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연중시리즈-한미동맹을 지켜온 사람들❶]한국 방위는 에이브럼스 가문의 가업-황인희

[연중시리즈-한미동맹을 지켜온 사람들❶]


한국 방위는 에이브럼스 가문의 가업

 

황인희 (역사칼럼니스트, 인문여행작가)


  “나는 한국 방위에 기여하는 에이브럼스 가문의 가업을 물려받았다.”

   2021년 7월 2일 유엔군 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 주한 미군 사령관의 임무를 마치고 이임한 로버트 브루스 에이브럼스 장군은 한국을 떠날 무렵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을 지키는 일을 자신의 가문이 대를 이어 해야 할 일로 여기고 그 가업을 수행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군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6‧25전쟁 때 한반도로 달려와 우리 한국을 위기에서 구해준, 미국을 비롯한 유엔 22개국(전투병 지원 16개국, 의료 지원 6개국) 그 참전국과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육군 대장으로 전역한 로버트 브루스 에이브럼스(Robert Bruce Abrams, 1960년 11월 18일~ )는 막강한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970년대 초 미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크레이튼 에이브럼스의 3남 중 막내아들이다. 그를 포함하여 아버지와 두 명의 형이 모두 장군이었으며 세 명의 여자 형제도 모두 장교와 결혼했다.


  큰형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3세는 육군 준장으로, 작은형 존 넬슨 에이브럼스는 육군 대장으로 전역했다. 아버지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역시 대장으로 전역하여 이 집안에서 배출한 별은 무려 열세 개에 이른다. 일가친척과 사돈의 팔촌까지 포함한 것이 아니라 한 아버지와 친형제들만 헤아려도 그렇다. 게다가 별 넷을 단 대장이 세 명에 이르니 에이브럼스 집안은 가히 군인 중의 군인의 가문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 크레이튼 에이브럼스의 삶은 특히 인상적이다. 그는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1936년에 소위로 임관했다. 미 육군의 주력 전차인 M1 탱크(M1A1 Abrams Tank)에 에이브럼스의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그는 명실상부한 ‘미 육군의 전설’이 되었다. M1 탱크에 에리브럼스의 이름이 붙은 유래는 1944년 9월, 제2차 세계대전 프랑스 로렌 지역에서 벌어진 아라쿠르 전투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그가 지휘하던 4기갑사단 37전차연대 1대대는 아군의 공군 지원도 제대로 못 받았지만 독일군 5호 전차에 맞서 적진 중앙을 돌파하여 큰 승리를 거뒀다. 그 전투에서 크레이튼 에이브럼스는 세기의 명언을 남겼다.


  당시 아군이 불리한 상황에 처하자 부하가 달려와 보고했다.

  “우리는 적군에게 포위됐습니다. 항복하지 않으면 전멸할 것입니다”

  그때 크레이튼 에이브럼스는 주저없이 말했다.

  “오, 잘됐네. 주변이 모두 적이니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발포하라.”


  이 전투 승리의 공로로 수훈십자훈장을 받은 크레이튼 에이브럼스는, 바스토뉴에서 독일 기갑부대에게 완전히 포위당한 연합군 부대를 구출하는 작전에서 또 한번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연합군 부대를 포위한 독일군 47기갑군단장 하인리히 폰 뤼트비츠 기갑대장은 “두 시간 안에 항복하면 명예롭게 목숨을 살려주겠지만 끝까지 버틴다면 모두 쓸어버리겠다”라고 최후통첩했다. 아군은 포탄도, 소총탄도 거의 다 소진되었을 정도로 형편없는 지경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기갑부대 사령관 조지 스미스 패튼은 바스토뉴의 아군을 구하기 위해 에이브럼스의 전차대대를 선두에 세웠다. 이때 에이브럼스는 또 하나의 명언을 남겼다.


  “우리를 또다시 포위하다니, 불쌍한 놈들(They’ve got us surrounded again, the poor bastards.).”

  

  이 전투에서 크레이튼 에이브럼스가 이끄는 전차대대는 수많은 독일 전차를 격파하여 포위망을 열고 전멸의 위기에 빠진 아군을 구해냈다. 그의 말 그대로 독일군은 ‘불쌍한 놈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에이브럼스는 다시 한번 수훈십자훈장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수훈십자훈장을 받은 사람은 5,000명이 넘는다. 하지만 두 번 받은 사람은 육해공군을 통틀어 열여섯 명뿐이다. 그중 한 명이 크레이튼 에이브럼스이다.


  크레이튼 에이브럼스는 참모총장 재직 기간에 차기 주력 전차 개발을 지시했다. 핵폭탄은 물론 대전차 헬기, 대전차 미사일 등 파괴력 강한 신무기가 연이어 개발되는 세상에 주력 전차 는 구 시대의 유물일 뿐이라며 개발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가 밀어붙여 개발에 성공한 탱크가 바로 M1에이브럼스이다. 크레이튼 에이브럼스는 세상을 떠나고 세월이 흘렀지만 M1에이브럼스 탱크는 지상 무기 중 여전히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가 ‘한국 방위가 에이브럼스 가문의 가업’이라고 말한 배경도 크레이튼 에이브럼스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6‧25전쟁 후반기에 미 제1군단과 9군단, 10군단에서 참모장교로 근무했고 한국군 20개 사단 증편 시도와 한국군 1군 창설에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버지 크레이튼 에이브럼스뿐만 아니라 형들도 다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큰형은 1962년 비무장지대에서, 작은형은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주한 미2사단장으로 의정부에서 근무했다. 장인과 매형도 한국에서 근무한, 정말 한국 방위와 인연이 깊은 집안이다.

 

  이렇게 군인 정신 투철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로버트 에이브럼스는 육군사관학교 시절부터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아버지나 작은형과 마찬가지로 기갑 병과에서 근무하며 걸프전 등에서 활약하였다. 1기병사단 1여단장, 제3보병사단장, 국방장관 선임 군사보좌관 등을 거쳐 2015년 8월 14일 대장 진급과 동시에 전력사령관이 되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장군은 주한 미군 사령관 취임 때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는 2018년 9월 25일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응답하면서 한미연합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청문회에서 “북한 군부는 여전히 위험하고 한반도의 미국과 한국, 동맹 세력은 상황을 분명히 파악하고 외교가 계속되도록 허용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북한 비핵화 없이 지금의 정전협정을 대체해도 되느냐”라는 앵거스 킹 미 상원의원의 질문에 에이브럼스 장군은 “남북 간의 종전선언은 그들 간의 합의에 불과하므로 1953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한 정전협정을 무효화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주한 미군 철수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던 그는 특히 동맹국과 협력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의 열쇠(Working with allies is key to what happens on the peninsula)’이며 ‘우리의 강력한 군사력의 결합은 65년 동안 계속된 휴전 상태를 유지했으며 오늘날 우리의 외교적 및 경제적 지원 노력’의 결과임을 인식하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 청문회에서 주한 미 사령관으로서 동맹 유지 및 강화, 정전 유지, 동맹의 변혁, 동맹의 힘 유지를 우선 순위로 확인했다고 한다.


  2018년 11월 거행된 취임식에서는 한미 두 나라의 신뢰와 단합을 강조하며 “오늘 밤 싸울(Fight tonight)” 수 있을 만큼 늘 준비 태세가 갖춰져 있다고 역설했다. 또 취임사에서 한미동맹은 60여 년 동안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보의 핵심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끊임없는 자유 추구에서 나란히 훈련하고 싸우며 피를 흘렸으며 ‘같이 갑시다’라는 말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함께 합니다.”

 

  2021년 8월, 로버트 에이브럼스 장군은 주한 미군 사령관, 한미연합사령관, 유엔군 사령관의 세 가지 직책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국을 떠나기 전 장군은 ‘우병수(禹柄秀)’라는 한국식 이름을 선물 받았다. 평택 우씨로, ‘우(禹)’는 에이브럼스의 ‘ㅇ’에서 따왔고 본관은 미군 기지가 있는 평택으로 정했다고 한다. ‘병(柄)’은 근본과 권력의 의미를, ‘수(秀)’는 대한민국 안보와 한미동맹 강화에 빼어난 역할을 했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알려졌다. 캠프 험프리가 소재한 평택시는 장군에게 명예 평택 시민증을 전달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장군은 ‘한국 방위에 기여하는 에이브럼스 가문의 가업을 물려받아’ 임기 동안 이를 충실히 수행했다. 한국을 떠나며 그는 “주한 미군 장병과 군무원은 한국에서 근무할 때 한국 국민을 위해 일하며 미국의 진가를 발휘하고, 귀국할 때면 한국의 진가를 배워 돌아간다”라며 “이런 선순환이 양국의 유대 관계를 강화했다”라고 말했다. 또 “한미 양국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종교의 자유, 법치주의 등 자유민주주의의 필수 요소, 이런 가치들을 소중히 여긴다”라며 “공통의 가치가 끈끈한 유대를 만든다”라고 강조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장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그가 누구보다 한미동맹을 중시했고 그것의 유지와 강화를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으며 ‘물려받은 가업’인 한국 방위 임무에 절대 소홀함이 없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불과 100년도 안된 역사적 사실인 6‧25전쟁을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또 그때 우리 대한민국이 어떤 위기에 놓여 있었는지, 누구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는지, 당시 가난의 정도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우리의 부모 혹은 조부모였던 대한민국 국민이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처해 있었는지 잊어버렸다. 마치 우리 국민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쾌적하고 안전하며 풍요로운 선진국에서 살아온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에이브럼스 가문처럼, 로버트 에이브럼스 장군처럼 대를 이어 우리나라의 방위를 위해 싸우고, 일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 모습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이 성장하고 우리 한국인은 발전한 나라에서 안전하게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