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문가 기고]미중 경쟁과 중동-장지향


미중 경쟁과 중동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

 

  미중 경쟁 시기 이전 미국의 중동 정책

  냉전 시기 중동에서는 미국과 소비에트연방이 체제 경쟁을 벌이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공산주의 봉쇄를 위해 중동에 유능하고 민주적인 국가 재건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미국은 반미 세력과 사회주의 운동 확산을 막는 데 뛰어난 독재 정권이나 급진주의 세력을 지원했다. 미국의 일관성 없는 정책은 중동과 이슬람 세계의 민주화 지원이라는 대원칙을 위배했고 무슬림 대중의 반미 감정을 부추겼다.

  1979년 소비에트연방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사회주의 세력의 지원에 나서자 미국은 이에 맞선 이슬람 급진주의 저항 세력을 도왔다. 이들 세력은 아프가니스탄 내 파슈툰, 타지크, 하자라 등의 여러 부족뿐 아니라 이웃 무슬림 국가에서 건너와 사회주의 무신론자에 대항한 다양한 국적의 이슬람 전사 무자헤딘을 포함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은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의 지원 하에 이슬람 성전 지하드를 자국이 아닌 곳에서 행한 국제 지하디스트 1세대가 됐다.

  한편 1979년 이란에서 시민 혁명이 일어나 부패하고 무능한 친미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린 후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하자 1980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옆 나라의 혁명 여파가 자국에 미칠 것을 우려해 이란을 침공했다. 당시 미국은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때문에 이란과 최악의 관계에 놓여 있었고 결국 이란-이라크 전에서 이라크의 독재 정권 지원을 결정했다.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외교정책의 대원칙을 거스르던 지하디스트 세력과 독재 정권의 지원을 철회했다. 배신감에 치를 떤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은 더욱 과격한 알카에다로 재정비했고 다양한 무슬림 국가에서 급진주의에 경도된 젊은이들을 충원했다. 냉전 이후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이 냉전 시기의 소비에트연방 자리를 대체하자 미국은 이들을 향한 봉쇄 정책을 재빠르게 시행했다. 알카에다는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고 타락한 서구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미국 본토에서 9·11 테러를 감행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급진주의 탈레반 정권이 알카에다의 우두머리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신병 인도를 거부하자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대테러 전을 시작했다. 2003년에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며 이라크와도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후 안정화와 재건 정책을 통한 치안력 회복과 민주주의 체제 구축은 물론 공여국의 국제적 위상 확보에도 실패했다.

 

  미중 경쟁 시기 미국의 ‘중동 내 역할 축소’ 정책

  2009년 출범한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부는 새로운 중동 정책으로서 ‘역외 균형’ 기조와 ‘뒤에서 이끄는’ 방식을 취했고 ‘아시아 회귀’ 전략에 집중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참전으로 인한 국내 여론의 악화와 장기전의 피로감, 셰일 에너지 개발에 따른 중동 자원의 의존도 감소에 따라 중국 견제의 이해관계가 우선순위로 새롭게 부상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바마 정부는 역외 균형 정책의 일환으로서 팽창주의를 추구하는 이란의 강경 보수파를 견제하기 위해 역사적인 이란 핵합의(포괄적 공동 행동계획, JCPOA)를 성사시켜 이란 내 온건 개혁파에 힘을 실어주고자 했다.

  이후 등장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정부는 자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의 기조 아래 지불능력 중시 동맹관, 근시안적 거래 외교를 강조하며 ‘중동에서 발 빼기’를 노골적으로 선언했다. 이어 이란 핵 합의의 독단적 파기, 편파적 친이스라엘 행보, 대 NATO 방위 분담금 증액 요구, 우방 쿠르드 배신과 급작스런 시리아 철군을 강행해 중동 내 유례없는 혼란을 야기했다.

  트럼프 정부가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와 지지세력 결집을 위해 포퓰리즘 대외정책을 가속화하자 역내 미 동맹 우방국의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눈치 보기와 이합집산이 시작됐다. 미국은 동맹국 터키와 카타르의 친러, 친이란 밀착 행보를 방관했고 역내 동맹 체제는 느슨해졌다. 그 틈새를 공략한 러시아는 후원국 시리아의 정상국가 복귀를 위해 종전협상을 주도했고 외교력을 과시하며 역내 입지를 다졌다. 미국의 전통적 동맹 우방국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UAE 역시 미국의 중동 이탈에 대비해 중국과의 관계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켰다. 중국은 이에 더해 터키, 이란과도 밀접한 관계를 심화했다.

  2021년 1월 조 바이든 민주당 정부가 출범하면서 ‘트럼프 뒤집기’가 많은 정책 분야에서 진행됐지만 ‘중동 떠나기’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는 중동 내 미국의 역할을 축소하되 단계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며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고 오바마 정부 시기와 비슷하게 중국 견제를 내세운 인도-태평양 전략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해 8월 민주주의와 인권, 동맹의 중요성을 내세우며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귀환을 외치는 민주당 정부에서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집권 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미국의 20년 아프가니스탄 정책은 뼈아픈 실패로 마감했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가 파기한 이란 핵합의를 빨리 복원하고 역내 군 감축을 포함한 ‘중동 떠나기’를 가속해 중국 견제와 기후변화 정책에 집중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중동에 얽매인 모습은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중 경쟁 시기 중국의 활발한 중동 진출

  중동에서 중국은 새로운 행위자다. 미국이 ‘중동 내 역할 축소’를 가속화하는 시기 중국은 힘의 공백을 노리며 역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동 주요 국가들에도 중국은 셰일혁명으로 인해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한 미국과 달리 여전히 중요한 에너지 수출국이며 미국의 중동 이탈 이후를 대비할 협력 다변화의 대상이다.

  2013년 중국은 안정적 에너지 확보의 목표 아래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항만, 철도, 도로, 화력발전소, 댐 등의 인프라로 연결해 거대 경제권을 구축한다는 일대일로 전략을 발표했다. 이어 두 지역의 교두보인 중동과의 경제협력을 강조했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스라엘, 터키, 카타르 등 주요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고 2017년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란 등 중동 10개국의 최대 수입국이 되었다. 2021년 3월에는 수니파 대표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경쟁자인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협정을 체결해 향후 25년간 경제와 안보 분야 협력을 약속했다.

  동시에 중국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메카-메디나를 잇는 대규모 고속철도 건설 사업을 진행 중이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표 개혁 프로그램 ‘비전 2030’의 거점인 홍해 지역과 일대일로 전략을 연결해 자국의 운송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알제리, 모로코와도 긴밀한 파트너 십을 구축하기 위해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을 조직했다.

  코로나 19 시기 중국은 중동 여러 나라를 상대로 보건 외교를 적극적으로 벌이며 의료 용품과 마스크를 대량 기증하고 중국산 백신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했다. 2021년 3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터키, UAE, 바레인을 방문해 백신 공급과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를 약속했다. 특히 4월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핵합의 복원 협상을 둘러싸고 미국과 탐색전을 벌이는 이란에는 포괄적 협력 관계를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중동 내 권위주의 국가를 상대로 내정 불간섭과 현상 유지 입장을 강조했다. 이미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혁신기술 분야에서 심화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을 장악한 후 거대 인터넷 네트워크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술개발에 주력해 강대국 부상의 목표를 추구해왔다.

  디지털 권위주의 국가 중국은 자국의 표준에 따라 별다른 제한 없이 중동의 권위주의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UAE, 터키, 이집트와 디지털 실크로드 관련 MOU를 맺었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IT 기업들이 사우디아라비아, UAE, 바레인, 쿠웨이트, 이집트의 통신회사들과 5G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 클라우드, 전자상거래 및 모바일 결제, 베이더우 위성항법시스템 등의 첨단기술이 이들 국가에 퍼졌다. 나아가 이들 중동 국가는 극단주의 테러조직을 감시한다는 목표 하에 중국의 홍채와 안면 인식과 인터넷 통제 기술 등을 포함한 최첨단 보안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중동 권위주의 국가는 이러한 첨단 기술을 이용해 반정부 인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폭압 통치를 강화할 수 있다.

 

미중 경쟁을 바라보는 중동의 인식과 우리의 중동 정책

  2020년 ‘아랍 바로미터(Arab Barometer)’는 중동 시민을 대상으로 강대국 호감도 인식을 조사했다. 조사는 2020년 7월부터 10월까지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6개국의 5,75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3 미만이 미국에 호의적이었고 3개국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 호의적이었다.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모로코 28%, 레바논 25%, 알제리 24%, 튀니지 21%, 요르단 15%, 리비아 14%로 나온 반면 중국을 향한 호감도는 알제리 60%, 모로코 52%, 튀니지 50%, 레바논 43%, 요르단 35%, 리비아 34%로 각각 나타났다. 중국 당국은 중동 6개국의 대중 호감도가 대미 호감도의 두 배 가량 해당한다며 아랍 바로미터의 조사 결과에 호의적 논평을 내기도 했다.

  한편 레바논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트럼프 대통령보다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자에 대한 호감도가 높게 나타났지만 미국의 중동 정책이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자의 호감도에 대해 튀니지 12% vs. 52%, 알제리 7% vs. 43%, 모로코 9% vs. 39%, 리비아 10% vs. 38%, 요르단 5% vs. 29%, 레바논 17% vs. 16%로 각각 나타났으나 전체 응답자의 42%가 앞으로의 미국의 중동 정책을 부정적으로 봤다.

  위의 여론조사는 중동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했다. 튀니지와 이스라엘을 제외한 중동 국가는 모두 비민주주의 체제에 속하기 때문에 정부와 시민 간의 인식 격차가 클 수 있다. 2011년 발발한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이 10주년을 맞았지만 혁명의 근원지 튀니지를 제외하고는 반독재 혁명이 일어난 나라들 모두 민주화에 실패했다. 이집트는 군부 권위주의로 돌아갔고 시리아, 리비아, 예멘은 장기 내전을 겪고 있다. 더구나 팬데믹 시기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약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중동에서도 권위주의 심화 현상이 나타났다. 중동 권위주의 정권은 국가의 감시가 허용된 틈을 타 방역 명목 아래 집회를 금지했고 정적을 잡아들였다.

  그럼에도 중동의 지도자들은 독재 정권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민주화 혁명을 지켜보면서 정권 생존에 위협을 느꼈고 이후 여론을 의식해 화답의 몸짓을 선보이고자 해왔다. 중동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시행해 온 기관들은 ‘아랍의 봄’ 혁명 이후 정부 측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한 민감한 주제의 여론조사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개입하려는 시도가 줄었다고 밝혔다. 더구나 여러 여론조사에 따르면 만 35세 이하 청년 인구가 구세대와 달리 개인 의사 표현의 자유, 실용주의, 민주주의 가치를 점차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청년층은 부모 세대와 달리 생활 전반에서 SNS를 활용하며 ‘아랍의 봄’ 혁명을 통해 시민의 요구가 분출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제 중동의 정부는 시민의 대외인식 변화를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중동 시민의 강대국 인식에서 드러난 낮은 대미 호감도는 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이 실시해온 일관성과 원칙 없는 중동 정책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 덕분에 패권주의와 관련된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최근에는 일대일로 전략 하의 경제적 접근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제한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19 시기 중국이 실시한 의료 용품과 백신의 물량 공세 역시 중국의 호감도를 높이는데 한몫 했다. 중동의 대부분 정부 역시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운 미국의 압력보다는 중국의 과감한 인프라 프로젝트를 선호한다.

  하지만 중동 시민들은 중국이 주변 개도국의 비민주주의 정권에 인터넷 통제기술을 별다른 제한 없이 제공하며 중동 내 디지털 권위주의 정권에 힘을 실어준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중국이 감시 카메라와 안면과 홍채 인식의 바이오 기술에 기반 한 불법 감시 시스템을 이용해 신장 자치구의 위구르 무슬림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한다는 사실은 중동과 이슬람 세계에 이미 꽤 알려져 있다. 따라서 위구르 무슬림을 탄압하며 일당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중국에 중동의 정부들이 마냥 밀착할 수는 없다. 또한 중국이 일대일로 전략의 추진을 위해 전폭적으로 조달해온 해외개발 자금이 지난 5년간 하향세를 보이자 중국의 경제협력 추진력에 대한 중동 정부의 기대감도 차츰 사그라지는 추세다.

  우리는 중동에서 핵확산 금지, 민주주의와 인권 보호, 자유 시장경제 지지를 핵심으로 삼는 중견국 외교를 강조해왔다. 특히 2010년대 초반 이래 이러한 원칙과 국제사회 내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경제 이익을 넘어선 인도적 지원 정책, 평화 유지군 활동, 대테러 임무를 활발히 수행해왔다. 2021년 한국은 레바논 동명부대, 아덴만 청해부대, 남수단 한빛부대의 활약을 발판 삼아 유엔 평화유지활동에서 10번째로 큰 기여국이 됐다.

  최근 미국은 기술선진 민주주의 동맹국과 함께 투명성,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 다자협력 등의 국제규범과 가치를 방어하고 중국을 압박하겠다고 나섰다. 2021년 6월 바이든 정부는 G7 국가와 함께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견제하기 위해 개도국을 대상으로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 B3W)’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 회복과도 맞닿은 B3W 이니셔티브는 기후 변화, 디지털 민주주의, 성평등, 지속가능한 발전을 강조하며 이러한 원칙은 우리 대외정책의 기조와도 일맥상통한다. 무엇보다 중국이 추진하는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강력한 감시 시스템 강화는 우리의 중견국 외교 원칙에 크게 어긋난다. 중동의 정부와 시민 역시 중국의 디지털 권위주의를 장기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기에 우리는 국제규범과 다자주의 원칙에 기반 한 중동 정책을 꾸준히 펼쳐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