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미동맹 70주년 특집 4] 한미 경제·기술 동맹의 전망과 발전 방안-김흥종

[한미동맹 70주년 특집4]


한미 경제·기술 동맹의 전망과 발전 방안



김 흥 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한미관계의 변화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한국전쟁 후 군사동맹과 일방적 경제지원의 형태에서 양국 간 호혜적 통상관계로 발전한 양국 관계가 이제는 기존의 군사, 안보, 통상을 넘어서 기술, 가치, 미래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군사 안보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동맹관계를 넘어서 가치, 경제, 기술 분야에서 협력하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임을 선언한 바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한국에 방문하면 판문점이나 DMZ를 방문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작년 5월 방한한 바이든 대통령은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부터 방문하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것은 한·미가 이제는 ‘경제안보와 기술안보’의 동반자관계라는 점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행보로 해석되었다.

  특히 2022년 10월 백악관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NSS:National Security Strategy)에서 밝혔듯이 중국으로부터의 도전에 대한 대응을 미국의 최우선 순위 과제로 삼고 있는 바이든 정부로서는, 최근 경제와 기술을 포괄하는 경제안보에 초점을 맞춰 대내·외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러한 정책 방향에서 한국은 빼놓을 수 없는 협력의 대상자이다.


경제 동맹의 핵심, 공급망 협력


  경제동맹의 핵심은 공급망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과 자국 내 제조시설 확충을 추진해왔다. 2021년 1월 출범한 바이든 정부는 경제안보 관련 현황 파악부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처음으로 서명한 행정명령은 100일 동안 반도체, 배터리, 희소금속, 의약품 4개 핵심 품목에 대한 공급망 취약성 분석을 끝내고, 1년 후인 2022년 2월까지 국방, 보건, 정보통신기술, 에너지, 물류, 농산품 및 식품 등 6개 주요 산업 분야의 공급망 실태 및 공급망 취약성에 대한대응 조치를 담은 실태 보고서를 발간하라는 것이었다.


  2021년이 현황 파악의 해였다면 2022년은 핵심 분야별 대응 조치들이 취해진 해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021년 검토했던 4가지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국내 산업 역량 강화를 위한 산업정책과 국제협력을 위한 협력체 구축이실행되었다. 반도체 분야는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과 팹4(FAB4) 협의체, 배터리 및 희소금속 분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과 핵심광물안보 파트너십(MSP: Minerals SecurityPartnership), 의약품과 관련해서는 바이오 행정명령(EO 14081, Advancing Biotechnologyand Biomanufacturing Innovation for aSustainable, Safe, and Secure AmericanBioeconomy)이 모두 2022년 하반기 발효되거나 구축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반도체 및 배터리 제조강국인 한국을 공급망 협력의 핵심 파트너로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와 배터리는 첨단기술에 기반한 혁신경제와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품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안보를 중심으로 한 한미 간 연대 강화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도 발생했다. 미국산 친환경차에 대한 차별적인 보조금 지원 조항을 포함한 IRA 법안의 제정과 발효다. 한국 국민들은 미국이 겉으로는 한미 관계 강화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자국을 우선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이 자국우선주의로 흐르게 되는 부분은 앞으로 미국과 포괄적 전략동맹을 선언한 우리에게도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보인다. 특히 미·중 간 갈등이 깊어질수록 미국의 對중국 정책에 대한 논란도 덩달아 커지고 미국 국내정치적 불확실성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10월 12일 백악관이 발간한 미국국가안보전략(NSS: National Security Strategy)에서조차 국내 정치 혼란을 언급하고 있을 정도다. 작년 IRA 사태에서 보듯, 미국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은 비합리적인 정책을 유발하고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IRA 사태는 그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우리는 미국과 필요없는 마찰을 줄이고 관계 강화를 위해서라도 우리 국가이익의 우선순위와 협상전략을 사전에 치밀하게 수립하여 대미 협상력을 제고해 나가야 한다.


다방면의 기술 협력


  미국은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 따라 첨단기술 분야의 지속적 우위 확보, 기술 유출 차단을 위한 전방위적 견제 조치를 추진 중이다. 2022년 8월 9일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미국의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이 발효되었다. 반도체과학법에는 對중 반도체 산업 견제를 위한 가드레일 조항과 미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527억 달러가 포함되었다. 반도체과학법의 또 다른 한 축은 국가 핵심기술 육성에 지원되는 2천억 달러다. 또한 미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인 EU, 호주, 일본, 한국 등과 기술 안보측면의 동맹도 강화하고 있다. 2021년 출범한 미국-EU 무역기술위원회와 2022년 5월 출범한 인태경제프레임워크가 그 예다.


  한·미 간에는 1976년 체결된 과학기술 협력협정을 기반으로, 정상회담, 과기공동위 등을 활용한 양국 간 협력 의제 및 사업을 발굴하고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있었던 2차례 정상회담에서는 한·미 양국 간 과학기술 분야의 협력 분야를 양자, 바이오, 6G, 우주, 원자력, 사이버보안 등 첨단기술 전반으로 확대하였다. 또한 1993년부터 30년간 이어진 장관급 과기공동위 채널에서는 나노, 로보틱스, 보건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공동연구 및 인력교류 등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미국은 그간 한국과의 정부 간 기술 협력에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선진기술을 보유한 미국으로서는 한국을 기술 협력이 아닌 기술이전의 대상으로만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미·중 간 전략경쟁이 가속화함에 따라 미국이 한국의 기술력과 생산력에 대해 재평가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전략적 위상과 함께 대외 레버리지를 강화하고 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첨예화될 경우, 미국은 한국을 자신의 기술 패권 영역으로 유치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첨단 과학 분야 공동연구 및 핵심기술 이전 등의 혜택을 제공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미국은 경쟁국에게 빼앗기기 싫은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하여 기술개발 혹은 상용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미국과의 협력 단계가 성숙되어 분야별로 구체적 협력 의제를 도출하기 쉬운 상황으로 보인다. 미국이 안보적 차원에서 타국과의 협력을 제한했던 우주, 원자력 등의 민군 겸용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국과의 실질적 협력을 허용할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는 해외 원전시장에서 한·미 간 협력뿐만 아니라 민간 우주 탐사, 과학, 항공 연구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약속하고, 한국의 아르테미스 약정(Artemis Accords) 서명을 위해 협력할 것을 명시했다. 또한, 2021년 9월 15일 발표된 호주, 영국, 미국 3자간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 창설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명목으로 호주가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미국이 지원하는데 합의한 것으로서,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크다. 


미래지향적 동맹을 위한 제언


  향후 양국 경제·기술 동맹은 미래지향적 협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다양한 협력 분야별로 지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국 간 지원기관 기능의 확대가 필요하다. 둘째, 한·미 양자 채널뿐 아니라 IPEF, 한·미·일 협의체등 다자외교채널 등을 통해 한·미 협력 채널을 강화하여 분야별 협력을 뒷받침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셋째, 분야별 협력 전략을 차별화하여 추진하고 이들이 전략적으로 연계·실행될 수 있도록 인력·자금 등 협력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양국의 산업 및 기술 정책이 과도한 자국우선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한·미 간 소통강화를 통해 미래지향적 포괄 동맹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