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한 일곱가지 담론
이동준 ㈜두산 전략팀장
미국인들은 기분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끝내준다(awesome)' 라고 하면 아주 좋은 거고(very good), ‘아주 좋다’ 라고 하면 괜찮은 정도이고(quite OK), ‘괜찮다’ 는 사실 별로인 경우(not good) 가 많습니다.
미국은 OECD 국가 중 항우울제 복용비율 매년 1, 2 위를 기록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행복에 다가서기 어려워서 그런 건지, 미국인들은 행복추구에 적극적입니다. 긍정심리학을 만들어서 행복을 학문적으로 계량화 하려는 시도를 하며, 행복관련 코칭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이고, OECD 국가 중 아마 유일하게 건국이념에 행복이 언급된 나라일 겁니다.
이 글에서는 주로 미국 심리학자, 철학자들이 행복에 대해 했던 이야기들과 제 나름의 생각을 일곱가지 꼭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행복은 자기만족의, 고요한 희열의 지속상태 (세네카)
행복감의 시작은 역시 '자기만족' 입니다. 요즘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류의 논의는 2천년전 로마 철학자의 주장과 결이 같은 셈이지요.
가슴이 터질 듯한 희열이 아니라, '고요한 희열'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지점은 '지속상태'로 보입니다. 아주 가끔 느끼는 끝내주는 기쁨보다, 잔잔한 평정심이 지속되는게 전체적인 행복 수준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지요.
(2) 항상 그런 것이 아닌, ‘대체로’ 긍정적인 감정상태를 가지는 것
You cannot selectively numb bad feelings without numbing good ones
물론 지속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근데 그게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미국 유명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의 연구에 의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싹 배제하고, 긍정적인 느낌만 가지고 사는게 이상적이긴 하겠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합니다. 부정적 감정만 없애려고 노력하다 보면 긍정적 감정도 같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무감동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결국 행복은 지속적으로, 또는 일상 속 대부분의 순간에 좋은 기분을 느끼는게 아니라, '대체로' 그런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다행입니다. 세네카의 생각만큼 행복의 기준이 높지는 않은 셈이니까요.
(3) 반복되는 일상을 새롭게 느끼는 연습
Do not go through the motions
그런데 우리 삶의 대부분은 그냥 그런 일상들로 채워지게 마련입니다. 좋은 일과 별로 내키지 않는 일도 번갈아 생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로 좋은 기분'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일상을 새롭게 느끼고, 삶에 작은 변화들을 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매일매일 하고 있는 아침샤워, 스트레칭을 무심히, 기계적으로 하지 말고, 따뜻한 물줄기가 주는 포근함, 밤새 굳었던 어깨 관절이 펴지는 시원함을 의도적으로 느끼는 연습을 하는거죠. 늘상 정해진 퇴근길을 조금 비틀어서, 가보지 않은 동네를 걸어보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오감(五感)이 더 열릴 기회를 주는 겁니다.
(4) 행복은 즐거운 마음으로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과 같다
Balance between meaning and pleasure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잘 실행해서 대체로 평온하고 긍정적인 마음상태를 갖게 되면 행복은 어느 정도 완성일까요? 뭔가 허전한 느낌입니다. 그렇습니다. '의미' 가 빠져 있습니다.
현대 미국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재미있는 가정을 해봤습니다. '내 마음대로 고른 경험을 통해 즐거운 기분과 쾌락을 제공하는 기계장치가 있고, 아무런 부작용도 없다면, 평생 그 기계에 연결해서 살겠는가?' 당신의 답이 '아니오' 라면, 즐거운 기분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고 보는 셈입니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탈 벤 샤하르(Tal Ben Shahar)는 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등산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산 정상이라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목표가 뚜렷하되, 그 과정 또한 즐기는 거죠. 목표만 추구하다 보면 후회하기 쉽고, 즐거움만 찾다 보면 허무해지기 쉽습니다.
수험생이 일정기간 시험준비에 몰두하듯이, 특정시점에 목적이나 즐거움 어느 한 쪽에 집중하는 건 필요하지만, 넓게 보면 '의미'와 '즐거움' 간 균형이 중요합니다.
(5) 내가 우선 행복해야 내 주위로 관심영역이 확장될 수 있음 / 내 편이 잘 되기를 바라되, 그리 되지 않았다고 너무 낙담하지 말기
대체로 긍정적인 마음상태와 삶의 의미를 가졌으면 완결일까요? 큰 줄기가 하나 빠져 있습니다.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는 좋은 인간관계입니다. 1930 년대에 시작되어 역사상 가장 긴 행복연구로 알려진 하버드 대학 그랜트 연구(Harvard Grant study) 결과는 'having good relationships' 한 줄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한 두 가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좋은 인간관계의 중요한 요소인 관심과 배려는, 우선 내가 안정감과 긍정적 심리상태에 있을 때 원활히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고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관심영역이 주위로 자연스럽게 확장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내 편이, 주위 사람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지원하되 그리 되지 않았다고 너무 낙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이같은 우(愚)를 범하곤 합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선거에 졌다고 내 삶이 무너지는 일은 잘 생기지 않습니다.
(6) 행복감은 타고나는 면이 크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지 또한 크다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종종 떠올렸던 의문이 있습니다.
'대체로 어두운 표정의 서양 학자들이 정의한 내용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쇼펜하우어의 초상을 검색해 보면 이게 무슨 얘기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먼도 대체로 심각한 표정을 가진 인물이구요) 실제 밝고 즐겁게 사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이 더 맞는거 아니야?'
이 추측은 대체로 맞았습니다. 긍정심리학 분야 유명학자인 소냐 류보미르스키(Sonja Lyubomirsky)의 스터디 및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행복감의 50% 는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합니다. 나머지 50% 는 가정환경, 외모 같은 환경요인과 개인노력, 습관 등의 후천적 요인으로 채워지는데, 두 요인간 비율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중간값을 취해서 각각 25% 라고 한다면, 타고난 선천적 요인 50% 와 가족과 같은 환경 요인 25% 를 합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75% 가 됩니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비중 또한 여전히 높지요. 이 후천적 요인 25% 를 극대화하여 'Happiest version of myself' 를 구현하는게 핵심입니다.
(7) 육체와 마음을 따로 나누어 살펴보기는 어렵다 (몽테뉴)
'다 알겠는데, 확실하고 효과 빠른 행복 증진법은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쁘니까요.
이 질문에 한 저명한 심리학자는 '운동, 산책처럼 몸을 쓰는 것이다' 라고 간략히 답했습니다. 가장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해법입니다. 몸과 마음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어
'행복한 사람은 정작 행복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행복수준이 어느 정도이든 상관없이, 거기서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 시도해 보는 건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행복에 대한 일곱가지 담론
이동준 ㈜두산 전략팀장
미국인들은 기분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끝내준다(awesome)' 라고 하면 아주 좋은 거고(very good), ‘아주 좋다’ 라고 하면 괜찮은 정도이고(quite OK), ‘괜찮다’ 는 사실 별로인 경우(not good) 가 많습니다.
미국은 OECD 국가 중 항우울제 복용비율 매년 1, 2 위를 기록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행복에 다가서기 어려워서 그런 건지, 미국인들은 행복추구에 적극적입니다. 긍정심리학을 만들어서 행복을 학문적으로 계량화 하려는 시도를 하며, 행복관련 코칭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이고, OECD 국가 중 아마 유일하게 건국이념에 행복이 언급된 나라일 겁니다.
이 글에서는 주로 미국 심리학자, 철학자들이 행복에 대해 했던 이야기들과 제 나름의 생각을 일곱가지 꼭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행복은 자기만족의, 고요한 희열의 지속상태 (세네카)
행복감의 시작은 역시 '자기만족' 입니다. 요즘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류의 논의는 2천년전 로마 철학자의 주장과 결이 같은 셈이지요.
가슴이 터질 듯한 희열이 아니라, '고요한 희열'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지점은 '지속상태'로 보입니다. 아주 가끔 느끼는 끝내주는 기쁨보다, 잔잔한 평정심이 지속되는게 전체적인 행복 수준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지요.
(2) 항상 그런 것이 아닌, ‘대체로’ 긍정적인 감정상태를 가지는 것
You cannot selectively numb bad feelings without numbing good ones
물론 지속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근데 그게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미국 유명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의 연구에 의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싹 배제하고, 긍정적인 느낌만 가지고 사는게 이상적이긴 하겠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합니다. 부정적 감정만 없애려고 노력하다 보면 긍정적 감정도 같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무감동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결국 행복은 지속적으로, 또는 일상 속 대부분의 순간에 좋은 기분을 느끼는게 아니라, '대체로' 그런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다행입니다. 세네카의 생각만큼 행복의 기준이 높지는 않은 셈이니까요.
(3) 반복되는 일상을 새롭게 느끼는 연습
Do not go through the motions
그런데 우리 삶의 대부분은 그냥 그런 일상들로 채워지게 마련입니다. 좋은 일과 별로 내키지 않는 일도 번갈아 생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로 좋은 기분'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일상을 새롭게 느끼고, 삶에 작은 변화들을 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매일매일 하고 있는 아침샤워, 스트레칭을 무심히, 기계적으로 하지 말고, 따뜻한 물줄기가 주는 포근함, 밤새 굳었던 어깨 관절이 펴지는 시원함을 의도적으로 느끼는 연습을 하는거죠. 늘상 정해진 퇴근길을 조금 비틀어서, 가보지 않은 동네를 걸어보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오감(五感)이 더 열릴 기회를 주는 겁니다.
(4) 행복은 즐거운 마음으로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과 같다
Balance between meaning and pleasure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잘 실행해서 대체로 평온하고 긍정적인 마음상태를 갖게 되면 행복은 어느 정도 완성일까요? 뭔가 허전한 느낌입니다. 그렇습니다. '의미' 가 빠져 있습니다.
현대 미국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재미있는 가정을 해봤습니다. '내 마음대로 고른 경험을 통해 즐거운 기분과 쾌락을 제공하는 기계장치가 있고, 아무런 부작용도 없다면, 평생 그 기계에 연결해서 살겠는가?' 당신의 답이 '아니오' 라면, 즐거운 기분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고 보는 셈입니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탈 벤 샤하르(Tal Ben Shahar)는 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등산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산 정상이라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목표가 뚜렷하되, 그 과정 또한 즐기는 거죠. 목표만 추구하다 보면 후회하기 쉽고, 즐거움만 찾다 보면 허무해지기 쉽습니다.
수험생이 일정기간 시험준비에 몰두하듯이, 특정시점에 목적이나 즐거움 어느 한 쪽에 집중하는 건 필요하지만, 넓게 보면 '의미'와 '즐거움' 간 균형이 중요합니다.
(5) 내가 우선 행복해야 내 주위로 관심영역이 확장될 수 있음 / 내 편이 잘 되기를 바라되, 그리 되지 않았다고 너무 낙담하지 말기
대체로 긍정적인 마음상태와 삶의 의미를 가졌으면 완결일까요? 큰 줄기가 하나 빠져 있습니다.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는 좋은 인간관계입니다. 1930 년대에 시작되어 역사상 가장 긴 행복연구로 알려진 하버드 대학 그랜트 연구(Harvard Grant study) 결과는 'having good relationships' 한 줄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한 두 가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좋은 인간관계의 중요한 요소인 관심과 배려는, 우선 내가 안정감과 긍정적 심리상태에 있을 때 원활히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고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관심영역이 주위로 자연스럽게 확장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내 편이, 주위 사람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지원하되 그리 되지 않았다고 너무 낙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이같은 우(愚)를 범하곤 합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선거에 졌다고 내 삶이 무너지는 일은 잘 생기지 않습니다.
(6) 행복감은 타고나는 면이 크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지 또한 크다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종종 떠올렸던 의문이 있습니다.
'대체로 어두운 표정의 서양 학자들이 정의한 내용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쇼펜하우어의 초상을 검색해 보면 이게 무슨 얘기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먼도 대체로 심각한 표정을 가진 인물이구요) 실제 밝고 즐겁게 사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이 더 맞는거 아니야?'
이 추측은 대체로 맞았습니다. 긍정심리학 분야 유명학자인 소냐 류보미르스키(Sonja Lyubomirsky)의 스터디 및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행복감의 50% 는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합니다. 나머지 50% 는 가정환경, 외모 같은 환경요인과 개인노력, 습관 등의 후천적 요인으로 채워지는데, 두 요인간 비율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중간값을 취해서 각각 25% 라고 한다면, 타고난 선천적 요인 50% 와 가족과 같은 환경 요인 25% 를 합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75% 가 됩니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비중 또한 여전히 높지요. 이 후천적 요인 25% 를 극대화하여 'Happiest version of myself' 를 구현하는게 핵심입니다.
(7) 육체와 마음을 따로 나누어 살펴보기는 어렵다 (몽테뉴)
'다 알겠는데, 확실하고 효과 빠른 행복 증진법은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쁘니까요.
이 질문에 한 저명한 심리학자는 '운동, 산책처럼 몸을 쓰는 것이다' 라고 간략히 답했습니다. 가장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해법입니다. 몸과 마음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어
'행복한 사람은 정작 행복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행복수준이 어느 정도이든 상관없이, 거기서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 시도해 보는 건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