갈등의 나라로 전락하였다. 문제는 한국의 위기가 결코 한국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 유일의 냉전국이자 역사상 가장 무서운 테러집단 북한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동구권이 붕괴되고 아시아 공산국들도 개방과 개혁이 대세임에도 이를 거부한 예외지대였다. 절대 빈곤과 집단 아사에도 핵개발에 집중하였고 오늘날은 핵과 미사일로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북한과의 맹목적 평화체제를 추구하며 국방 빗장을 풀어버린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은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지난 정부 집권 후 5년간 거짓 평화에 몰두하는 사이 군(軍)은 물론 일반 국민까지 안보의식이 통째로 흔들렸다. 평화지상주의에 취한 나머지 한·미 군사훈련은 중단됐고, 북한 도발에 대한 군사적 대응 역량도 떨어졌다.
항전의지는 적(敵)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공고해진다. 따라서 첨단무기보다 장병들의 정신교육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9.19 남북군사합의로 이처럼 중요한 정신교육체계가 처참하리만치 무너졌다. 실전 대응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현장 훈련은 아예 금지되었다. 남북 평화체계를 구축하려면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흔들림 없는 국방태세는 정치적 협상력의 근간이다. 미국의 효율적 외교·국방정책은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한·미 동맹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최빈국 중 하나인 북한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핵무기와 신형 탄도미사일을 계속 개발하는 것은 ‘믿고 있는 자금줄’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진실은 그 안에 있다. 북한의 전술핵무기를 포함한 핵 능력이 고도화 될수록 한·미의 전략적 선택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전술핵무기의 특성을고려할 때 이제는 북한이 남한을 향해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국가의 주권(主權)과 국격(國格)을 지키는데,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사례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