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회원기고] 미국의 도량형 이야기 – 왜 미국은 미터법을 쓰지 않을까?-윤상용


미국의 도량형 이야기 – 왜 미국은 미터법을 쓰지 않을까?


윤상용 (KODEF 전문위원)


  미국에서 살았거나, 혹은 여행을 해 본이라면 한 번쯤은 분명히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 있다. 바로 도량형이다. 길이는 피트와 인치, 무게와 부피는 파운드와 온스, 심지어 속도는 마일이 등장해 그램이나 미터 단위에 익숙한 사람들을 헛갈리게 한다. 심지어 리그(League)나 핀트(Pint), 부셸(Bushel)처럼 무엇을 위한 단위인지 감조차 오지 않는 것도 많다. 문제는 이런 도량형을 사용하는 나라가 전세계적으로 희귀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라도, 전세계 대부분이 쓰는 미터법을 함께 쓰지 않는다면 불편하지 않을까?


 흔히 말하는 국제 도량형, 일명 ‘미터법’을 쓰지 않는 나라는 미국 외에도 라이베리아와 미얀마 등이 있지만, ‘임페리얼(Imperial)’ 법(일반적으로 야드-파운드법으로 통칭)을 사용하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파운드는 약 0.453kg, 1피트는 30cm이며, 1 마일은 1.6km, 1온스는 29.6ml, 1인치는 2.54cm다. 깔끔하게 변환되지가 않으니, 암산으로 변환하는 것도 사실 간단하지 않다. 키를 말할 때도 피트와 인치가 섞여 있으니, 예를 들어 누군가의 키가 5피트 7인치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5피트’ 부터 환산해 152.4cm를 만들고, 다시 7인치를 17.88cm으로 환산해 더해보고 나서야 대충 170cm라고 감이 오게 된다.


 미국은 1774년 7월 4일에 건국한 국가로, 전통의 열강인 서구 유럽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신생’ 국가이다. 그보다 먼저 건국한 국가도, 심지어 나중에 건국한 국가도 미터법을 쓰지 않는 사례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미국 독립의 근간이 된 영국조차도 야드법을 일부 섞어 쓰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미터법을 채택한지 오래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연유로 전세계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미터법을 채택하지 않게 된 것일까?


우연의 사건이 방해한 미국의 첫 미터법 채택 시도


  1774년 북미의 영령 13개 식민지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신생국가 ‘미국’이 태어났고, 영국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1775년 4월 14일부터 대영제국 북미총독을 지내고 있던 토머스 게이지(Sir Thomas Gage, 1718~1787) 대장을 파견해 ‘식민지 반란군’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8년에 걸친 독립전쟁 끝에 정식으로 건국한 미국은 1789년 헌법을 채택하면서 의회가 도량형 기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건국 이전부터 미국은 각 주(州)마다 채택한 도량형이 제각각 이었다. 예를 들어 뉴욕 주는 네덜란드를 따라가고 있었고, 뉴 잉글랜드 지방은 영국의 야드법을 쓰는 식이었다. 각 주 안 에서야 그간 살아온 대로 적절한 도량형을 쓰면 되니 큰 불편이 없었으나, 문제는 각 주 간 무역을 할 때 발생했다. 도량형이 달라 상품을 거래할 때마다 상품의 중량이나 크기 등을 일일이 변환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 초대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에 임명된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미 제3대 대통령)은 연방 단위의 도량형 통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1793년부터 미국에 적절한 단위를 채택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1790년 국무장관에 지명되기 전 1785년부터 1789년까지 프랑스 대사를 지냈기 때문에 프랑스가 채택한 미터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미국도 미터법을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시대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그의 생각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이 시대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Napoleon Bonaparte/Napoleon I, 1769~1821)가 전 유럽을 휩쓸던 시기이고, 전 유럽의 균형을 깨는 프랑스를 고운 시선으로 보는 이는 없었다. 그나마 미국 입장에서는 프랑스가 독립전쟁 당시 편을 들어준 국가이긴 했지만, 그건 왕정시절의 프랑스였지 나폴레옹 제국의 프랑스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다. 따라서 프랑스의 ‘무엇’인가를 따라한다는 것은 뒷말이 나올 수 있는 결정이었으나, 합리주의자인 제퍼슨은 정치적인 배경 따위는 무시하고 미터법이 가장 신생 미국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가 특히 미터법이 실용적이라고 판단한 점은 미터법 자체가 10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변환이 쉬워 과학이나 경제 분야에 가장 적합할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의 고위층 지인들에게 미터법 채택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프랑스에서는 생물학자 겸 탐험가인 조셉 돔베이(Joseph Dombey, 1742~1794)가 전달책으로 섭외 됐다. 원래 남미지역을 돌며 식물을 수집하던 돔베이는 1784년 프랑스로 귀국하던 길에 스페인에 체포되어 수집품을 빼앗겼으나, 간신히 프랑스로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온 뒤 서적 저술에 힘을 쏟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에 물건을 전하는 의뢰를 듣고 스스로 자원했으며, 1793년에 출항 허가가 나와 르아브르(Le Havre)에서 1794년 4월에 당시 미국의 수도인 필라델피아로 출발했다. 그의 배에는 중량이 정확하게 1kg인 손잡이 달린 원통형의 동(銅)인 ‘그라브(Grave)’를 비롯해 동으로 된 막대기 등 다양한 물건들이 실려 있었다.

  사실 프랑스 배가 미국까지 가는 길은 간단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주요 열강들과 반목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프랑스 국적 선박은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의 주요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페인 방향으로 출항해 영국 배를 피해 필라델피아까지 가려 했으며, 운이 좋다면 북대서양을 가로질러 한 번에 미국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항해는 순탄치 않았고, 운도 없었다.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난 돔베이는 미국이 아니라 멕시코 과달루페(Guadeloupe)로 표류했다. 당시 과달루페 지역은 정치상황이 불안정 했으므로 그는 주저하지 않고 준비가 되는대로 다시 출항했다. 하지만 이번엔 해적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당시 카리브 해는 해적들이 들끓던 무법천지였으며, 정확하게는 영국 정부가 허가한 사략(私掠)해적들이 바다를 휘젓고 있었다. 해적들이 돔베이의 배에 승선하자 그는 스페인 선원들 사이에 숨어 보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돔베이는 몸값을 뜯어보려는 해적들에 의해 서인도 제도의 해적 요새인 몬세라트(Montserrat) 섬으로 끌려가 감옥에 갇혔다. 만약 프랑스나 미국이 이 사실을 파악하고 그의 몸값을 지불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돔베이는 몸이 쇠약 해져 있었으므로 억류 중 죽고 말았다. 돔베이가 죽고 나자 해적들은 그의 배에 실려 있던 물건들을 뒤졌지만 동으로 된 원통형의 이상한 물건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배 안의 선적품을 전부 털어내어 경매에 부쳐버렸고, 이들 물건은 돔베이를 기다리던 제퍼슨에게 영영 전달되지 못한 채 세상 어디로 인가 사라져버렸다. 결국 물건이 전달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프랑스 측에서 다시 여러 손을 거쳐 미국에 같은 도구를 전달했을 때는 이미 미 국무장관이 토머스 제퍼슨에서 에드문드 랜돌프(Edmund J. Randolph, 1753~1813)로 바뀌어 있었으며, 처음부터 미터법 채택 문제에 크게 관심 없던 랜돌프는 더 이상 미터법의 표준 도량형 채택을 추진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계속됐지만 무산된 미국의 미터법 채택 추진


 사실 ‘킬로그램’이라는 단위도 수 년에 걸쳐 변화했기 때문에, 아마 돔베이의 ‘그라브’가 제대로 미국에 전달됐더라도 현대의 미터법 단위와는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제퍼슨이 제대로 이 물건들을 받았더라도 미국이 미터법을 채택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건국 초기에 미터법을 채택하는 것이 가장 쉽고 사회적 혼란을 줄이는 방법이었으므로 이 사건으로 미터법이 미국의 정식 도량형이 될 가장 최적의 기회가 날라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미국은 이후에도 미터법 채택을 몇 차례 시도한 적이 있다. 미 의회는 1830년에 한 차례 ‘미 연방’의 도량형 기준을 통일하고자 시도했던 적이 있으며, 이 때에는 스위스계 이민자 출신인 측량가 페르디난드 루돌프 하슬러(Ferdinand Rudolph Hassler, 1770~1843)가 미터법 채택을 제창했으나 의회는 결국 1758년 영국 의회에서 채택한 야드법을 기준으로 통과시켜 버렸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6년에는 미 의회가 “미국 내에서 각 주의 미터법 사용을 허가하며, 각 주에 미터 기준이 될 무게 추 등의 물건을 공급했다”고 선언한 기록이 있지만, 이미 야드법이 일반적이 된 상태에서 미터법으로 갈아탄 주는 없었던 듯하다. 1875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미터 조약(Convention du Mètre)이 체결되면서 사실상 전세계 도량형 기준을 미터법으로 맞추려는 움직임이 일어나자, 미국 역시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헝가리, 브라질,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페루, 포르투갈, 러시아, 스페인,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오토만 제국, 베네수엘라와 함께 이 조약에 가입했다. 이 조약의 가입으로 미국이 미터법을 채택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이 때 정식으로 미국이 쓰는 파운드, 야드 등에 대응하는 그램, 미터의 ‘공식’ 기준을 마련했다. 즉, 1 파운드는 공식적으로 0.45359237kg로, 1 야드는 0.9144m로 확정한 것이다. 이후에도 1940년대에 미 정부가 한 차례 미터법 도입을 고려했던 적이 있고, 1975년에는 포드(Ford) 행정부가 ‘미터 전환법(Metric Conversion Act)’을 입법해 각 주가 자발적으로 도량형을 미터법으로 바꾸도록 권장했다. 레이건(Reagan) 행정부 시절인 1988년에는 일괄 해외무역 및 경쟁력 법(Omnibus Foreign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이 통과되면서 미터 전환법이 일부 수정됐다. 1991년에는 조지 부시(George H. W. Bush) 대통령이 행정명령 12770호를 통해 미 정부가 “권한 한도 내에서 모든 적합한 수단을 이용해” 미국 무역과 상업을 위한 미터법 사용을 권장하게 했고, 2004년에는 미 에너지부가 고급 컴퓨터 연산 재활성화법(High end Computing Revitalization Act)을 통과시키면서 미터법 기준화에 대해 언급했다. 즉, 미터법 채택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오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도 효과는 미미하다. 아마도 지금껏 사용해오던 도량형을 하루아침에 바꿀 경우 야기될 혼란, 그리고 각종 문서에 표기된 단위를 바꿔야 하는 불편함이나 비용을 고려할 때 쉽게 손댈 수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미터법-야드법이 야기한 복잡한 문제들


  사실 이 도량형 문제는 그 자체만으로도 적지 않은 비용 손실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NASA는 전세계 타 기관과 협업하는 문제 때문에 미터법을 사용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를 겪어왔다. 대표적인 예는 1999년 9월 화성 기후정찰 위성 사업이다. 당시 NASA의 하청업체인 록히드-마틴(Lockheed-Martin) 엔지니어들은 미터법을 쓰는 NASA와 달리 야드법을 쓰는 바람에 혼란이 발생해 $1억 2,500만 달러 가까운 손실을 입은 사례가 있었다. 또한 미국이 야드법 기준으로 해외국가에 OEM 형태로 물건 제작을 의뢰했다가 현지에서 미터법 기준으로 계산해 낭패를 봤다는 류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돔베이가 미국에 전달하려던 ‘그라브’와 막대기 등은 영국 사략해적들이 팔아 치운 뒤 돔베이와 동시대의 측량사였던 앤드류 엘리콧(Andrew Ellicott, 1754~1820)의 손에 들어갔으며, 엘리콧 가문은 대대로 이 물건을 보관해오다가 1952년에 처음 이 물건을 공개했다. 이렇게 ‘그라브’는 늦게 나마 미 정부에 전달되었으며, 현재는 연방 기준 및 기술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 and Technology)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정황으로 보자면 미터법을 채택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합리적이라는 사실은 미국도 건국 초부터 알고 있던 듯하다. 하지만 한 번의 역사적 우연으로 미터법을 채택할 기회를 놓치자 추진력이 사라졌고, 이후에도 계속 시도가 있어왔지만 이제는 야드법으로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에 이제 와서 바꿀 시에 야기될 사회적 혼선, 그리고 도로 표지판부터 시작해 공식 문서에 표기된 단위를 모두 고쳐 써야하는 비용 문제로 인해 미터법이 채택될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 듯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이제는 미국에 방문해도 단위를 바꿔 계산하는 것이 전보다는 손쉬워졌다는 사실이다. 미터법 채택의 기회를 억울하게 놓친 제퍼슨이나 돔베이가 오늘날의 세상을 본다면, 조금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