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에 주는 교훈: 국제질서의 변환과 한반도 안보
차 두 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을 당시 단기전으로 끝날 것으로 전망되었던 전쟁은 2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이제는 장기적인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아직 전쟁의 최종 결과를 완전히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러시아가 완전한 승리, 즉 ‘우크라이나의 脫군사화 (무장해제 및 NATO/EU 가입 저지)’, ‘우크라이나의 중립화 및 나치세력 척결’(사실상 親러 괴뢰정권 수립)이라는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힘들 듯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 세 계적인 주목을 받고있는 이유는 그 영향이 두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유럽 및 세계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불러온 국제질서의 재편
1. ‘가치전쟁’의 서막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단순한 군사적 침공이 아닌 지역/세계적 질서 재편 전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에 이어 세계질서에 커다란 변환의 촉발점이 점화된 것이며,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는 UN결의안에 대한 표결 결과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사실상 전쟁은 ‘민주주의 對 권위주의’라는 가치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결의안은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통과되었는데, 반대의견을 표명한 5개국(러시아, 북한, 시리아, 벨라루스, 에리트리아)이 모두 일반적으로 권위주의로 평가되는 체제이며, 기권에도 상당수의 권위주의 국가들이 포함되어있다. 이러한 결과는 매년 영국 Economist 가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상의 평가와도 연결된다. 2020년 지수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 기권을 선택한 상당수 의 국가들이 ‘권위주의 체제(Authoritarian regime)’나 ‘혼합형 체제(Hybrid regime)’였으며, 기권을 선택한 이스라엘도 ‘결함 있는 민주 주의’(Flawed democracy)로 분류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대립이 ‘가치전쟁’은 결국 ‘신냉전’의 시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서로 진영을 나누어 대립하되 이미 일상적으로 익숙한 추세가 되어 버린 세계화와 상호의존성으로 인해 냉전시대보다는 대립의 정도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 ‘가치전쟁’이 과거의 냉전에 비해 더 절박한 전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냉전 시절에는 이데올로기 대립이 있었지만 중후반부에는 이익 중심의 접근(데탕트)이 이루어졌고, 이데올로기의 상이성을 표방하고 블록을 형성하였으나 서로의 단절 선에서 만족하는 구조였다. 반면, 가치전쟁으로 인한 新냉전은 과거와는 달리 생활권을 완전히 단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단절, 공존, 이합집산이 혼재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가치전쟁’은 대립하는 상대방을 생활권으로부터 밀어내거나 도태시키려는 형태로 발전될 소지가 충분하며, 가치전쟁에서의 패배는 사실상 생활권의 상실을 의미하므로 냉전시대에 비해 더욱 절박한 승리의 욕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반도체와 에너지를 둘러싼 경쟁 등에서 이미 그 징후를 엿볼 수 있다.
2. 더 깊어질 증오와 불신, 그리고 중간지대의 소멸
이로 인해 대립하는 양 진영 간의 증오와 불신은 과거에 비해 더욱 커질 위험성도 다분하다. 냉전 시절에는 절연(insulated)된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에 단절을 해도 생존이나 발전에 지장이 없었다. 또한, 서로 자기 진영 내의 선전·선동과 정보 공유에 의존하였으므로 상대 방의 존재가 나의 존재에 실질적으로 큰 위협 요인이 되지는 않았으며, 군사적 충돌을 방지 하는 선에서 서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와 정보화가 진행된 현대에서 상대방으로부터의 완전한 정보 차단은 불가능하고, 이는 ‘COVID-19’의 발원지 논쟁을 둘러싼 미-중간 갈등에서 드러났다. 비슷한 양상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싸고도 그대로 재현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결국 상대방을 악마 화하고 멸망시켜야 한다는 인식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호 불신과 증오를 중재할 만한 중간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인해 더 심해진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과거 전통적인 중립노선의 표방 국가까지도 러시아를 비판하고 있으며, 신뢰할 만한 중재자가 부각되지 않고 있다.
3. 국제 비확산 질서의 훼손과 위험성
더욱 우려할 만한 것은 러시아가 전쟁 초반부터 미국 및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우크라이나 내의 저항과 관련하여 핵무력 사용을 시사해온 점이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도발한 직후 서방이 이 사태에 개입하면 “즉각 역사적으로 한 번도 보지 못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2월말에는 러시아 핵 전력에 대해 높은 수준의 경계태세(high alert) 를 지시하기도 하였다. 4월에는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3차세계대전’의 위험이 매우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오늘날 국제 비확산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성립한 이후의 일종의 불문율은 핵보유국이 신중성(prudence)을 발휘한다는 것이며, 특히 비핵국가를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묵계였다. 러시아의 침공 자체가 과거 비확산 체제의 유지를 위해 비핵화한 국가(우크라이나)의 안전을 해친 것이므로 기존의 관행에서 이탈한 것이었다. 더욱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 시사는 북한 등 현재적·잠재적 핵개발국으로 하여금 전혀 다른 교훈을 떠 올리게 할 수 있다. 즉, 핵무기가 지니는 거부권적(Veto) 효과를 절감함으로써 핵무기 개발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 수 있으며, 이미 러시아가 핵사용 위협을 가한 선례를 만듦으로써 북한의 입장에서는 핵무기를 이용한 위협을 더욱 편하게 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김정은은 4월 25일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일 연설에서 북한의 ‘근본이익’ 을 침해할 경우 억제를 넘어선 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4월 30일에도 ‘선제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의 영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도 미칠 전망이다. 러시아는 2000년대 이후 미국과 갈등 관계에 있기는 했지만, 미-중 갈등과는 다소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가치 전쟁으로 확대되면 자연스러운 러시아-중국 연대의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푸틴과 시진핑 모두 자기를 중심으로 한 독재의 장기화를 시도 하고 있으며, 권위주의라는 정치체제를 공유하고 있으며, 미국과 서방의 경제제재가 장기화될 것을 대비해야 하는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경제력이 긴요히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우 크라이나에서의 전황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일수록 이미 많은 자원을 투입한 러시아로서는 이 후의 재건 및 회복을 위해 중국에 의존할 수밖 에 없는 구조이다. 미국은 이러한 가치전쟁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확산에 대해 小다자 협력의 활성화를 통해 대응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이번 사태를 통해 NATO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으며, 우크라이나가 완패하는 결과가 나 오지 않는 이상 NATO의 결속은 강화될 것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기점으로 Quad, AUKUS 등의 小다자협력체를 더욱 확대하려 할 것이며, 동북아 지역에서도 한-미-일 안보협력 혹은 한-미-일-대만 안보협력의 추진 등이 시도될 수 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복수의 갈등 지역이 동시에 떠오를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ASEAN 이 갈등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동중국해 지역, 대만 해협, 한반도 등 다수의 갈등 지역이 존재한다. 이러한 갈등 지역의 다변화와 NATO 와 같은 존재의 부재는 미국의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으며, 각 지역의 갈등관리에 있어 해당 국가의 책임성과 관리 능력을 강조하는 정책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미국이 우크라이 나에서의 전쟁 초반 젤렌스키 정부를 지원하면서도 전선에서 직접 러시아군을 막아낼 책임을 우크라이나에게 맡긴 사례와 유사하다. 문제는 북한 역시 현재의 사태를 면밀히 주시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핵위협 교훈을 고려하여 새 정부 출범을 전후로 다양한 전략적 도발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에 비해 훨씬 단호한 대응의지를 과시할 것이지만, 내심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가 지속될 금년까지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한반도 위기를 관리해주기를 원할 수 있다.
한반도 안보,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1. 비핵화와 병행한 대핵(對核) 능력의 발전
‘북한 비핵화’는 한반도 평화와 우리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이지 만, 지난 10여년간 고도화되어 온 북한의 핵능력을 고려할 때 결코 쉽지만은 않은 과제이다. 따라서, 5월 10일 출범할 새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는 북한 비핵화와 한국의 대핵(對核) 능력(counter-nuclear force capability) 발전의 병행이다. 비핵화 과정은 향후 남북한 및 미북 간 대화와 협상이 재개된 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북한의 핵 능력을 완전하게 해체하기 위해서는 비핵화 못지않게 북한 핵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능력의 증강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의 잔존하는 핵위협에 대하여 확실한 대응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북한이 혹시라도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이 봉쇄되며, 이는 북한의 성실한 비핵화를 보장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남북한 간의 정치·군사적 관계 운영에서 ‘자신감’(confidence)과 ‘신뢰’(trust)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한 관계의 기본은 군사적 대치 및 견제이며, 그 속성 은 현재에도 유지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안정적 남북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합의의 이행에 따른 ‘자신감’을 지속적으로 쌓아가야 하며, 자 신감은 상대방의 약속 이행에 비례해 매우 한 정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지난 수년간 우리 는 북한의 변화에 대한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을 가지고 북한에 대한 신뢰의 ‘착 시’(錯視)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되돌아 보아야 한다.
2. 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의 입장에서 동맹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사건이기도 하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NATO 회원국이었다면 “회원국들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회원국에 대한 무장공격을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NATO 조약 제5조가 즉각 발동되었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가 쉽사리 침공을 결심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유보는 주요 NATO 회원국이었던 독일과 프랑스 등이 미온적 태도를 취한 데에서도 기인 하지만, 우크라이나 내의 국내정치적 분열과 우크라이나가 NATO를 경제·군사적으로 확신시키지 못한 데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의 안보공약이 상황에 따라 흔들릴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전쟁 초반에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동맹이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인 군사개입을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러시아군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고 우크라이나 주변의 NATO 동맹국들이 심각한 안보 우려를 표명하는 데에도 미국은 대러시아 경제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장비 지원에만 중점을 두었다. 미국이 ‘주요 非NATO 동맹국’(Major Non-NATO Allies)으로 분류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2021 년 미군을 철수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 의해 다시 장악되었다는 사실도 상기해 볼 때,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닌가의 여부가 아니라 얼마만큼 동맹이 튼튼하게 유지되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 수년간 한미동맹에서 나타났던 문제점들을 되돌아보고 이를 반복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첫째는 위협인식의 괴리이다. 2018년 김정은 신년사의 대미 ‘핵단추’ 발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한은 한반도를 넘어 미 본토에 대한 위협으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남북대화 재개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지난 수년간 한국 내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한 정확한 평가나 인식이 회피되는 분위기였다. 둘째, 공통이익의 확장에 소극적인 태도이다. 1990년대부터 미 국은 한반도를 벗어난 동맹관계를 꾸준히 희망 하였지만, 한국은 중국의 반응, 북한 핵문제 등을 이유로 한반도 방위동맹 이상의 역할에 소극적이었다. 이로 인해 ‘쿼드(Quad) 플러스’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위한 小다자협력에도 한국은 소극적 혹은 부정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셋째, 저하된 상호 신뢰의 문제이다. 양측이 외형적으로는 상호 신뢰와 협조를 다짐하면 서도 이면적으로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오히려 갈등을 외연화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우리 정부의 각료가 한미동맹을 ‘냉전적 동맹’이라고 평가한 것이나, 지난해 ‘종전선언’ 추진을 놓고 한미간의 미묘한 이견이 부각된 것과 같은 일이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국방혁신 방향의 재설정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향후 우리의 국방 혁신 방향 보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중 가장 시급한것이 병력 ‘첨단 화’의 수준과 방향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우크 라이나에서 러시아가 고전하는 이유의 하나는 러시아의 군사과학기술에 끼어 있던 ‘거품’의 문제도 있지만, ‘첨단’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교훈도 동시에 제시한다. 각 작전상황, 그 리고 작전 지역에 따라서는 고성능의 무기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는 곳도 있지만, 아닌 지역도 상당수 있다. 따라서, 각 지역 특성에 맞게 다양한 수준의 전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적정 High-Low Mix의 비율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령 미래 한국군의 전력구성도 첨단과 재래를 혼합하되,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운용 개념에 있어 오히려 군사선진국에 비해 더욱 혁신적인 편제의 미래형 군사력 역시 접합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국가최고지도자의 전략적 식견 향상이며, 이는 향후 국가지도자의 주요한 덕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고전은 러시아의 무기가 위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제대로 조합되고 준비되지 못 한 상태에서 투입된 데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러시아군의 무기와 부대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첨단화된 무기와 군대를 잘 못 사용한 지도부의 실책이 가장 큰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범한 가장 큰 오류는 첨단군일수록 작전의 목표가 분명하고, 전략적 타격점이 집중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러시아군이 자랑하는 대대전술단(BTG) 와 같은 기동부대의 운용은 많아야 2~3개 전략 거점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면서 상호 연계의 강점을 발휘해야 개혁성이 뒤떨어진 다른 국가의 군대를 압도할 수 있는데, 설계구조는 미래형인 군대가 전통전, 그것도 전면 섬멸전의 전쟁형태를 수행하는 오류를 저질렀고, 대대급 지휘관들의 전략적 식견 역시 한계를 나타낸 듯하다. 또한,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 최고지도부가 전체적으로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이에 따라 움직였는가도 되돌아볼 점이다. 즉, 푸틴의 눈치를 볼 뿐 제대로된 전략커뮤니케이션(strategic communication)이 없었던 점이 러시아의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고 보아야 한다.
군과 민간의 융합, 그리고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한국의 이미지 제고 역시 무기나 장비의 첨단화 못지않게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국 제사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성원과 지지의 상당한 이유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지성, 그리고 초반 전황에 대한 공감대의 확산 등이었다. 또한, 이는 상대방 국민들이나 세계에 대한 공공 외교와도 연결된다. 민간과 군의 상호 보완성을 어떻게 구상하고 양측의 강점을 어떻게 결합할 지도 향후의 국방혁신에서 더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다.
4. 전략적 투명성의 확립
이와 함께 가치전쟁 시대에 있어서 전략적 모호성보다는 전략적 투명성(strategic clarity)에 의한 접근이 필요하다. 가치 경쟁에서의 분명한 노선 표방은 일종의 자기 정체성 (identity)과 연결되며, 특히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가치전쟁에서 연루를 두려워하는 전략적 모호성으로는 오히려 압력만이 증대된다.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도 체제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전략적 투명성이 필요하며, 우리의 대북정책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즉, 북한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 북한 인권 등에 눈감는 행위는 적절치 못하다.
5. 외교안보에 대한 내부적 소통 강화
외교안보 정책결정에 있어 소그룹 결정 (Small Group Decision)의 유혹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이는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하고, 사회갈등을 증폭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푸틴은 1인 지배자를 정점으로 한 소그룹 정책결정이 얼마나 재앙적 결과를 내는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주요 대북정책이나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국민적 숙의체제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며, 이것이 없이는 남북관계의 지속성이나 효율성, 한국의 국익 확장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에 주는 교훈: 국제질서의 변환과 한반도 안보
차 두 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을 당시 단기전으로 끝날 것으로 전망되었던 전쟁은 2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이제는 장기적인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아직 전쟁의 최종 결과를 완전히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러시아가 완전한 승리, 즉 ‘우크라이나의 脫군사화 (무장해제 및 NATO/EU 가입 저지)’, ‘우크라이나의 중립화 및 나치세력 척결’(사실상 親러 괴뢰정권 수립)이라는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힘들 듯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 세 계적인 주목을 받고있는 이유는 그 영향이 두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유럽 및 세계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불러온 국제질서의 재편
1. ‘가치전쟁’의 서막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단순한 군사적 침공이 아닌 지역/세계적 질서 재편 전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에 이어 세계질서에 커다란 변환의 촉발점이 점화된 것이며,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는 UN결의안에 대한 표결 결과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사실상 전쟁은 ‘민주주의 對 권위주의’라는 가치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결의안은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통과되었는데, 반대의견을 표명한 5개국(러시아, 북한, 시리아, 벨라루스, 에리트리아)이 모두 일반적으로 권위주의로 평가되는 체제이며, 기권에도 상당수의 권위주의 국가들이 포함되어있다. 이러한 결과는 매년 영국 Economist 가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상의 평가와도 연결된다. 2020년 지수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 기권을 선택한 상당수 의 국가들이 ‘권위주의 체제(Authoritarian regime)’나 ‘혼합형 체제(Hybrid regime)’였으며, 기권을 선택한 이스라엘도 ‘결함 있는 민주 주의’(Flawed democracy)로 분류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대립이 ‘가치전쟁’은 결국 ‘신냉전’의 시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서로 진영을 나누어 대립하되 이미 일상적으로 익숙한 추세가 되어 버린 세계화와 상호의존성으로 인해 냉전시대보다는 대립의 정도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 ‘가치전쟁’이 과거의 냉전에 비해 더 절박한 전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냉전 시절에는 이데올로기 대립이 있었지만 중후반부에는 이익 중심의 접근(데탕트)이 이루어졌고, 이데올로기의 상이성을 표방하고 블록을 형성하였으나 서로의 단절 선에서 만족하는 구조였다. 반면, 가치전쟁으로 인한 新냉전은 과거와는 달리 생활권을 완전히 단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단절, 공존, 이합집산이 혼재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가치전쟁’은 대립하는 상대방을 생활권으로부터 밀어내거나 도태시키려는 형태로 발전될 소지가 충분하며, 가치전쟁에서의 패배는 사실상 생활권의 상실을 의미하므로 냉전시대에 비해 더욱 절박한 승리의 욕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반도체와 에너지를 둘러싼 경쟁 등에서 이미 그 징후를 엿볼 수 있다.
2. 더 깊어질 증오와 불신, 그리고 중간지대의 소멸
이로 인해 대립하는 양 진영 간의 증오와 불신은 과거에 비해 더욱 커질 위험성도 다분하다. 냉전 시절에는 절연(insulated)된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에 단절을 해도 생존이나 발전에 지장이 없었다. 또한, 서로 자기 진영 내의 선전·선동과 정보 공유에 의존하였으므로 상대 방의 존재가 나의 존재에 실질적으로 큰 위협 요인이 되지는 않았으며, 군사적 충돌을 방지 하는 선에서 서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와 정보화가 진행된 현대에서 상대방으로부터의 완전한 정보 차단은 불가능하고, 이는 ‘COVID-19’의 발원지 논쟁을 둘러싼 미-중간 갈등에서 드러났다. 비슷한 양상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싸고도 그대로 재현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결국 상대방을 악마 화하고 멸망시켜야 한다는 인식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호 불신과 증오를 중재할 만한 중간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인해 더 심해진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과거 전통적인 중립노선의 표방 국가까지도 러시아를 비판하고 있으며, 신뢰할 만한 중재자가 부각되지 않고 있다.
3. 국제 비확산 질서의 훼손과 위험성
더욱 우려할 만한 것은 러시아가 전쟁 초반부터 미국 및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우크라이나 내의 저항과 관련하여 핵무력 사용을 시사해온 점이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도발한 직후 서방이 이 사태에 개입하면 “즉각 역사적으로 한 번도 보지 못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2월말에는 러시아 핵 전력에 대해 높은 수준의 경계태세(high alert) 를 지시하기도 하였다. 4월에는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3차세계대전’의 위험이 매우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오늘날 국제 비확산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성립한 이후의 일종의 불문율은 핵보유국이 신중성(prudence)을 발휘한다는 것이며, 특히 비핵국가를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묵계였다. 러시아의 침공 자체가 과거 비확산 체제의 유지를 위해 비핵화한 국가(우크라이나)의 안전을 해친 것이므로 기존의 관행에서 이탈한 것이었다. 더욱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 시사는 북한 등 현재적·잠재적 핵개발국으로 하여금 전혀 다른 교훈을 떠 올리게 할 수 있다. 즉, 핵무기가 지니는 거부권적(Veto) 효과를 절감함으로써 핵무기 개발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 수 있으며, 이미 러시아가 핵사용 위협을 가한 선례를 만듦으로써 북한의 입장에서는 핵무기를 이용한 위협을 더욱 편하게 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김정은은 4월 25일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일 연설에서 북한의 ‘근본이익’ 을 침해할 경우 억제를 넘어선 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4월 30일에도 ‘선제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의 영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도 미칠 전망이다. 러시아는 2000년대 이후 미국과 갈등 관계에 있기는 했지만, 미-중 갈등과는 다소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가치 전쟁으로 확대되면 자연스러운 러시아-중국 연대의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푸틴과 시진핑 모두 자기를 중심으로 한 독재의 장기화를 시도 하고 있으며, 권위주의라는 정치체제를 공유하고 있으며, 미국과 서방의 경제제재가 장기화될 것을 대비해야 하는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경제력이 긴요히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우 크라이나에서의 전황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일수록 이미 많은 자원을 투입한 러시아로서는 이 후의 재건 및 회복을 위해 중국에 의존할 수밖 에 없는 구조이다. 미국은 이러한 가치전쟁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확산에 대해 小다자 협력의 활성화를 통해 대응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이번 사태를 통해 NATO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으며, 우크라이나가 완패하는 결과가 나 오지 않는 이상 NATO의 결속은 강화될 것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기점으로 Quad, AUKUS 등의 小다자협력체를 더욱 확대하려 할 것이며, 동북아 지역에서도 한-미-일 안보협력 혹은 한-미-일-대만 안보협력의 추진 등이 시도될 수 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복수의 갈등 지역이 동시에 떠오를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ASEAN 이 갈등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동중국해 지역, 대만 해협, 한반도 등 다수의 갈등 지역이 존재한다. 이러한 갈등 지역의 다변화와 NATO 와 같은 존재의 부재는 미국의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으며, 각 지역의 갈등관리에 있어 해당 국가의 책임성과 관리 능력을 강조하는 정책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미국이 우크라이 나에서의 전쟁 초반 젤렌스키 정부를 지원하면서도 전선에서 직접 러시아군을 막아낼 책임을 우크라이나에게 맡긴 사례와 유사하다. 문제는 북한 역시 현재의 사태를 면밀히 주시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핵위협 교훈을 고려하여 새 정부 출범을 전후로 다양한 전략적 도발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에 비해 훨씬 단호한 대응의지를 과시할 것이지만, 내심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가 지속될 금년까지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한반도 위기를 관리해주기를 원할 수 있다.
한반도 안보,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1. 비핵화와 병행한 대핵(對核) 능력의 발전
‘북한 비핵화’는 한반도 평화와 우리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이지 만, 지난 10여년간 고도화되어 온 북한의 핵능력을 고려할 때 결코 쉽지만은 않은 과제이다. 따라서, 5월 10일 출범할 새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는 북한 비핵화와 한국의 대핵(對核) 능력(counter-nuclear force capability) 발전의 병행이다. 비핵화 과정은 향후 남북한 및 미북 간 대화와 협상이 재개된 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북한의 핵 능력을 완전하게 해체하기 위해서는 비핵화 못지않게 북한 핵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능력의 증강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의 잔존하는 핵위협에 대하여 확실한 대응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북한이 혹시라도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이 봉쇄되며, 이는 북한의 성실한 비핵화를 보장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남북한 간의 정치·군사적 관계 운영에서 ‘자신감’(confidence)과 ‘신뢰’(trust)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한 관계의 기본은 군사적 대치 및 견제이며, 그 속성 은 현재에도 유지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안정적 남북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합의의 이행에 따른 ‘자신감’을 지속적으로 쌓아가야 하며, 자 신감은 상대방의 약속 이행에 비례해 매우 한 정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지난 수년간 우리 는 북한의 변화에 대한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을 가지고 북한에 대한 신뢰의 ‘착 시’(錯視)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되돌아 보아야 한다.
2. 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의 입장에서 동맹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사건이기도 하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NATO 회원국이었다면 “회원국들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회원국에 대한 무장공격을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NATO 조약 제5조가 즉각 발동되었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가 쉽사리 침공을 결심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유보는 주요 NATO 회원국이었던 독일과 프랑스 등이 미온적 태도를 취한 데에서도 기인 하지만, 우크라이나 내의 국내정치적 분열과 우크라이나가 NATO를 경제·군사적으로 확신시키지 못한 데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의 안보공약이 상황에 따라 흔들릴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전쟁 초반에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동맹이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인 군사개입을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러시아군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고 우크라이나 주변의 NATO 동맹국들이 심각한 안보 우려를 표명하는 데에도 미국은 대러시아 경제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장비 지원에만 중점을 두었다. 미국이 ‘주요 非NATO 동맹국’(Major Non-NATO Allies)으로 분류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2021 년 미군을 철수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 의해 다시 장악되었다는 사실도 상기해 볼 때,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닌가의 여부가 아니라 얼마만큼 동맹이 튼튼하게 유지되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 수년간 한미동맹에서 나타났던 문제점들을 되돌아보고 이를 반복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첫째는 위협인식의 괴리이다. 2018년 김정은 신년사의 대미 ‘핵단추’ 발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한은 한반도를 넘어 미 본토에 대한 위협으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남북대화 재개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지난 수년간 한국 내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한 정확한 평가나 인식이 회피되는 분위기였다. 둘째, 공통이익의 확장에 소극적인 태도이다. 1990년대부터 미 국은 한반도를 벗어난 동맹관계를 꾸준히 희망 하였지만, 한국은 중국의 반응, 북한 핵문제 등을 이유로 한반도 방위동맹 이상의 역할에 소극적이었다. 이로 인해 ‘쿼드(Quad) 플러스’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위한 小다자협력에도 한국은 소극적 혹은 부정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셋째, 저하된 상호 신뢰의 문제이다. 양측이 외형적으로는 상호 신뢰와 협조를 다짐하면 서도 이면적으로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오히려 갈등을 외연화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우리 정부의 각료가 한미동맹을 ‘냉전적 동맹’이라고 평가한 것이나, 지난해 ‘종전선언’ 추진을 놓고 한미간의 미묘한 이견이 부각된 것과 같은 일이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국방혁신 방향의 재설정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향후 우리의 국방 혁신 방향 보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중 가장 시급한것이 병력 ‘첨단 화’의 수준과 방향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우크 라이나에서 러시아가 고전하는 이유의 하나는 러시아의 군사과학기술에 끼어 있던 ‘거품’의 문제도 있지만, ‘첨단’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교훈도 동시에 제시한다. 각 작전상황, 그 리고 작전 지역에 따라서는 고성능의 무기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는 곳도 있지만, 아닌 지역도 상당수 있다. 따라서, 각 지역 특성에 맞게 다양한 수준의 전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적정 High-Low Mix의 비율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령 미래 한국군의 전력구성도 첨단과 재래를 혼합하되,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운용 개념에 있어 오히려 군사선진국에 비해 더욱 혁신적인 편제의 미래형 군사력 역시 접합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국가최고지도자의 전략적 식견 향상이며, 이는 향후 국가지도자의 주요한 덕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고전은 러시아의 무기가 위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제대로 조합되고 준비되지 못 한 상태에서 투입된 데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러시아군의 무기와 부대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첨단화된 무기와 군대를 잘 못 사용한 지도부의 실책이 가장 큰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범한 가장 큰 오류는 첨단군일수록 작전의 목표가 분명하고, 전략적 타격점이 집중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러시아군이 자랑하는 대대전술단(BTG) 와 같은 기동부대의 운용은 많아야 2~3개 전략 거점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면서 상호 연계의 강점을 발휘해야 개혁성이 뒤떨어진 다른 국가의 군대를 압도할 수 있는데, 설계구조는 미래형인 군대가 전통전, 그것도 전면 섬멸전의 전쟁형태를 수행하는 오류를 저질렀고, 대대급 지휘관들의 전략적 식견 역시 한계를 나타낸 듯하다. 또한,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 최고지도부가 전체적으로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이에 따라 움직였는가도 되돌아볼 점이다. 즉, 푸틴의 눈치를 볼 뿐 제대로된 전략커뮤니케이션(strategic communication)이 없었던 점이 러시아의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고 보아야 한다.
군과 민간의 융합, 그리고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한국의 이미지 제고 역시 무기나 장비의 첨단화 못지않게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국 제사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성원과 지지의 상당한 이유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지성, 그리고 초반 전황에 대한 공감대의 확산 등이었다. 또한, 이는 상대방 국민들이나 세계에 대한 공공 외교와도 연결된다. 민간과 군의 상호 보완성을 어떻게 구상하고 양측의 강점을 어떻게 결합할 지도 향후의 국방혁신에서 더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다.
4. 전략적 투명성의 확립
이와 함께 가치전쟁 시대에 있어서 전략적 모호성보다는 전략적 투명성(strategic clarity)에 의한 접근이 필요하다. 가치 경쟁에서의 분명한 노선 표방은 일종의 자기 정체성 (identity)과 연결되며, 특히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가치전쟁에서 연루를 두려워하는 전략적 모호성으로는 오히려 압력만이 증대된다.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도 체제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전략적 투명성이 필요하며, 우리의 대북정책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즉, 북한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 북한 인권 등에 눈감는 행위는 적절치 못하다.
5. 외교안보에 대한 내부적 소통 강화
외교안보 정책결정에 있어 소그룹 결정 (Small Group Decision)의 유혹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이는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하고, 사회갈등을 증폭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푸틴은 1인 지배자를 정점으로 한 소그룹 정책결정이 얼마나 재앙적 결과를 내는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주요 대북정책이나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국민적 숙의체제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며, 이것이 없이는 남북관계의 지속성이나 효율성, 한국의 국익 확장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