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우호협회 32년 성취와 미래 - 회장단에게 듣는다(1부)

- 일 시 : 2월 27일 오후 4~6시30분
- 장 소 : 광화문 협회 사무실
- 참석자 : 한철수 전 회장, 황진하 현 회장, 이성원 이사, 박정수 부회장, 방형남 편집위원장(좌담 사회)
청년기에 접어든 협회의 도약과 진화를 위해 한철수 전 회장님과 황진하 현 회장님 그리고 협회 창설 멤버이신 이성원 이사님과 박정수 부회장님을 모셔서, 협회의 창설 배경과 경과 그리고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좌담회를 마련했습니다. 두 분의 창설 멤버들께서는 오랜 기간 협회 발전을 위해 남다른 업적을 남기셨고, 두 분 회장님은 군 장으로 국방현장에서 그 이후에는 대사와 국회의원으로 정치 외교 안보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신 원로이시기 때문에 한미관계, 남북관계 등 국내외 현안에 대한 고견도 듣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설명 : 1991.6.26. 한미우호협회 창립총회>
한미우호협회는 1991년 탈냉전 이후 세계가 새로운 질서 구축을 위해 격변하는 풍랑 속에서 고(故) 김상철 변호사를 비롯한 정치 교육 사회 경제등 각계 지도층 인사들이 참여해 출범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지구촌 평화 무드의 반작용으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세력을 키우면서 미 문화원 점거 등 반미사태가 잇달아 안보 상황이 위태로워지던 시기였습니다. 먼저 한미우호협회의 출범에 대한 회고부터 들려주시지요.
이성원 이사 : 저는 공과대 나오고 정치 같은 분야와는 관계를 맺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한총련이 한참 드셀 때였습니다, 어느 날 신문을 보니까 정원식 총리가 내정되고서 고별 강연 중 대학생들이 테러(밀가루 테러)를 했는데 한총련에 겁을 먹어서인지 거의 얘기를 안 하더라고요. 그런데 김상철 변호사가 조선일보에 격문 같은 칼럼을 기고했어요. 내용을 읽어보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편지를 써서 부치려고 가다보니김 변호사가 있는 KAL 빌딩이 보이더군요. 사무실 카운터에 편지를 주고 나오는데 “좀 보시자”고 한다고 해서 만나게 됐습니다. 김 변호사께서 “우리가 협회를 결성하려고 하니 참석하시죠”라고 권유해 엉겁결에 창립회원이 됐습니다. 그 분이 선견지명이 있어요. 이런 조직은 30년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데 우리 협회는 30년이 넘어 지속되고 있거든요. 그렇게 시작해서 정치니 군사니 경제니 전혀 모르던 공대 출신이 지금은 반전문가가 됐습니다.
창립 회원들은 학계에서 많이 참석하셨고 처음에는 일종의 학술단체처럼 해보자고 했습니다. 이사장으로 조완규 서울대 총장을 모셨는데 총장일 때는 어렵다고 해서 몇 개월 지나 정년 퇴직 후 취임했어요. 김 회장이 미는 힘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회장, 이사장과 연계되는 학술 분야가 많았는데 그 후 관계 장관 등이 모임에 나오고 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 이성원 이사 / 한국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이사, 한국정밀공업 대표 >
박정수 부회장 : 저는 당시 해병대 준장으로 한미연합사의 연습처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김 변호사는 전혀 몰랐고 이 이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신문 칼럼을 보고 저도 감명을 받았어요. 저는 전화를 걸었습니다. 칼럼 내용에 동감한다며 앞으로 열심히 활동해 달라고 당부 드렸더니 “한미우호협회라는 단체를 만드는데 같이 하자”고 하시더군요. 당시 전역 6개월 전이어서 12월 말일 전역 하니까 그때 가입하겠다고 했으나 막무가내였어요. 그 후 워크숍 가서 함께 대화하고 논의하면서 협회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왜 한미우호협회를 만들어야 했느냐 또 왜 많은 사람들이 그때 동조를 했느냐. 당시에 한미 친선을 표방하는 단체가 이미 두 개나 있었어요. 그런데 이 단체들은 전부 관변 단체 비슷해서 좌파나 운동권에서 뭐라고 해도 대응을 못해요. 왜냐하면 자기 기업 그 다음에 자기 경력 등이 걸리니까요.
예를 하나 들면 2002년 2월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게 돼 있었어요. 그분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대응했었지요.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집권당인 새천년 민주당의 국회의원 5~6명이 미 대사관에서 대사를 만나 부시 방한에 반대한다며 오지 말라고 항의를 했어요. 우리 한미우호협회는 이를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 판단했습니다. 당시 한미관련 단체가 많이 생겨서 약 10여 개 있었는데 연명으로 부시 대통령 방한 환영 성명서(제가 작성한 것으로 기억합니다)를 만들어 미 대사에게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일부 국회의원이 한 얘기는 그들의 생각이 고 우리 국민들은 환영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서명을 받으려 했더니 타 단체에서 못하겠다는 거예요. 어떤 단체는 회장은 못하니까 부회장이 대신 사인하라고 하더군요. 한미동맹 강화보다는 김대중 정부와 집권 여당인 새천년 민주당, 좌파 단체들 눈치 보느라고 그런 거지요. 그래서 우리 협회가 일반 시민단체들과 함께 성명서를 미 대사관에 전달했습니다. 김 변호사가 왜 한미우호협회를 순수 민간단체로 설립해서 진짜 활동을 하자고 했는지 알 수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 박정수 부회장 / 싸이버텍 고문, 연합사 전투모의센터 대항군사령관, 해병 제6여단장 >
한 회장께서는 2009년 1월 4대 회장으로 취임하셨는데 재임 기간에 북한이 2~6차 핵실험을 해 남북관계가 최악의 위기에 빠졌고, 한미 FTA를 둘러싼 갈등으로 한미관계 또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당시 국론 결집과 한미동맹 회복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셨지요?
한철수 전 회장 : 제가 2009년부터 2019년도까지 10년 동안 회장을 했어요. 운이 좋아서 대부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었고 문재인 정권과 좀 겹쳤죠. 초기 이명박 정권 때 좌파들과 MBC가 조직적으로 광우병 선동을 해서 대통령 부임 몇 달 만에 정권이 쓰러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장관들이나 필요한 기관에서 대비를 못했고 결국 항복을 해버렸어요.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항복을 한 것으로 봅니다. 이 대통령이 아침 이슬을 불렀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좌파들의 전략이 승리를 한 것이고, 정부가 내내 끌려간 거예요.
당시에 한미 양국 간에 FTA 논의가 시작되었고, 국회에서 동의해야 대통령이 비준하는데 당시 야당이 적극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좌파 시민단체를 동원해서 반대 데모를 하고 난리를 쳤습니다. 한미 FTA는 한미동맹과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어서 협회에서 전임회장님, 박정수 장군 같은 분들을 모시고 논의를 했어요. 논의 결과 협회에서 성명서를 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내용을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 TF를 만들었어요. 전면 광고는 돈이 없어 못하고 사설 바로 앞면에 5단 광고를 냈죠. 2회에 걸쳐서 각각 2개 신문사에 했어요. 2011년 11월 16일자 동아일보와 문화일보에 “국민들이여 깨어납시다. 한미 FTA를 놓치면 엄청난 재앙이 옵니다.” 2012년 2월 27일자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국민들이여 일어섭시다. 한미 FTA는 우리의 생존과 번영의 축입니다.”라는 제하의 광고를 냈습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어요. 과감하게 그렇게 하는 단체가 없었거든요. 격려 전화를 많이 받았고 어떤 시민은 광고를 스크랩해서 벽에 붙여 놓고 자기도 보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설명도 한다고 알려왔습니다. 한미동맹을 위해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미 FTA가 체결이 돼서 다행이지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FTA가 한국이 이득을 많이 보고 한국에게 유리하니까 수정하자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또 하나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북한 김정은 추종자들, 주사파들이 권력층에 많이 포진하면서 안보위험이 초래된 거예요. 그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한다고 그래요. 그 양반도 당선된 지가 얼마 안 됐을 때예요. 이 사람에게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트럼프를 환영하는 전면 광고를 내기로 했지요. 한국어와 영어로 광고를 만들어서 2017년 11월 7일자 조선일보와 Korea Herald에 게재했어요. 즉시 미국대사관에 전달되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확인되었어요 그 당시 미국 사람들은 한국의 3不정책 때문에 한국 정부를 매우 불신했거든요. 정부가 중국 경사(傾斜) 외교 전략을 세우고 시행할 때 한미관계 회복을 위해 기여한 것에 보람을 좀 느낍니다.
그다음은 사드 문제인데요. 좌파가 선동을 하고, 중국도 관여를 했죠. 시민들이 사드기지 출입구를 막아서 보급품도 못 들어가게 하는 상황이 오래 계속됐습니다. 눈치 보느라고 3不정책에 대해 주요 일간지에서도 논평을 안 하고 반대도 안했어요. 이건 안 되겠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궁리 끝에 우리 협회가 주관하는 미군장병 초청 위로행사(6월과 12월 연 2회)를 활용하기로 했어요. 내가 총대를 메야겠다고 생각했죠. 우리 행사에는 미국 대사도 오고 미 장군들도 참석합니다. 미 장군들이 왔을 때 우리는 사드를 강력히 지지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는데 그게 의외로 성과를 봤어요. 한국 정부가 중국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설명에 많은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며 지지하니까 고마웠던 것 같아요. 공개적으로 많은 한국민들이 박수를 치는 장면이 미대사와 장군들, 지휘관들에게 한국이 중국에 기울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죠.
다음 전작권 전환 문제인데 전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전작권 전환이 곧 이뤄지도록 돼 있었어요. 연장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들이 전부 서명을 했어요. 청와대 담당비서관을 만나 연합사 부사령관들의 성명서를 대통령에게 보고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원래는 연장을 더 길게 하려고 그랬는데 우선 해 놓고 다시 논의 하자고 해서 몇 년 연장으로 낙착됐습니다.
< 2002.9.23. 「STARS AND STRIPES」 , 9.11테러 후 협회의 미국 위로 광고 >
또 하나는 인천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건 이예요. 당시 반미 감정이 굉장히 확산됐지요. 그리고 미국 정부와 국민이 한국을 의심하는 일종의 심프텀(증세)이 생겼을 땐데 제가 성우회 부회장으로 회장 대리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성우회가 주동이 되어 뭘 좀 하자고 논의한 결과 백선엽 대장님을 모시고 워싱턴을 방문해서 미측 주요 인사를 만나 설명을 하기로 했습니다. 완전히 좌파인 줄 알았던 이종석 당시 안보보좌관이 의외로 한미관계에 관심이 많더군요. 그가 전경련에 애기해서 자금을 지원받았어요. 백 장군은 한국전쟁의 영웅이기 때문에 미국에도 많이 알려지고 미국 사람들도 굉장히 존경을 합니다. 한미연합사 산파 역할을 한 유병현 초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도 함께 갔습니다. 두 분과 성우회 부회장단 등 10여 명이 워싱턴에 갔습니다. 당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백대장 이름으로 면담신청을 하니까 회의 중에 나와 우리를 만났습니다. 한국의 반미 감정이 일부 좌파의 준동임을 설명하고 한미동맹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설명했습니다. 방문 중에 미측에서 한미연합사령관을 대장에서 중장으로 격하 시킨다는 소식을 듣고 해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유 장군이 초대 연합사령관을 지낸 베시 장군과 접촉하는 등 미측과 긴밀하게 논의한 결과 럼스펠드 장관으로 부터 대장 보직 결단을 받아냈습니다.
< 한철수 명예회장 / 서경대학교 총장, 주 브라질,대만 대사,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
한미동맹은 한미 양국 상황, 특히 두 나라의 정권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었습니다. 회장으로 협회를 이끄시면서 양국 상황과 정권의 성향에 따른 변화를 많이 경험하셨지요?
황진하 회장 : 국회 그만두고 정계 은퇴 선언을 한 후 마지막 봉사하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한미동맹을 강화시키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판단에서 한철수 전 회장님을 찾아갔어요. 한미우호협회에서 좋은 일을 하시는데 도와드렸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받아주시더군요. 한미우호협회 이사로서 10개월 정도 활동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죠. 협회 상황이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한 회장님께는 말씀을 드렸는지 모르지만 좌파단체들이 언론사를 사칭하고 이전 사직동 사무실에 와서 “왜 호텔에 가서 식사를 하고 돈을 많이 썼느냐”, “한미우호협회가 뭐가 좋아서 오느냐” 등등 삐딱한 얘기를 하면서 우리 협회를 공격한다는 거예요. 꼭 필요한 것만 쓰고 절약해 협회를 운영한다고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언론에 발표하곤 했어요. 그 뒤에는 꼭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협회가 정부 보조금을 1년에 3~4천만 원, 많을 때는 좀 더 받았는데 그들이 다년간 다음 해와 그 다음 해에는 정부 보조금이 싹 없어졌어요. 제로예요, 제로. 제가 그때는 이사로서 살림을 들여다보고 그럴 때는 아니었지만 정부에 따라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행안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만나 한미동맹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항의도 했습니다. 1년 반쯤 지나고 나니 3천만 원 정도 보조금이 나왔고 그다음 해에는 6천만 원으로 늘어났습니다. 정부 성향이 한미동맹에 부정적이다 보니 회원들의 협회활동이 과거보다 약화되고 후원금 내는 기업들도 눈치를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협회의 정치적 중립을 부각시키면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미국과 동맹관계가 중요하다는 얘기만 강조하고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이렇게 저렇게 따지거나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제가 회장이 되고 나서 보니 문재인 정부에서 6·25나 7·27에 별도의 추모 행사를 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협회가 나서서 삼각지 전쟁기념관 미군 참전비에서 추모 행사를 했습니다. 미 대사와 연합사령관도 참석했는데 예상 밖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조선일보가 정부가 해야 할 행사를 한미우호협회가 대신했다고 크게 보도하는 등 언론의 호응을 받으면서 행사를 치렀어요. 미측도 감사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는 달리 작년 7·27 추모행사를 주관했습니다.
< 황진하 회장 / 국회 국방위원장(3선 의원), 유엔평화유지군 사령관, 주미대사관 국방무관 >
한 전 회장 : 황 회장께서 말씀하셨지만 저는 문재인 정부 때 탄압을 좀 받았어요. 뉴스타파라고 있지요. 그 쪽에서 우리 사무총장에게 전화가 왔어요. 안 만나겠다고 했는데 카메라를 들고 쳐들어 왔어요. 벌써 우리 협회에 대해 다 조사를 했습디다. 우리 협회는 아주 깨끗하게 운영하거든요. 이사회나 총회 등 모든 행사가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신문에서 우리 협회 행사에 대해서 잘 써주게 되면 논설위원과 관계자들을 초청해서 고맙다는 표현을 할 때도 제 돈으로 했어요. 그들이 다 조사를 했지만 뭐 나올 게 없었지요. 그러더니 뭘 트집 잡느냐 하면 “태극기 부대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보냈다는데 무슨 목적으로 보냈습니까, 돈은 어디서 났습니까” 라고 물어요. 협회 총회 때 태극기와 성조기를 보내자는 제안이 나왔고, 제가 낸 50만 원을 포함해 몇 백만 원이 모금되어서 지원한 적이 있거든요. 그렇게 설명했더니 “미국한테 아첨만 하냐”는 식으로 억지 시비를 걸기도 했어요. 또 하나 말씀드리면 미국 해리스 우리 정부의 3不정책으로 미국이 굉장히 기분 나빠할 때 부임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해리스 대사 환영 겸 열린 연말행사에서 3不정책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내용을 인사말에 넣어 발표했어요. 해리스 대사가 우리의 진심을 듣고 감격하더군요.
황 회장께서는 협회의 ‘광화문 시대’를 여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황 회장 : 제가 협회 회장을 맡았을 때 사무실이 사직공원 근처에 있었어요. 20평 남짓한 오피스텔이었는데 한 회장께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잘 운영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미국 대사관 직원 등 외부인사를 초청하거나 사무실에서 무슨 행사를 할 때 마다 주차공간이 없어 곤란을 겪었습니다. 또 여직원들이 퇴사하면 후임이 잘 안 와요. 화장실 등 근무 환경이 열악해서 그런다는 거예요. 사무실이 작아서 여러 명이 모이는 회의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을 옮기기로 하고 백방으로 다녔습니다. 대림 이준용 회장님이 협회 2대 이사장을 지내셨지만 개인적 친분이 있기도 해서 어렵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무실 상황을 설명했더니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미국대사관에서 가깝고 주차가 편리한 곳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더니 40~50 평 사무실 마련하려면 8억~9억 정도 필요할 거라며 5억 원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 회장께서는 혼자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친다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주셨어요. 시장 조사를 해보니 주변 시세는 8억~9억이어서 모금이 불가피했지만 현재 사무실은 조금 낡은데다 흥정도 잘 해서 4억 5천만 원에 매입하게 됐습니다. 나머지 돈으로 내부 수리, 세금까지 충당했습니다. 이 회장님 덕분에 다른 분에게 손 안 벌리고 광화문 시대를 연 것이지요. 이전 사무실도 이 회장님이 주신것이어서 돌려드리려 했더니 협회에서 쓰라고 하셔서 2억 8천이나 되는 매도대금을 협회 예산에 넣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후원금이 줄고 문재인 정부의 보조금도 끊긴 악조건 속에서 이 회장님의 지원 덕분에 무사히 협회 살림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박 부회장 : 협회 사무실 관련 히스토리 하나 얘기해 볼게요. 협회 창설 초기에는 김상철 변호사 사무실을 이용했습니다. 김 변호사가 회장 임기를 마치며 옮겨 달라고 하는데 사무실을 얻을 예산이 없었습니다. 당시 회장은 박근 전 UN대사이셨고 제가 사무총장을 하고있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사무실을 옮기려다가 여의치 않아서 제가 그 때 사이버테크 회사 CEO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급한대로 이사짐 차를 저희 사무실로 돌렸어요. 공간이 넓지 않아 짐만 내려놓고 한 달 정도를 보냈습니다. 그 뒤 박 대사님이 이준용 이사장님에게 도움을 청해서 사직동에 사무실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 협회가 지정기부금 단체로 지정이 되지 않아 사비 지원이 되고 말았어요. 그런데도 이 이사장님은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으셨어요. 참 통이 크신 분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황 회장 : 아무튼 제가 그렇게 해서 이 사무실을 마련했고, 전임 회장님이나 이사장님들을 모셔서 입주식도 하고 설명도 드리고 했습니다. 새 사무실을 마련한 뒤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든 행사를 여기서 다 했어요. 도시락 먹으면서 3년 동안 많은 행사를 했습니다. 광화문 시대를 연 덕을 톡톡히 봤지요. 이준용 회장님이 도와주지 않으셨으면 코로나 때문에 아무 활동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 방형남 편집위원장 /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9개월이 되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해 5월 취임 10여일 만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해 첫 한미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워싱턴 국빈방문도다가옵니다. 현재의 한미관계를 어떻게 평가하시며 앞으로의 발전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황 회장 : 지금 윤석열 정부와 미국 바이든 정부의 관계는 더없이 좋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반미 단체들이 ‘민주’라는 이름을 달고서 미국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취임사에부터 정치적 목표에 한미 동맹을 기초로 한다는 정신을 깔고 시작했어요. 다음으로 미국 사정이 한국을 굉장히 필요로 하는 시기라는 점입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야 되는데 도움을 줄만한 나라가 별로 없어요. QUAD를 포함해 다자기구를 만들 때도 한국이 꼭 필요한 국가로 성장했거든요.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한미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지난 트럼프 정부에서부터 겪고 있는 국내 어려움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경제 회복을 포함해 국내 현안들을 해소하고 치유하는 과정에 한국에게 불편한 정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그중의 하나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번 윤대통령의 방미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계기가 되고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원자력이 문재인 정부때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회복을 해야죠. 대중국 관계 조율도 필요합니다. QUAD문제도 발전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아직 확장억제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잖아요? 윤 대통령의 방미는 이런 것들을 아울러서 해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약하면 윤-바이든 정부는 좋은 출발을 했고 한미 양쪽의 지난 정부에서 넘어온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을 풀어갈 기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기대할 만하다고 판단합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과 관련해서 확장억제 전략에 대해 말씀해 주셨지만 현재 그 이상의 대응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시지요.
황 회장 :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고 위협이 점점 증가 되는 상황이지만 우리 대비책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많은 국민이 우려하는 가운데 한미 간에 긴밀한 협조가 이어지고 있기는 합니다. 왜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느냐?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의도를 경시하고 안일하게 대처한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은 공개적으로 얘기를 하지는 않지만 북한이 핵 한두 개 가져봐야 소용없다,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방기한 측면이 있죠. 오바마 정부 때도 그렇고 북핵 해결을 위한 회담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절실하게 매달리지 않고 미온적으로 대응했어요.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책임도 크다고 봐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도가 없다, 능력도 없다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북한이 핵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핵개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오히려 북한에 시간을 주고 말았습니다. 북한핵의 위협이 가시화됐는데도 많은 국민들이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요. 마치 이솝우화 처럼 아무리 늑대가 온다고 소리쳐도 믿지 않는 상황이 돼버렸어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저는 한미 동맹을 탄탄하게 만들면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핵우산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핵 보유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고 핵을 억제할 수 있는 미국의 전략자산을 최대한 한반도에 전개시킴으로써 북한의 행동을 막는 쪽으로 가는 거지요. 그게 확장억제전략인데 한국에서 유사시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미국에 불신을 보내니까 마침내 확장억제전략 협의체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한국 외교 국방 차관과 미국 국무 국방 차관이 머리를 맞대는 2+2 협의체가 출범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고, 얼마 전 실질적인 핵확장억제훈련인 TTX가 한미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에서 실시됐습니다. 한미 양국이 합동으로 핵억제훈련을 하면서 억제능력을 계속 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전혀 안 했던 훈련들을 빈번 하게 하고 있으니 한미의 대북정책이 180도 바뀐 것이지요.
일각에서 그 정도로는 안심을 못 한다며 자체 핵무장 또는 전술핵 배치 주장을 합니다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에 핵무장을 위한 빌미를 주게 되고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셈이 되고 말 것 입니다. 한미 동맹이 탄탄하면 유사시 괌에 있는 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이 핵을 만들겠다면 필연적으로 핵 도미노가 오게 됩니다. 우선 일본이 가만히 안 있겠죠. 대만도 핵무장에 나설 겁니다. 그러면 중국이 더 위협적으로 나오고 결국 우리가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핵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핵이 공포의 무기이긴 하지만 비핵전략으로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5대 핵 보유국만을 인정하는 NPT체제의 국제질서 속에서 핵을 컨트롤하되 테러집단도 핵을 보유할 정도로 확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한미 동맹을 통해서 푸는 게 최선의 북핵 해법이라고 봅니다. 저는 여기에 더해 NPG, 즉 핵기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한국이 어떤 상황이 오면 전술핵을 사용하는 조치를 하자고 준비하는, 그래서 최악의 경우 미국의 핵 자산이지만 한미가 같이 쓰기도 하는 단계까지 발전시키는 겁니다. NATO 방식이죠. 윤 대통령께서 얼마 전 핵보유를 거론한 이유는 NPG를 비롯해서 뭔가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의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저는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한 전 회장 : 윤 대통령의 핵 언급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에 대한 사인이자 미국에 대한 신호지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적시에 말씀을 잘 했는데 당장 미국에서 반응이 오거든요. 또 하나 우리가 핵방위 훈련 같은 걸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핵탄이 떨어지게 되면 우리 국민이 어떤 피해를 입게 된다는 걸 미리 알리고 핵방위 시설도 만들어 북핵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해줬으면 합니다.
박 부회장 : 북핵 위기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에 여러 대응방안이 대두되고 있습니다만, 우리 협회에서 어떤 방안이 좋은지 토론을 해서 도출할 수도 없고 어떤 대응을 지지한다고 표명하기도 쉽지않습니다. 전술핵을 배치하든 우리가 핵무장을 추진하든 한미 간에 필요한 행동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신뢰가 바탕이 돼야 유사시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미의 공통분모인 신뢰 확장, 신뢰를 높이는 일을 우리 협회가 해야 되지 않느냐가 저의 생각입니다. 저는 발표 여부를 떠나 지금 이 시점에서는 핵무장을 국가 목표로 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북한이 핵을 쓰겠다고 우리를 협박할 경우, 실제 사용하든 아니면 블랙메일이 됐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실효적 대응은 핵을 가지고 있는 것 외에는 없단 말이에요. 미국이 지금 확장억제가 있지 않느냐고 강조하고 바이든 대통령 집권기간에는 잘 유지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혹시 다음 선거에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상황이 급변할 우려가 있거든요. 그래서 현재 상태를 놓고 괜찮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NATO 보다는 한 단계 낮은 것 아닙니까. 미국이 한반도 분쟁에 개입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그 이전에 미국 국민이 동의해야 한단 말입니다. 미국 국민이 한국을 위해서 북한과의 핵전쟁을 승인할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NATO 방식의 핵공유를 한다고 해서 100% 평화를 보장할 수 있을까요. 최선은 우리나라는 우리 힘으로 지킨다는 목표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미관계에 아쉬운 대목도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 일본 인도 호주가 참여하는 QUAD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임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일본의 한국 배제 로비가 작용한 결과라고 하지만 역내 안보대화에 한국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아닙니까?
한 전 회장 : 아베 전 총리의 국수주의 사상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은 자기들의 식민지였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그런 심리를 보여주는 일본 네티즌들의 글이 많이 올라옵니다. 한국을 우습게보고 한국이 잘 되는걸 아니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살게 된 것도전부 그들의 기술을 훔쳐서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일본인들도 많아요. 그런 측면에서 일본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김대중 정부 때 모처럼 한일 관계를 잘 만들어 놨는데 이후 좌파 정부에서 흔들어 양국 사이가 나빠졌습니다. 빨리 고쳐나가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박 부회장 : 한미일이 협력 관계를 계속 발전시키면 QUAD 참여 여부가 큰 장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QUAD 불참이 100% 우리에게 나쁜 건 아니거든요. 대(對)중국 문제를 볼 때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니까요.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계속 발전시키면 저쪽에서 한국 참여를 요청하는 때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여건이 조성되면 못 이기는 척하고 들어가는 전략을 쓰면 어떨까 싶네요.
황 회장 : QUAD는 원래 쓰나미 구조 활동을 위해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시작했습니다. 이후 쓰나미 정도가 아니라 안보를 위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중국을 견제하는 용도로 발전시키자는 목소리가 나올 때 호주가 일단 빠져나갔었습니다. 당시에 가장 강력한 추가 가입 후보가 우리와 베트남 뉴질랜드였습니다. 4개국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QUAD 4개국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를 잘 발전시키면서 또 중국 일본과 서운함을 해소해 가면 QUAD 참여에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전망합니다. 이 문제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도 충분히 다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본과의 관계도 저는 조금 장기적으로 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일제 시대를 겪었던 분들 입장에서는 일본과의 관계를 상당히 나쁘게 생각하고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렇고 일본 젊은이들도 우리를 무시하는 대신 오히려 가까워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지금은 한국이 일본에게 뒤지는 게 많지 않습니다. 자동차 분야부터 무역, 1인당 GDP까지 일본하고 거의 맞먹어요. 세계화 차원에서 보면 오히려 한국이 앞서가고 있거든요. 우리의 발전과 일본 젊은 세대의 변화를 고려하면 얼마든지 협력을 강화할수 있는 밑바탕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저는 낙관적으로 진단합니다.
<‘영원한 친구들’ 5, 6월호에 계속>
한미우호협회 32년 성취와 미래 - 회장단에게 듣는다(1부)
- 일 시 : 2월 27일 오후 4~6시30분
- 장 소 : 광화문 협회 사무실
- 참석자 : 한철수 전 회장, 황진하 현 회장, 이성원 이사, 박정수 부회장, 방형남 편집위원장(좌담 사회)
청년기에 접어든 협회의 도약과 진화를 위해 한철수 전 회장님과 황진하 현 회장님 그리고 협회 창설 멤버이신 이성원 이사님과 박정수 부회장님을 모셔서, 협회의 창설 배경과 경과 그리고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좌담회를 마련했습니다. 두 분의 창설 멤버들께서는 오랜 기간 협회 발전을 위해 남다른 업적을 남기셨고, 두 분 회장님은 군 장으로 국방현장에서 그 이후에는 대사와 국회의원으로 정치 외교 안보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신 원로이시기 때문에 한미관계, 남북관계 등 국내외 현안에 대한 고견도 듣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설명 : 1991.6.26. 한미우호협회 창립총회>
한미우호협회는 1991년 탈냉전 이후 세계가 새로운 질서 구축을 위해 격변하는 풍랑 속에서 고(故) 김상철 변호사를 비롯한 정치 교육 사회 경제등 각계 지도층 인사들이 참여해 출범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지구촌 평화 무드의 반작용으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세력을 키우면서 미 문화원 점거 등 반미사태가 잇달아 안보 상황이 위태로워지던 시기였습니다. 먼저 한미우호협회의 출범에 대한 회고부터 들려주시지요.
이성원 이사 : 저는 공과대 나오고 정치 같은 분야와는 관계를 맺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한총련이 한참 드셀 때였습니다, 어느 날 신문을 보니까 정원식 총리가 내정되고서 고별 강연 중 대학생들이 테러(밀가루 테러)를 했는데 한총련에 겁을 먹어서인지 거의 얘기를 안 하더라고요. 그런데 김상철 변호사가 조선일보에 격문 같은 칼럼을 기고했어요. 내용을 읽어보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편지를 써서 부치려고 가다보니김 변호사가 있는 KAL 빌딩이 보이더군요. 사무실 카운터에 편지를 주고 나오는데 “좀 보시자”고 한다고 해서 만나게 됐습니다. 김 변호사께서 “우리가 협회를 결성하려고 하니 참석하시죠”라고 권유해 엉겁결에 창립회원이 됐습니다. 그 분이 선견지명이 있어요. 이런 조직은 30년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데 우리 협회는 30년이 넘어 지속되고 있거든요. 그렇게 시작해서 정치니 군사니 경제니 전혀 모르던 공대 출신이 지금은 반전문가가 됐습니다.
창립 회원들은 학계에서 많이 참석하셨고 처음에는 일종의 학술단체처럼 해보자고 했습니다. 이사장으로 조완규 서울대 총장을 모셨는데 총장일 때는 어렵다고 해서 몇 개월 지나 정년 퇴직 후 취임했어요. 김 회장이 미는 힘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회장, 이사장과 연계되는 학술 분야가 많았는데 그 후 관계 장관 등이 모임에 나오고 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박정수 부회장 : 저는 당시 해병대 준장으로 한미연합사의 연습처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김 변호사는 전혀 몰랐고 이 이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신문 칼럼을 보고 저도 감명을 받았어요. 저는 전화를 걸었습니다. 칼럼 내용에 동감한다며 앞으로 열심히 활동해 달라고 당부 드렸더니 “한미우호협회라는 단체를 만드는데 같이 하자”고 하시더군요. 당시 전역 6개월 전이어서 12월 말일 전역 하니까 그때 가입하겠다고 했으나 막무가내였어요. 그 후 워크숍 가서 함께 대화하고 논의하면서 협회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왜 한미우호협회를 만들어야 했느냐 또 왜 많은 사람들이 그때 동조를 했느냐. 당시에 한미 친선을 표방하는 단체가 이미 두 개나 있었어요. 그런데 이 단체들은 전부 관변 단체 비슷해서 좌파나 운동권에서 뭐라고 해도 대응을 못해요. 왜냐하면 자기 기업 그 다음에 자기 경력 등이 걸리니까요.
예를 하나 들면 2002년 2월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게 돼 있었어요. 그분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대응했었지요.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집권당인 새천년 민주당의 국회의원 5~6명이 미 대사관에서 대사를 만나 부시 방한에 반대한다며 오지 말라고 항의를 했어요. 우리 한미우호협회는 이를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 판단했습니다. 당시 한미관련 단체가 많이 생겨서 약 10여 개 있었는데 연명으로 부시 대통령 방한 환영 성명서(제가 작성한 것으로 기억합니다)를 만들어 미 대사에게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일부 국회의원이 한 얘기는 그들의 생각이 고 우리 국민들은 환영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서명을 받으려 했더니 타 단체에서 못하겠다는 거예요. 어떤 단체는 회장은 못하니까 부회장이 대신 사인하라고 하더군요. 한미동맹 강화보다는 김대중 정부와 집권 여당인 새천년 민주당, 좌파 단체들 눈치 보느라고 그런 거지요. 그래서 우리 협회가 일반 시민단체들과 함께 성명서를 미 대사관에 전달했습니다. 김 변호사가 왜 한미우호협회를 순수 민간단체로 설립해서 진짜 활동을 하자고 했는지 알 수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 회장께서는 2009년 1월 4대 회장으로 취임하셨는데 재임 기간에 북한이 2~6차 핵실험을 해 남북관계가 최악의 위기에 빠졌고, 한미 FTA를 둘러싼 갈등으로 한미관계 또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당시 국론 결집과 한미동맹 회복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셨지요?
한철수 전 회장 : 제가 2009년부터 2019년도까지 10년 동안 회장을 했어요. 운이 좋아서 대부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었고 문재인 정권과 좀 겹쳤죠. 초기 이명박 정권 때 좌파들과 MBC가 조직적으로 광우병 선동을 해서 대통령 부임 몇 달 만에 정권이 쓰러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장관들이나 필요한 기관에서 대비를 못했고 결국 항복을 해버렸어요.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항복을 한 것으로 봅니다. 이 대통령이 아침 이슬을 불렀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좌파들의 전략이 승리를 한 것이고, 정부가 내내 끌려간 거예요.
당시에 한미 양국 간에 FTA 논의가 시작되었고, 국회에서 동의해야 대통령이 비준하는데 당시 야당이 적극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좌파 시민단체를 동원해서 반대 데모를 하고 난리를 쳤습니다. 한미 FTA는 한미동맹과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어서 협회에서 전임회장님, 박정수 장군 같은 분들을 모시고 논의를 했어요. 논의 결과 협회에서 성명서를 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내용을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 TF를 만들었어요. 전면 광고는 돈이 없어 못하고 사설 바로 앞면에 5단 광고를 냈죠. 2회에 걸쳐서 각각 2개 신문사에 했어요. 2011년 11월 16일자 동아일보와 문화일보에 “국민들이여 깨어납시다. 한미 FTA를 놓치면 엄청난 재앙이 옵니다.” 2012년 2월 27일자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국민들이여 일어섭시다. 한미 FTA는 우리의 생존과 번영의 축입니다.”라는 제하의 광고를 냈습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어요. 과감하게 그렇게 하는 단체가 없었거든요. 격려 전화를 많이 받았고 어떤 시민은 광고를 스크랩해서 벽에 붙여 놓고 자기도 보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설명도 한다고 알려왔습니다. 한미동맹을 위해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미 FTA가 체결이 돼서 다행이지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FTA가 한국이 이득을 많이 보고 한국에게 유리하니까 수정하자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또 하나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북한 김정은 추종자들, 주사파들이 권력층에 많이 포진하면서 안보위험이 초래된 거예요. 그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한다고 그래요. 그 양반도 당선된 지가 얼마 안 됐을 때예요. 이 사람에게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트럼프를 환영하는 전면 광고를 내기로 했지요. 한국어와 영어로 광고를 만들어서 2017년 11월 7일자 조선일보와 Korea Herald에 게재했어요. 즉시 미국대사관에 전달되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확인되었어요 그 당시 미국 사람들은 한국의 3不정책 때문에 한국 정부를 매우 불신했거든요. 정부가 중국 경사(傾斜) 외교 전략을 세우고 시행할 때 한미관계 회복을 위해 기여한 것에 보람을 좀 느낍니다.
그다음은 사드 문제인데요. 좌파가 선동을 하고, 중국도 관여를 했죠. 시민들이 사드기지 출입구를 막아서 보급품도 못 들어가게 하는 상황이 오래 계속됐습니다. 눈치 보느라고 3不정책에 대해 주요 일간지에서도 논평을 안 하고 반대도 안했어요. 이건 안 되겠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궁리 끝에 우리 협회가 주관하는 미군장병 초청 위로행사(6월과 12월 연 2회)를 활용하기로 했어요. 내가 총대를 메야겠다고 생각했죠. 우리 행사에는 미국 대사도 오고 미 장군들도 참석합니다. 미 장군들이 왔을 때 우리는 사드를 강력히 지지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는데 그게 의외로 성과를 봤어요. 한국 정부가 중국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설명에 많은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며 지지하니까 고마웠던 것 같아요. 공개적으로 많은 한국민들이 박수를 치는 장면이 미대사와 장군들, 지휘관들에게 한국이 중국에 기울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죠.
다음 전작권 전환 문제인데 전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전작권 전환이 곧 이뤄지도록 돼 있었어요. 연장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들이 전부 서명을 했어요. 청와대 담당비서관을 만나 연합사 부사령관들의 성명서를 대통령에게 보고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원래는 연장을 더 길게 하려고 그랬는데 우선 해 놓고 다시 논의 하자고 해서 몇 년 연장으로 낙착됐습니다.
또 하나는 인천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건 이예요. 당시 반미 감정이 굉장히 확산됐지요. 그리고 미국 정부와 국민이 한국을 의심하는 일종의 심프텀(증세)이 생겼을 땐데 제가 성우회 부회장으로 회장 대리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성우회가 주동이 되어 뭘 좀 하자고 논의한 결과 백선엽 대장님을 모시고 워싱턴을 방문해서 미측 주요 인사를 만나 설명을 하기로 했습니다. 완전히 좌파인 줄 알았던 이종석 당시 안보보좌관이 의외로 한미관계에 관심이 많더군요. 그가 전경련에 애기해서 자금을 지원받았어요. 백 장군은 한국전쟁의 영웅이기 때문에 미국에도 많이 알려지고 미국 사람들도 굉장히 존경을 합니다. 한미연합사 산파 역할을 한 유병현 초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도 함께 갔습니다. 두 분과 성우회 부회장단 등 10여 명이 워싱턴에 갔습니다. 당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백대장 이름으로 면담신청을 하니까 회의 중에 나와 우리를 만났습니다. 한국의 반미 감정이 일부 좌파의 준동임을 설명하고 한미동맹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설명했습니다. 방문 중에 미측에서 한미연합사령관을 대장에서 중장으로 격하 시킨다는 소식을 듣고 해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유 장군이 초대 연합사령관을 지낸 베시 장군과 접촉하는 등 미측과 긴밀하게 논의한 결과 럼스펠드 장관으로 부터 대장 보직 결단을 받아냈습니다.
한미동맹은 한미 양국 상황, 특히 두 나라의 정권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었습니다. 회장으로 협회를 이끄시면서 양국 상황과 정권의 성향에 따른 변화를 많이 경험하셨지요?
황진하 회장 : 국회 그만두고 정계 은퇴 선언을 한 후 마지막 봉사하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한미동맹을 강화시키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판단에서 한철수 전 회장님을 찾아갔어요. 한미우호협회에서 좋은 일을 하시는데 도와드렸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받아주시더군요. 한미우호협회 이사로서 10개월 정도 활동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죠. 협회 상황이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한 회장님께는 말씀을 드렸는지 모르지만 좌파단체들이 언론사를 사칭하고 이전 사직동 사무실에 와서 “왜 호텔에 가서 식사를 하고 돈을 많이 썼느냐”, “한미우호협회가 뭐가 좋아서 오느냐” 등등 삐딱한 얘기를 하면서 우리 협회를 공격한다는 거예요. 꼭 필요한 것만 쓰고 절약해 협회를 운영한다고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언론에 발표하곤 했어요. 그 뒤에는 꼭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협회가 정부 보조금을 1년에 3~4천만 원, 많을 때는 좀 더 받았는데 그들이 다년간 다음 해와 그 다음 해에는 정부 보조금이 싹 없어졌어요. 제로예요, 제로. 제가 그때는 이사로서 살림을 들여다보고 그럴 때는 아니었지만 정부에 따라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행안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만나 한미동맹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항의도 했습니다. 1년 반쯤 지나고 나니 3천만 원 정도 보조금이 나왔고 그다음 해에는 6천만 원으로 늘어났습니다. 정부 성향이 한미동맹에 부정적이다 보니 회원들의 협회활동이 과거보다 약화되고 후원금 내는 기업들도 눈치를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협회의 정치적 중립을 부각시키면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미국과 동맹관계가 중요하다는 얘기만 강조하고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이렇게 저렇게 따지거나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제가 회장이 되고 나서 보니 문재인 정부에서 6·25나 7·27에 별도의 추모 행사를 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협회가 나서서 삼각지 전쟁기념관 미군 참전비에서 추모 행사를 했습니다. 미 대사와 연합사령관도 참석했는데 예상 밖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조선일보가 정부가 해야 할 행사를 한미우호협회가 대신했다고 크게 보도하는 등 언론의 호응을 받으면서 행사를 치렀어요. 미측도 감사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는 달리 작년 7·27 추모행사를 주관했습니다.
한 전 회장 : 황 회장께서 말씀하셨지만 저는 문재인 정부 때 탄압을 좀 받았어요. 뉴스타파라고 있지요. 그 쪽에서 우리 사무총장에게 전화가 왔어요. 안 만나겠다고 했는데 카메라를 들고 쳐들어 왔어요. 벌써 우리 협회에 대해 다 조사를 했습디다. 우리 협회는 아주 깨끗하게 운영하거든요. 이사회나 총회 등 모든 행사가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신문에서 우리 협회 행사에 대해서 잘 써주게 되면 논설위원과 관계자들을 초청해서 고맙다는 표현을 할 때도 제 돈으로 했어요. 그들이 다 조사를 했지만 뭐 나올 게 없었지요. 그러더니 뭘 트집 잡느냐 하면 “태극기 부대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보냈다는데 무슨 목적으로 보냈습니까, 돈은 어디서 났습니까” 라고 물어요. 협회 총회 때 태극기와 성조기를 보내자는 제안이 나왔고, 제가 낸 50만 원을 포함해 몇 백만 원이 모금되어서 지원한 적이 있거든요. 그렇게 설명했더니 “미국한테 아첨만 하냐”는 식으로 억지 시비를 걸기도 했어요. 또 하나 말씀드리면 미국 해리스 우리 정부의 3不정책으로 미국이 굉장히 기분 나빠할 때 부임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해리스 대사 환영 겸 열린 연말행사에서 3不정책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내용을 인사말에 넣어 발표했어요. 해리스 대사가 우리의 진심을 듣고 감격하더군요.
황 회장께서는 협회의 ‘광화문 시대’를 여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황 회장 : 제가 협회 회장을 맡았을 때 사무실이 사직공원 근처에 있었어요. 20평 남짓한 오피스텔이었는데 한 회장께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잘 운영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미국 대사관 직원 등 외부인사를 초청하거나 사무실에서 무슨 행사를 할 때 마다 주차공간이 없어 곤란을 겪었습니다. 또 여직원들이 퇴사하면 후임이 잘 안 와요. 화장실 등 근무 환경이 열악해서 그런다는 거예요. 사무실이 작아서 여러 명이 모이는 회의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을 옮기기로 하고 백방으로 다녔습니다. 대림 이준용 회장님이 협회 2대 이사장을 지내셨지만 개인적 친분이 있기도 해서 어렵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무실 상황을 설명했더니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미국대사관에서 가깝고 주차가 편리한 곳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더니 40~50 평 사무실 마련하려면 8억~9억 정도 필요할 거라며 5억 원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 회장께서는 혼자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친다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주셨어요. 시장 조사를 해보니 주변 시세는 8억~9억이어서 모금이 불가피했지만 현재 사무실은 조금 낡은데다 흥정도 잘 해서 4억 5천만 원에 매입하게 됐습니다. 나머지 돈으로 내부 수리, 세금까지 충당했습니다. 이 회장님 덕분에 다른 분에게 손 안 벌리고 광화문 시대를 연 것이지요. 이전 사무실도 이 회장님이 주신것이어서 돌려드리려 했더니 협회에서 쓰라고 하셔서 2억 8천이나 되는 매도대금을 협회 예산에 넣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후원금이 줄고 문재인 정부의 보조금도 끊긴 악조건 속에서 이 회장님의 지원 덕분에 무사히 협회 살림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박 부회장 : 협회 사무실 관련 히스토리 하나 얘기해 볼게요. 협회 창설 초기에는 김상철 변호사 사무실을 이용했습니다. 김 변호사가 회장 임기를 마치며 옮겨 달라고 하는데 사무실을 얻을 예산이 없었습니다. 당시 회장은 박근 전 UN대사이셨고 제가 사무총장을 하고있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사무실을 옮기려다가 여의치 않아서 제가 그 때 사이버테크 회사 CEO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급한대로 이사짐 차를 저희 사무실로 돌렸어요. 공간이 넓지 않아 짐만 내려놓고 한 달 정도를 보냈습니다. 그 뒤 박 대사님이 이준용 이사장님에게 도움을 청해서 사직동에 사무실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 협회가 지정기부금 단체로 지정이 되지 않아 사비 지원이 되고 말았어요. 그런데도 이 이사장님은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으셨어요. 참 통이 크신 분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황 회장 : 아무튼 제가 그렇게 해서 이 사무실을 마련했고, 전임 회장님이나 이사장님들을 모셔서 입주식도 하고 설명도 드리고 했습니다. 새 사무실을 마련한 뒤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든 행사를 여기서 다 했어요. 도시락 먹으면서 3년 동안 많은 행사를 했습니다. 광화문 시대를 연 덕을 톡톡히 봤지요. 이준용 회장님이 도와주지 않으셨으면 코로나 때문에 아무 활동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 방형남 편집위원장 /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9개월이 되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해 5월 취임 10여일 만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해 첫 한미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워싱턴 국빈방문도다가옵니다. 현재의 한미관계를 어떻게 평가하시며 앞으로의 발전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황 회장 : 지금 윤석열 정부와 미국 바이든 정부의 관계는 더없이 좋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반미 단체들이 ‘민주’라는 이름을 달고서 미국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취임사에부터 정치적 목표에 한미 동맹을 기초로 한다는 정신을 깔고 시작했어요. 다음으로 미국 사정이 한국을 굉장히 필요로 하는 시기라는 점입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야 되는데 도움을 줄만한 나라가 별로 없어요. QUAD를 포함해 다자기구를 만들 때도 한국이 꼭 필요한 국가로 성장했거든요.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한미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지난 트럼프 정부에서부터 겪고 있는 국내 어려움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경제 회복을 포함해 국내 현안들을 해소하고 치유하는 과정에 한국에게 불편한 정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그중의 하나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번 윤대통령의 방미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계기가 되고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원자력이 문재인 정부때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회복을 해야죠. 대중국 관계 조율도 필요합니다. QUAD문제도 발전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아직 확장억제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잖아요? 윤 대통령의 방미는 이런 것들을 아울러서 해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약하면 윤-바이든 정부는 좋은 출발을 했고 한미 양쪽의 지난 정부에서 넘어온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을 풀어갈 기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기대할 만하다고 판단합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과 관련해서 확장억제 전략에 대해 말씀해 주셨지만 현재 그 이상의 대응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시지요.
황 회장 :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고 위협이 점점 증가 되는 상황이지만 우리 대비책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많은 국민이 우려하는 가운데 한미 간에 긴밀한 협조가 이어지고 있기는 합니다. 왜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느냐?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의도를 경시하고 안일하게 대처한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은 공개적으로 얘기를 하지는 않지만 북한이 핵 한두 개 가져봐야 소용없다,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방기한 측면이 있죠. 오바마 정부 때도 그렇고 북핵 해결을 위한 회담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절실하게 매달리지 않고 미온적으로 대응했어요.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책임도 크다고 봐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도가 없다, 능력도 없다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북한이 핵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핵개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오히려 북한에 시간을 주고 말았습니다. 북한핵의 위협이 가시화됐는데도 많은 국민들이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요. 마치 이솝우화 처럼 아무리 늑대가 온다고 소리쳐도 믿지 않는 상황이 돼버렸어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저는 한미 동맹을 탄탄하게 만들면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핵우산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핵 보유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고 핵을 억제할 수 있는 미국의 전략자산을 최대한 한반도에 전개시킴으로써 북한의 행동을 막는 쪽으로 가는 거지요. 그게 확장억제전략인데 한국에서 유사시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미국에 불신을 보내니까 마침내 확장억제전략 협의체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한국 외교 국방 차관과 미국 국무 국방 차관이 머리를 맞대는 2+2 협의체가 출범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고, 얼마 전 실질적인 핵확장억제훈련인 TTX가 한미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에서 실시됐습니다. 한미 양국이 합동으로 핵억제훈련을 하면서 억제능력을 계속 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전혀 안 했던 훈련들을 빈번 하게 하고 있으니 한미의 대북정책이 180도 바뀐 것이지요.
일각에서 그 정도로는 안심을 못 한다며 자체 핵무장 또는 전술핵 배치 주장을 합니다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에 핵무장을 위한 빌미를 주게 되고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셈이 되고 말 것 입니다. 한미 동맹이 탄탄하면 유사시 괌에 있는 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이 핵을 만들겠다면 필연적으로 핵 도미노가 오게 됩니다. 우선 일본이 가만히 안 있겠죠. 대만도 핵무장에 나설 겁니다. 그러면 중국이 더 위협적으로 나오고 결국 우리가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핵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핵이 공포의 무기이긴 하지만 비핵전략으로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5대 핵 보유국만을 인정하는 NPT체제의 국제질서 속에서 핵을 컨트롤하되 테러집단도 핵을 보유할 정도로 확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한미 동맹을 통해서 푸는 게 최선의 북핵 해법이라고 봅니다. 저는 여기에 더해 NPG, 즉 핵기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한국이 어떤 상황이 오면 전술핵을 사용하는 조치를 하자고 준비하는, 그래서 최악의 경우 미국의 핵 자산이지만 한미가 같이 쓰기도 하는 단계까지 발전시키는 겁니다. NATO 방식이죠. 윤 대통령께서 얼마 전 핵보유를 거론한 이유는 NPG를 비롯해서 뭔가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의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저는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한 전 회장 : 윤 대통령의 핵 언급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에 대한 사인이자 미국에 대한 신호지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적시에 말씀을 잘 했는데 당장 미국에서 반응이 오거든요. 또 하나 우리가 핵방위 훈련 같은 걸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핵탄이 떨어지게 되면 우리 국민이 어떤 피해를 입게 된다는 걸 미리 알리고 핵방위 시설도 만들어 북핵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해줬으면 합니다.
박 부회장 : 북핵 위기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에 여러 대응방안이 대두되고 있습니다만, 우리 협회에서 어떤 방안이 좋은지 토론을 해서 도출할 수도 없고 어떤 대응을 지지한다고 표명하기도 쉽지않습니다. 전술핵을 배치하든 우리가 핵무장을 추진하든 한미 간에 필요한 행동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신뢰가 바탕이 돼야 유사시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미의 공통분모인 신뢰 확장, 신뢰를 높이는 일을 우리 협회가 해야 되지 않느냐가 저의 생각입니다. 저는 발표 여부를 떠나 지금 이 시점에서는 핵무장을 국가 목표로 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북한이 핵을 쓰겠다고 우리를 협박할 경우, 실제 사용하든 아니면 블랙메일이 됐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실효적 대응은 핵을 가지고 있는 것 외에는 없단 말이에요. 미국이 지금 확장억제가 있지 않느냐고 강조하고 바이든 대통령 집권기간에는 잘 유지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혹시 다음 선거에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상황이 급변할 우려가 있거든요. 그래서 현재 상태를 놓고 괜찮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NATO 보다는 한 단계 낮은 것 아닙니까. 미국이 한반도 분쟁에 개입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그 이전에 미국 국민이 동의해야 한단 말입니다. 미국 국민이 한국을 위해서 북한과의 핵전쟁을 승인할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NATO 방식의 핵공유를 한다고 해서 100% 평화를 보장할 수 있을까요. 최선은 우리나라는 우리 힘으로 지킨다는 목표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미관계에 아쉬운 대목도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 일본 인도 호주가 참여하는 QUAD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임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일본의 한국 배제 로비가 작용한 결과라고 하지만 역내 안보대화에 한국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아닙니까?
한 전 회장 : 아베 전 총리의 국수주의 사상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은 자기들의 식민지였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그런 심리를 보여주는 일본 네티즌들의 글이 많이 올라옵니다. 한국을 우습게보고 한국이 잘 되는걸 아니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살게 된 것도전부 그들의 기술을 훔쳐서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일본인들도 많아요. 그런 측면에서 일본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김대중 정부 때 모처럼 한일 관계를 잘 만들어 놨는데 이후 좌파 정부에서 흔들어 양국 사이가 나빠졌습니다. 빨리 고쳐나가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박 부회장 : 한미일이 협력 관계를 계속 발전시키면 QUAD 참여 여부가 큰 장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QUAD 불참이 100% 우리에게 나쁜 건 아니거든요. 대(對)중국 문제를 볼 때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니까요.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계속 발전시키면 저쪽에서 한국 참여를 요청하는 때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여건이 조성되면 못 이기는 척하고 들어가는 전략을 쓰면 어떨까 싶네요.
황 회장 : QUAD는 원래 쓰나미 구조 활동을 위해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시작했습니다. 이후 쓰나미 정도가 아니라 안보를 위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중국을 견제하는 용도로 발전시키자는 목소리가 나올 때 호주가 일단 빠져나갔었습니다. 당시에 가장 강력한 추가 가입 후보가 우리와 베트남 뉴질랜드였습니다. 4개국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QUAD 4개국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를 잘 발전시키면서 또 중국 일본과 서운함을 해소해 가면 QUAD 참여에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전망합니다. 이 문제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도 충분히 다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본과의 관계도 저는 조금 장기적으로 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일제 시대를 겪었던 분들 입장에서는 일본과의 관계를 상당히 나쁘게 생각하고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렇고 일본 젊은이들도 우리를 무시하는 대신 오히려 가까워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지금은 한국이 일본에게 뒤지는 게 많지 않습니다. 자동차 분야부터 무역, 1인당 GDP까지 일본하고 거의 맞먹어요. 세계화 차원에서 보면 오히려 한국이 앞서가고 있거든요. 우리의 발전과 일본 젊은 세대의 변화를 고려하면 얼마든지 협력을 강화할수 있는 밑바탕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저는 낙관적으로 진단합니다.
<‘영원한 친구들’ 5, 6월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