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논단]정전(停戰)체제와 종전(終戰)선언, 그리고 군사분계선
계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국방사부장
2021년 9월 제76차 유엔 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라고 밝혔다. 1953년 7월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停戰, armistice)을 확립할 목적으로 북·미·중이 합의하여 체결한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 정전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종전(終戰, end of war)선언은 정전협정에 명시된 “평화적 해결을 달성”하기 위한 절차로써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정치적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종전선언을 위한 한·미 실무협의 단계에서 양측간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으로 평화협정과 별개라고 하지만, 미국 측은 북한이 종전선언을 근거로 주한미군 철수, 한·미 연합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주장하는 등 정전협정의 무력화 시도를 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종전선언을 할 경우,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서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도 미국의 염려인 듯하다.
우리 측의 입장은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면서 남·북 관계의 주도권도 잡을 수 있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다. 반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 시도를 예측하는 미국 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의 잔여 임기 내에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이 가능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급진적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이루어지든, 안정적으로 현재의 정전체제가 당분간 더 지속 되든지,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길 바라는 것은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염원하는 바이다.
종전선언과 관련하여 각방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지금, 정전협정 시 전쟁 당사국 쌍방의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호한 상태인 군사분계선의 실체에 대한 화두를 던져보고자 한다. 1953년 정전협정 당시 쌍방은 정전협정 원본 지도 위에 그은 군사분계선을 따라 1,292개의 표식물을 설치한 후, 그것을 실질적인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유엔군사령부의 자료에 의하면, 7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군사분계선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표식물이 자연 훼손되고 180여 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남과 북의 경계를 가르는 군사분계선 표식물 1,292개의 15% 남짓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전협정 원본 지도에 펜으로 그은 군사분계선을 현대측지계로 변환하면 최대 250m의 오차가 발생하며, 각종 시스템에 입력된 군사분계선과 한국군 전방 초소에서 실제로 인지하고 사용하는 군사분계선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북한군이 인식하고 있는 군사분계선과 한국군이나 유엔군사령부에서 사용하는 것을 서로 비교해보면 오차 범위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즉, 실제 지형에서 남과 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이 어디에서 어디를 거쳐 어디로 이르는지 실제 지형에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고, 정전협정 원본 지도의 군사분계선과 한국군이 현재 사용하는 군사지도에 표기된 군사분계선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군사분계선의 실체가 모호하다.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이 정전협정을 대체하게 된다면 지금의 군사분계선이 국경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경계가 모호한 국경선이 되는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된다고 하더라도 남과 북은 지속적인 경쟁 구도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접경 국가 간에는 분쟁의 불씨가 상존한다는 역사적 교훈도 있다. 양측이 화해와 협력 관계를 유지할 때는 문제가 없겠지만, 관계가 경색되고 경쟁이 심해지면 모호한 국경선이 분쟁의 발화점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2016년 유엔군사령부는 한국·미국·영국의 지형정보분석 전문가들과 함께 ‘군사분계선 프로젝트(MDL Project)’를 추진했다. 이를 통해 정전협정 원본 지도의 군사분계선을 현대측지계로 변환한 좌표값 23,954개를 추출했고, 식별 가능한 군사분계선 표식물 181개의 좌표값을 측량했다. 이 자료를 활용하여 유엔군사령부와 한국군이 공동으로 사용하기 위한 군사분계선의 위치를 규정하고, 적절한 시기에 북측과 논의하여 군사분계선의 명확한 위치를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은 정전 상태에서 군사분계선의 모호함으로 발생 가능한 우발적 군사 충돌을 예방할 수 있다. 이는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군사분계선이 국경선으로 대체된 후에도 경계의 모호함으로 인해 발생 가능한 분쟁의 씨앗을 사전에 제거하는 방안이다.
[신년논단]정전(停戰)체제와 종전(終戰)선언, 그리고 군사분계선
계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국방사부장
2021년 9월 제76차 유엔 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라고 밝혔다. 1953년 7월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停戰, armistice)을 확립할 목적으로 북·미·중이 합의하여 체결한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 정전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종전(終戰, end of war)선언은 정전협정에 명시된 “평화적 해결을 달성”하기 위한 절차로써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정치적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종전선언을 위한 한·미 실무협의 단계에서 양측간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으로 평화협정과 별개라고 하지만, 미국 측은 북한이 종전선언을 근거로 주한미군 철수, 한·미 연합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주장하는 등 정전협정의 무력화 시도를 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종전선언을 할 경우,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서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도 미국의 염려인 듯하다.
우리 측의 입장은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면서 남·북 관계의 주도권도 잡을 수 있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다. 반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 시도를 예측하는 미국 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의 잔여 임기 내에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이 가능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급진적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이루어지든, 안정적으로 현재의 정전체제가 당분간 더 지속 되든지,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길 바라는 것은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염원하는 바이다.
종전선언과 관련하여 각방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지금, 정전협정 시 전쟁 당사국 쌍방의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호한 상태인 군사분계선의 실체에 대한 화두를 던져보고자 한다. 1953년 정전협정 당시 쌍방은 정전협정 원본 지도 위에 그은 군사분계선을 따라 1,292개의 표식물을 설치한 후, 그것을 실질적인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유엔군사령부의 자료에 의하면, 7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군사분계선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표식물이 자연 훼손되고 180여 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남과 북의 경계를 가르는 군사분계선 표식물 1,292개의 15% 남짓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전협정 원본 지도에 펜으로 그은 군사분계선을 현대측지계로 변환하면 최대 250m의 오차가 발생하며, 각종 시스템에 입력된 군사분계선과 한국군 전방 초소에서 실제로 인지하고 사용하는 군사분계선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북한군이 인식하고 있는 군사분계선과 한국군이나 유엔군사령부에서 사용하는 것을 서로 비교해보면 오차 범위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즉, 실제 지형에서 남과 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이 어디에서 어디를 거쳐 어디로 이르는지 실제 지형에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고, 정전협정 원본 지도의 군사분계선과 한국군이 현재 사용하는 군사지도에 표기된 군사분계선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군사분계선의 실체가 모호하다.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이 정전협정을 대체하게 된다면 지금의 군사분계선이 국경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경계가 모호한 국경선이 되는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된다고 하더라도 남과 북은 지속적인 경쟁 구도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접경 국가 간에는 분쟁의 불씨가 상존한다는 역사적 교훈도 있다. 양측이 화해와 협력 관계를 유지할 때는 문제가 없겠지만, 관계가 경색되고 경쟁이 심해지면 모호한 국경선이 분쟁의 발화점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2016년 유엔군사령부는 한국·미국·영국의 지형정보분석 전문가들과 함께 ‘군사분계선 프로젝트(MDL Project)’를 추진했다. 이를 통해 정전협정 원본 지도의 군사분계선을 현대측지계로 변환한 좌표값 23,954개를 추출했고, 식별 가능한 군사분계선 표식물 181개의 좌표값을 측량했다. 이 자료를 활용하여 유엔군사령부와 한국군이 공동으로 사용하기 위한 군사분계선의 위치를 규정하고, 적절한 시기에 북측과 논의하여 군사분계선의 명확한 위치를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은 정전 상태에서 군사분계선의 모호함으로 발생 가능한 우발적 군사 충돌을 예방할 수 있다. 이는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군사분계선이 국경선으로 대체된 후에도 경계의 모호함으로 인해 발생 가능한 분쟁의 씨앗을 사전에 제거하는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