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70주년 특집 1]
한미동맹 성공, 70년을 넘어 100년을 바라보라

방 형 남 (편집위원장,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이다. 한미동맹의 출발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8월 8일 가조인(假調印)을 거쳐 그해 10월 1일 변영태 한국 외무장관과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에 의해 정식 조인됐다. 우리에게는 6·25전쟁이 끝난 뒤 석 달도 안된 불안한 안보상황에서 주어진 크나큰 선물이었다. 다시는 외부세력의 침략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준 외교적 안보적 보증서이기도 했다.
선진국 수준의 국력을 누리는 현재 국민 감각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당시 상황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되돌아보자.
한미동맹의 주역인 이승만 대통령은 방위조약 가조인 뒤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누대(累代)에 걸쳐 이 조약으로 인해 많은 혜택을 누릴 것이다. 이 분야에 있어서 한미양국의 공동 노력은 외부 침략자들로부터 우리의 안보를 오랫동안 보장할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조약 서명 다음날인 10월 2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동맹 체결 기념대회에서는 “미국이 침략을 당하였을 때에는 우리나라 군대를 파견하여 미국을 돕고, 우리나라가 침략을 당하였을 때는 미국이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를 돕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동맹의 혜택 누릴 것
변 외무장관이 워싱턴 조인식에서 한 연설은 훨씬 절절하다. “우리 한국인은 오직 자유세계에서 살기를 희구할 뿐이다. 자유 애호 미국인은 한국의 이익이 관계되는 한 자유세계에 한국이 남아있도록 원조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오늘 한국과 미국은 이와 같은 양국 국민의 소원이 결실된 것을 볼 수 있으니 이는 자유옹호에 기여되는 것이다. 수천 명의 미국인이 한국의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쳤으며 미국 납세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수십 억 불이 역시 동일한 목적 하에 소비됐다. 우리가 지금 조인한 조약은 이와 같은 죽음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이요, 미국인의 막대한 금액이 허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미국이 언제나 우리 뒤에서 지지하고 있다는 생각은 자유를 위하여 싸우려는 우리의 결심을 공고히 할 것이며 난국 극복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무한한 고무(鼓舞)의 원천이 될 것이다. 한국인은 죽음과 학살과 황폐(荒廢)에 인내하여 왔으며 아직도 자유를 위해서는 더 인내할 용의가 있다. 우리는 이제 미국인의 자유도 수호하겠다고 서약하는 바이다. 만일에 미국의 자유가 직접 위협되는 경우에 우리 자신들을 위해 전사한 미국인의 자손의 자유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칠 용의가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당시 사설에서 한미동맹 출범을 환영하면서 특별히 미군의 한반도 주둔 의미를 강조했다. “미국군이 한국 영토에 주둔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은 공산군을 접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 있어서 또는 한국의 군비가 아직 형성 도중에 있는 금일 당연한 규정이라고 볼 것이다. 반면에 미국으로서는 일견 화약고 위에 발을 디디고 있는 듯한 모험적인 또는 용단적인 결의라고 볼 수 있다.”
정부와 언론이 똑같이 한미동맹 체결에 안도 하면서도 북한의 재침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상태로 당시 정세를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미가 안보전선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로 한 뒤 70년이 흐른 지금 한미동맹은 가장 성공적인 동맹으로 꼽힌다. 예속과 극빈의 구덩이에 빠질 뻔했던 우리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 중 하나가 한미동맹이었다.
지난 70년은 한국에게는 눈부신 성장의 역사다. 한국은 1953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7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였다. 이제는 3만4940달러(2021년)의 소득을 향유하는 부유한 국가로 고속 성장했다. 미국의 도움으로 안보 위협에 대처하면서 경제발전에 매진한 결과다. 최악의 상황에서 한미동맹이라는 탁월한 돌파구를 이끌어낸 지도자의 혜안(慧眼)과 외교력이 후손에게 남긴 유산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한미동맹 70년 회고가 장밋빛이어서 다행이지만 아직은 행진을 멈출 때가 아니다. 북핵 위협 등 새롭고 강력한 도전이 한미 양국의 앞길을 막고 있다. 인간에게만 나이 들면 지혜가 생기는(old and wise) 보너스가 있는 게 아니다. 70년을 맞은 한미동맹도 지혜를 짜내 업그레이드에 나서야 한다.
한미동맹 성공, 100년 이후까지 진화해야
첫째, 한미동맹의 성공을 100년 이후까지 이어지게 하는 진화전략이 필요하다. 우리의 주적인 북한은 핵을 가진 3대 세습 독재자가 통치하는 더욱 위험한 상대가 됐다. 북한의 울타리인중국은 시진핑의 1인 지배체제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고 있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지구촌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한미동맹 출범 당시처럼 북중러 3자 위협이 재현될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한미동맹은 오랫동안 비대칭 동맹(asymmetric alliance)의 속성이 강했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혜택을 받는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이 당당한 파트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됐다. 한미 혈맹은 베트남 전쟁에서 함께 싸우며 더욱 강해졌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으로 지평을 넓혔다. 우리 경제성장의 과실도 한미동맹을 윤택하게 했다. 평택 기지(캠프 험프리스)는 건설비 107억 달러의 92%를 부담한 한국의 전폭적 지원으로 해외주둔 세계 최대 미군기지로 우뚝 섰다. 1991년부터 시작된 주한미군 주둔비용 분담도 어느덧 분담률 50%를 넘겨 매년 1조원 이상을 한국이 지불하고 있다.
새로운 위기의 등장과 우리의 역량 성장을 배경 삼아 70주년을 한미동맹 100년의 청사진을 만드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양국 간에는 2009년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과 2013년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이 있다. 한미전략동맹 심화와 양자(兩者), 지역, 범세계적 차원의 미래협력을 추진하기로 한 이들 합의를 토대로 새로운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동맹 훼손과 후퇴를 막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지미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도널드 트럼프의 우격다짐 방위비 청구 등 미국발 동맹 훼손 시도가 있었다. 한국의 지도자들도 북한의 위장대화 전술에 속아 ‘퍼주기 선물’로 평양 정권을 기사회생하게 하는 이적행위를 여러 차례 저질렀다. 그때마다 한미동맹은 약화됐고 북한의 위협 증대라는 부메랑까지 맞게됐다. 동맹 복원을 위해 치러야 했던 시간과 노력은 피할 수도 있던 낭비였다.
한미동맹이 양국 정권에 관계없이 지속가능한 어젠다가 되도록 정상회담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상호방위조약의 정신을 되새기고 실천을 다짐하는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각자 이승만을 모델 삼아 시대적 소명인 한미동맹 진화 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셋째, 위협에 대한 한미 양국의 정확한 판단과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 북한 정권에 대한 오판이 한국전쟁을 막지 못했다. ‘제2의 6·25’가 오지 않게 하려면 평양발 위협의 실체와 의도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저들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자행했다, 이제는 공공연히 핵사용 위협까지 하는데 말 폭탄으로 치부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현실적 도발로 보고 대처해야 한다. 예방을 위해서는 한미간 정보공유와 긴밀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다행스럽게도 ‘잊혀진 전쟁’이던 6·25가 최근 들어 미국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지킨 대한민국이 기적의 성공 스토리를 쓰면서 동맹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의 여론도 한미동맹 강화를 지지하고 있다. 한국일보의 신년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3.8%가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미국 영향력에서 탈피해 독자외교를 해야 한다는 답변은 11.4%에 불과했다. 올해야말로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미동맹 70주년 특집 1]
한미동맹 성공, 70년을 넘어 100년을 바라보라
방 형 남 (편집위원장,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이다. 한미동맹의 출발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8월 8일 가조인(假調印)을 거쳐 그해 10월 1일 변영태 한국 외무장관과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에 의해 정식 조인됐다. 우리에게는 6·25전쟁이 끝난 뒤 석 달도 안된 불안한 안보상황에서 주어진 크나큰 선물이었다. 다시는 외부세력의 침략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준 외교적 안보적 보증서이기도 했다.
선진국 수준의 국력을 누리는 현재 국민 감각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당시 상황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되돌아보자.
한미동맹의 주역인 이승만 대통령은 방위조약 가조인 뒤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누대(累代)에 걸쳐 이 조약으로 인해 많은 혜택을 누릴 것이다. 이 분야에 있어서 한미양국의 공동 노력은 외부 침략자들로부터 우리의 안보를 오랫동안 보장할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조약 서명 다음날인 10월 2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동맹 체결 기념대회에서는 “미국이 침략을 당하였을 때에는 우리나라 군대를 파견하여 미국을 돕고, 우리나라가 침략을 당하였을 때는 미국이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를 돕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동맹의 혜택 누릴 것
변 외무장관이 워싱턴 조인식에서 한 연설은 훨씬 절절하다. “우리 한국인은 오직 자유세계에서 살기를 희구할 뿐이다. 자유 애호 미국인은 한국의 이익이 관계되는 한 자유세계에 한국이 남아있도록 원조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오늘 한국과 미국은 이와 같은 양국 국민의 소원이 결실된 것을 볼 수 있으니 이는 자유옹호에 기여되는 것이다. 수천 명의 미국인이 한국의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쳤으며 미국 납세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수십 억 불이 역시 동일한 목적 하에 소비됐다. 우리가 지금 조인한 조약은 이와 같은 죽음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이요, 미국인의 막대한 금액이 허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미국이 언제나 우리 뒤에서 지지하고 있다는 생각은 자유를 위하여 싸우려는 우리의 결심을 공고히 할 것이며 난국 극복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무한한 고무(鼓舞)의 원천이 될 것이다. 한국인은 죽음과 학살과 황폐(荒廢)에 인내하여 왔으며 아직도 자유를 위해서는 더 인내할 용의가 있다. 우리는 이제 미국인의 자유도 수호하겠다고 서약하는 바이다. 만일에 미국의 자유가 직접 위협되는 경우에 우리 자신들을 위해 전사한 미국인의 자손의 자유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칠 용의가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당시 사설에서 한미동맹 출범을 환영하면서 특별히 미군의 한반도 주둔 의미를 강조했다. “미국군이 한국 영토에 주둔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은 공산군을 접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 있어서 또는 한국의 군비가 아직 형성 도중에 있는 금일 당연한 규정이라고 볼 것이다. 반면에 미국으로서는 일견 화약고 위에 발을 디디고 있는 듯한 모험적인 또는 용단적인 결의라고 볼 수 있다.”
정부와 언론이 똑같이 한미동맹 체결에 안도 하면서도 북한의 재침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상태로 당시 정세를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미가 안보전선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로 한 뒤 70년이 흐른 지금 한미동맹은 가장 성공적인 동맹으로 꼽힌다. 예속과 극빈의 구덩이에 빠질 뻔했던 우리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 중 하나가 한미동맹이었다.
지난 70년은 한국에게는 눈부신 성장의 역사다. 한국은 1953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7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였다. 이제는 3만4940달러(2021년)의 소득을 향유하는 부유한 국가로 고속 성장했다. 미국의 도움으로 안보 위협에 대처하면서 경제발전에 매진한 결과다. 최악의 상황에서 한미동맹이라는 탁월한 돌파구를 이끌어낸 지도자의 혜안(慧眼)과 외교력이 후손에게 남긴 유산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한미동맹 70년 회고가 장밋빛이어서 다행이지만 아직은 행진을 멈출 때가 아니다. 북핵 위협 등 새롭고 강력한 도전이 한미 양국의 앞길을 막고 있다. 인간에게만 나이 들면 지혜가 생기는(old and wise) 보너스가 있는 게 아니다. 70년을 맞은 한미동맹도 지혜를 짜내 업그레이드에 나서야 한다.
한미동맹 성공, 100년 이후까지 진화해야
첫째, 한미동맹의 성공을 100년 이후까지 이어지게 하는 진화전략이 필요하다. 우리의 주적인 북한은 핵을 가진 3대 세습 독재자가 통치하는 더욱 위험한 상대가 됐다. 북한의 울타리인중국은 시진핑의 1인 지배체제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고 있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지구촌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한미동맹 출범 당시처럼 북중러 3자 위협이 재현될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한미동맹은 오랫동안 비대칭 동맹(asymmetric alliance)의 속성이 강했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혜택을 받는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이 당당한 파트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됐다. 한미 혈맹은 베트남 전쟁에서 함께 싸우며 더욱 강해졌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으로 지평을 넓혔다. 우리 경제성장의 과실도 한미동맹을 윤택하게 했다. 평택 기지(캠프 험프리스)는 건설비 107억 달러의 92%를 부담한 한국의 전폭적 지원으로 해외주둔 세계 최대 미군기지로 우뚝 섰다. 1991년부터 시작된 주한미군 주둔비용 분담도 어느덧 분담률 50%를 넘겨 매년 1조원 이상을 한국이 지불하고 있다.
새로운 위기의 등장과 우리의 역량 성장을 배경 삼아 70주년을 한미동맹 100년의 청사진을 만드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양국 간에는 2009년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과 2013년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이 있다. 한미전략동맹 심화와 양자(兩者), 지역, 범세계적 차원의 미래협력을 추진하기로 한 이들 합의를 토대로 새로운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동맹 훼손과 후퇴를 막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지미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도널드 트럼프의 우격다짐 방위비 청구 등 미국발 동맹 훼손 시도가 있었다. 한국의 지도자들도 북한의 위장대화 전술에 속아 ‘퍼주기 선물’로 평양 정권을 기사회생하게 하는 이적행위를 여러 차례 저질렀다. 그때마다 한미동맹은 약화됐고 북한의 위협 증대라는 부메랑까지 맞게됐다. 동맹 복원을 위해 치러야 했던 시간과 노력은 피할 수도 있던 낭비였다.
한미동맹이 양국 정권에 관계없이 지속가능한 어젠다가 되도록 정상회담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상호방위조약의 정신을 되새기고 실천을 다짐하는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각자 이승만을 모델 삼아 시대적 소명인 한미동맹 진화 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셋째, 위협에 대한 한미 양국의 정확한 판단과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 북한 정권에 대한 오판이 한국전쟁을 막지 못했다. ‘제2의 6·25’가 오지 않게 하려면 평양발 위협의 실체와 의도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저들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자행했다, 이제는 공공연히 핵사용 위협까지 하는데 말 폭탄으로 치부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현실적 도발로 보고 대처해야 한다. 예방을 위해서는 한미간 정보공유와 긴밀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다행스럽게도 ‘잊혀진 전쟁’이던 6·25가 최근 들어 미국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지킨 대한민국이 기적의 성공 스토리를 쓰면서 동맹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의 여론도 한미동맹 강화를 지지하고 있다. 한국일보의 신년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3.8%가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미국 영향력에서 탈피해 독자외교를 해야 한다는 답변은 11.4%에 불과했다. 올해야말로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