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위에 미치는 유엔사령부(UNC)의 전략적 가치

장광현 전 유엔사 군정위 수석대표 / 현 아시아태평양전략센터 이사
Ⅰ. 유엔사(UNC)에 대한 이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창설된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설립된 국제연맹(LN: League of Nations)의 실패를 교훈삼아 한층 발전된 개념의 집단안보체제를 지향하였다. 유엔이 추구하는 ‘집단안보’ 개념에 입각하여, ‘국제연합군 총사령부 설치’에 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제84호(S/1588, 1950. 7. 7)와 유엔사 일반명령 제1호(1950. 7. 24)에 근거하여 창설된 세계 최초의 국제연합군이 바로 유엔사(UNC: United Nations Command)이다. 대한민국은 유엔 창설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집단안보’ 개념 하에 수혜를 받은 첫 번째 나라이자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UN)과의 발 빠른 공조를 통해 단기간 내 유엔사를 창설하고 국제사회로부터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냄으로써 ‘애치슨 라인(Acheson Line) 밖에 있던 한국을 지켜내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3년 동안 연인원 178만 9,000여 명의 전투병력을 한국에 파견하였는데, 이는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16개 우방국이 국제연합군의 일환으로 3년 동안 파견했던 연인원 194만 849명의 92퍼센트에 달하는 규모였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은 전사 36,940명, 부상 9만 2,134명, 실종 3,737명을 포함하여 모두 13만 7,250여 명이 피해를 입었으며1), 이 역시 참전 유엔군 전체가 겪은 피해의 92퍼센트를 웃도는 수치였다. 미국이 남베트남에 파병을 한 1965년부터 10년간 치른 전쟁에서 47,367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음을 고려할 때, 3년간 한국전쟁에서 입은 미군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매우 큰 희생이었다.2)
유엔사의 역할과 기능은 유엔안보리 및 유엔총회의 결의, 그리고 정전협정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유엔사가 수행하던 임무는 북한 무력공격 격퇴 및 한국 방어, 한반도 통일 지원, 정전협정 이행 및 준수, 그리고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 시 전력 제공 등 그 범위가 매우 광범하였다. 그러나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CFC, 이하 연합사)가 창설되면서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과 ‘한반도 전쟁 억제 및 방어’ 임무 일체를 연합사에 이양한 이후, 현재는 평시 ‘정전협정 관리자’이자 유사시 ‘전력제공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주한미군을 제외한 모든 회원국 전력이 1972년 6월 태국군을 마지막으로 한반도에서 철수한 상태이지만, 유엔사는 ‘워싱턴 선언’에 근거하여 회원국 대표들로 구성된 감편된 규모를 유지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지속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사의 전시 임무는 ‘대한민국 방위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유엔사는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 회원국’으로부터 필요한 전력을 창출하여 연합사(미래연합사)에 제공하게 된다. 여기서 ‘유엔사 회원국(sending states)’이란 한국전쟁 당시 주로 전투병력을 파견했던 나라와 일부 의료지원을 하였던 나라들로서 모두 17개 국가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한국은 공식적으로 유엔사 회원국이 아니다. 한국은 유사시 유엔사가 제공하는 전력을 사용하는 국가이므로, 전력을 제공하는 국가와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 일본 본토 및 오키나와에 산재한 일곱 곳의 유엔사 후방기지는 유사시 회원국들이 제공하는 다국적군 전력들을 일시 수용하고 한반도 전개 이전 최종 점검을 하는 곳이자, 한반도 전개 이후에도 이들에 대한 전투근무지원을 통해 작전지속능력을 보장하는 핵심시설로서 미국 입장에서는 89개소에 달하는 여타 주일 미군기지와 함께 동북아지역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이후 참전국의 전투병력이 철수함에 따라 유엔사의 조직과 기능이 대폭 축소되면서 한때 북한 및 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을 주축으로 유엔사의 국제법적 지위에 대한 논란과 함께 ‘존속’과 ‘해체’에 대한 찬반양론이 이슈화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참전국들과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유엔사를 ‘유엔 회원국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부대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목적으로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하여 창설이 허용된 통합사령부’로서, 합법적인 지위를 갖춘 국제기구로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과 중국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이 주장하는 유엔사의 법적 지위에 대한 시비에도 불구하고 정전협정 체결 이래 지금까지 중국과 북한이 묵시적으로 유엔사의 역할을 인정하여 왔다는 점, 그리고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북한이 유엔사를 남북 간 군사 관련 유일한 대화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유엔사의 국제법적 정당성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Ⅱ. 유엔사령부가 가지는 전략적 가치
유엔사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 바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유엔사는 한국전쟁 당시 누란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도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데 기여하였으며, 1978년 연합사가 창설되기 이전까지 약 25년 동안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 방지 및 한국 방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이후에도 17개의 유엔사 회원국들은 68년 전에 결의한 ‘워싱턴 선언’을 현재까지도 이어오면서 한국방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둘째, 유엔사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크게 견인하였다. 한국은 한미동맹의 일환인 주한미군과 유엔사의 존재에 힘입어 국가위험도를 크게 낮출 수 있었으며, 전쟁이 억지된 가운데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3) 1950년대 말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불과 70년 만에 세계 제11위의 경제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유엔사의 기여도를 간과할 수 없다. 셋째, 유엔사는 평시 ‘정전협정 관리자’로서 불안정한 한반도 상황을 매우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평시 MDL 및 NLL 일대 접적 지·해역에서 남북 간 정전협정 준수 여부를 감시함은 물론, 도발이나 무력충돌 등 크고 작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적극적인 현장조사, 그리고 북측과의 대화채널 유지 및 중재 등을 통해 군사적 긴장 완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만약 항간의 주장대로 유엔사가 해체된다면 한국방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무엇보다도 평시 정전협정 관리 및 유지를 위한 북한과의 대화 통로가 상실됨으로써 크고 작은 정전협정 위반사항이나 도발이 발생할 경우 현장 조사나 쌍방 간 중재 및 협의 등 상황관리가 제한된다. 만약 천안함 공격이나 연평도 포격도발과 같은 고강도 도발이 발생한다면, 유엔사의 부재(不在)는 추가 도발이나 확전 등으로 자칫 한반도를 더 큰 위기상황으로 몰고 갈 위험성이 있다. 향후 핵을 보유한 북한군이 의도적으로 고강도 도발을 자행할 경우 한국군의 대응카드는 극히 제한될 것이다. 더욱이 유엔사가 해체된 상태에서 전쟁이 발발한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처럼 한반도에 유엔사가 존재하는 이상 유사시 유엔안보리 결의 채택 등 여타 별도의 절차 없이도 신속히 회원국 중심의 다국적군 전력을 구성하여 한반도에 투사하는데 별다른 제한은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유엔사가 없다면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로부터 필요한 전력 창출은 물론, 이들이 제공하는 지원전력을 신속히 한반도에 전개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유엔사가 해체된 상태라면 국제적 여건도 달라진다. 국제사회에서 특정 분쟁지역에 다국적군 전력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유엔안보리 결의 채택이 필수인데,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이상 불가능할 것이며, 게다가 각국 역시 제각기 자국 의회 동의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물리적으로도 신속한 전력제공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및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면서, 대내적으로는 ‘기습전’과 ‘속전속결전’, 그리고 전후방 동시전투를 강요하는 ‘배합전’을 그들의 군사기본전략으로 강조하고 있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미군 및 유엔사 회원국의 지원전력이 한반도에 도착하기 이전 조기에 한반도를 석권하고자 하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유엔사가 해체되면 90일 내에 주일 유엔사 후방기지 역시 철수하게 되어 있어 다국적군 전력의 한반도 전개를 위한 일시 수용 및 최종 점검 등에도 큰 차질이 발생하게 된다. 유엔사 후방기지가 폐쇄될 경우 전시 한반도에 둘 수 없는 전략자산의 전진 배치라든가, 한반도에 출동한 부대 및 자산에 대한 작전지속능력 보장에도 심대한 차질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Ⅲ.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그리고 유엔사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2021. 9. 22)을 통해 ‘남북미 3자 또는 중국을 포함한 4자가 한반도 종전선언을 할 것’을 재차 국제사회에 제기함에 따라, 향후 진전 정도에 따라 필연적으로 유엔사는 중대한 기로(岐路)에 서게 될 조짐이다. 한미 간 전작권 전환이 임박해진 가운데 북한 비핵화 협상이 별다른 성과 없이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때 이른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논의가 재점화될 경우 한동안 잠복되어 있던 유엔사 해체 논란이 다시금 수면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남과 북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논의한 후 이를 ‘판문점 선언’에 포함하였다. ‘판문점 선언’ 제3항에는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남과 북이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며, 한반도에서 현재의 비정상적인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임을 전제하고, 하위의 ③에서는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2018년)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을 명시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현하기 위한 우선적 실천 과업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임을 분명히 하였었다.
남과 북이 현 상태에서 종전선언을 하게 된다면 북한이 가장 먼저 취하게 될 우선적 행동은 아마도 ‘유엔사 해체’ 요구일 것이며, 다음 수순은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것이다.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유엔사가 고유 임무인 ‘정전협정 관리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므로 마땅히 해체되어야 한다는 것이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오래된 주장이었다. 필자가 보기에 북한이 유엔사 해체를 요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가 수행하게 될 ‘전력제공자(Force Provider)’ 기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유엔사 해체를 관철시킴으로써 유사시 미군을 포함한 우방국들이 지원하는 전력의 한반도 전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한다. 만약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가 현실화된다면, 그동안 북한이 꿈꿔왔던 소위 ‘3대 혁명역량’4)을 완성시켜 줌으로써 무력에 의한 대남 적화통일을 실행할 수 있는 더할 나위없는 호기(好機)를 만들어 줄 뿐이다.
또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다. 설사 남북이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때까지는 현재의 정전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준 행태를 볼 때 이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전협정은 어느 일방이 마음대로 수정하거나 파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전협정 제61항에는 ‘정전협정 수정은 반드시 쌍방이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이, 제62항에는 ‘정전협정은 쌍방의 정치적 수준에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적당한 협정으로 명확히 교체될 때까지 계속 효력을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지난 68년 동안 국제적 협정으로서의 효력을 가진 정전협정을 임의로 훼손하고, 정전협정 관리의 주체인 유엔사를 부정하는 등 상황에 따라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과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북한은 1991년 한국군 장성을 유엔사 군정위 수석대표에 임명한 것을 트집하여 조·중 측 군정위를 해체하고 북측 중감위 국가인 체코와 폴란드 대표단마저 강제 축출하였다. 또한 2013년 3월에는 연이은 핵실험 강행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고강도 제재를 받게 되자, 이에 항의하여 일방적으로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태도는 남과 북이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1992. 9)에 담긴 ‘정전협정 준수’ 의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도발적 행위이다.5)
따라서 전작권 전환을 앞두고 있는 현시점에서 종전선언과 연계하여 유엔사 거취를 논하는 자체에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실 정전협정문 그 어디에도 ‘종전선언이나 정전체제 종료와 동시에 유엔사를 해체 한다’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정전협정 서언에는 “쌍방에 막대한 유혈을 초래한 한국 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서와,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정전협정은 유효한 것”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말미에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유추해 보면, ‘군사적으로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한 평화적 해결’이 없는 상태에서는 유엔사 해체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일방적인 군사 도발과 위협이 제거되어져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은 당연히 ‘북한 비핵화’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된다면 한국은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잃게 될 것이 자명하며,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북한의 기만전략일 경우 한국 방위의 취약성은 더욱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1) Anne Leland, “American War and Military Operations Casualties : Lists and Staistic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Feb. 26, 2010, p.3.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한미동맹 60년사』, p.49에서 재인용.
2)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위 제목, p.49.
3)정천구, “한국의 안보 딜레마와 한미동맹의 가치,”『통일전략』, 2012. 7, pp. 28-29.
4)북한의 대남전략 기조(基調)는 1964년 2월27일 당중앙위원회 제4기 8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주장한 전(全)조선 혁명 달성을 위한 ‘3대 혁명역량 강화’ 노선에 제시되어 있다. ‘3대 혁명역량 강화’는 ‘북한내부 혁명역량’(정치, 경제, 군사), ‘남한혁명역량’(남한 내 지하당 구축, 통일전선형성, 保守세력 와해), ‘국제혁명역량’(反美, 反韓, 통일전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5)남북기본합의서 제1장 5조에는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에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강녕,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과제와 전망,” 『한미동맹 50년 정전협력 50년 기획논문Ⅱ』, p. 136. 재인용
한국방위에 미치는 유엔사령부(UNC)의 전략적 가치
장광현 전 유엔사 군정위 수석대표 / 현 아시아태평양전략센터 이사
Ⅰ. 유엔사(UNC)에 대한 이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창설된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설립된 국제연맹(LN: League of Nations)의 실패를 교훈삼아 한층 발전된 개념의 집단안보체제를 지향하였다. 유엔이 추구하는 ‘집단안보’ 개념에 입각하여, ‘국제연합군 총사령부 설치’에 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제84호(S/1588, 1950. 7. 7)와 유엔사 일반명령 제1호(1950. 7. 24)에 근거하여 창설된 세계 최초의 국제연합군이 바로 유엔사(UNC: United Nations Command)이다. 대한민국은 유엔 창설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집단안보’ 개념 하에 수혜를 받은 첫 번째 나라이자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UN)과의 발 빠른 공조를 통해 단기간 내 유엔사를 창설하고 국제사회로부터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냄으로써 ‘애치슨 라인(Acheson Line) 밖에 있던 한국을 지켜내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3년 동안 연인원 178만 9,000여 명의 전투병력을 한국에 파견하였는데, 이는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16개 우방국이 국제연합군의 일환으로 3년 동안 파견했던 연인원 194만 849명의 92퍼센트에 달하는 규모였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은 전사 36,940명, 부상 9만 2,134명, 실종 3,737명을 포함하여 모두 13만 7,250여 명이 피해를 입었으며1), 이 역시 참전 유엔군 전체가 겪은 피해의 92퍼센트를 웃도는 수치였다. 미국이 남베트남에 파병을 한 1965년부터 10년간 치른 전쟁에서 47,367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음을 고려할 때, 3년간 한국전쟁에서 입은 미군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매우 큰 희생이었다.2)
유엔사의 역할과 기능은 유엔안보리 및 유엔총회의 결의, 그리고 정전협정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유엔사가 수행하던 임무는 북한 무력공격 격퇴 및 한국 방어, 한반도 통일 지원, 정전협정 이행 및 준수, 그리고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 시 전력 제공 등 그 범위가 매우 광범하였다. 그러나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CFC, 이하 연합사)가 창설되면서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과 ‘한반도 전쟁 억제 및 방어’ 임무 일체를 연합사에 이양한 이후, 현재는 평시 ‘정전협정 관리자’이자 유사시 ‘전력제공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주한미군을 제외한 모든 회원국 전력이 1972년 6월 태국군을 마지막으로 한반도에서 철수한 상태이지만, 유엔사는 ‘워싱턴 선언’에 근거하여 회원국 대표들로 구성된 감편된 규모를 유지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지속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사의 전시 임무는 ‘대한민국 방위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유엔사는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 회원국’으로부터 필요한 전력을 창출하여 연합사(미래연합사)에 제공하게 된다. 여기서 ‘유엔사 회원국(sending states)’이란 한국전쟁 당시 주로 전투병력을 파견했던 나라와 일부 의료지원을 하였던 나라들로서 모두 17개 국가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한국은 공식적으로 유엔사 회원국이 아니다. 한국은 유사시 유엔사가 제공하는 전력을 사용하는 국가이므로, 전력을 제공하는 국가와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 일본 본토 및 오키나와에 산재한 일곱 곳의 유엔사 후방기지는 유사시 회원국들이 제공하는 다국적군 전력들을 일시 수용하고 한반도 전개 이전 최종 점검을 하는 곳이자, 한반도 전개 이후에도 이들에 대한 전투근무지원을 통해 작전지속능력을 보장하는 핵심시설로서 미국 입장에서는 89개소에 달하는 여타 주일 미군기지와 함께 동북아지역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이후 참전국의 전투병력이 철수함에 따라 유엔사의 조직과 기능이 대폭 축소되면서 한때 북한 및 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을 주축으로 유엔사의 국제법적 지위에 대한 논란과 함께 ‘존속’과 ‘해체’에 대한 찬반양론이 이슈화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참전국들과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유엔사를 ‘유엔 회원국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부대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목적으로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하여 창설이 허용된 통합사령부’로서, 합법적인 지위를 갖춘 국제기구로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과 중국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이 주장하는 유엔사의 법적 지위에 대한 시비에도 불구하고 정전협정 체결 이래 지금까지 중국과 북한이 묵시적으로 유엔사의 역할을 인정하여 왔다는 점, 그리고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북한이 유엔사를 남북 간 군사 관련 유일한 대화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유엔사의 국제법적 정당성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Ⅱ. 유엔사령부가 가지는 전략적 가치
유엔사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 바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유엔사는 한국전쟁 당시 누란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도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데 기여하였으며, 1978년 연합사가 창설되기 이전까지 약 25년 동안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 방지 및 한국 방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이후에도 17개의 유엔사 회원국들은 68년 전에 결의한 ‘워싱턴 선언’을 현재까지도 이어오면서 한국방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둘째, 유엔사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크게 견인하였다. 한국은 한미동맹의 일환인 주한미군과 유엔사의 존재에 힘입어 국가위험도를 크게 낮출 수 있었으며, 전쟁이 억지된 가운데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3) 1950년대 말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불과 70년 만에 세계 제11위의 경제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유엔사의 기여도를 간과할 수 없다. 셋째, 유엔사는 평시 ‘정전협정 관리자’로서 불안정한 한반도 상황을 매우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평시 MDL 및 NLL 일대 접적 지·해역에서 남북 간 정전협정 준수 여부를 감시함은 물론, 도발이나 무력충돌 등 크고 작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적극적인 현장조사, 그리고 북측과의 대화채널 유지 및 중재 등을 통해 군사적 긴장 완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만약 항간의 주장대로 유엔사가 해체된다면 한국방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무엇보다도 평시 정전협정 관리 및 유지를 위한 북한과의 대화 통로가 상실됨으로써 크고 작은 정전협정 위반사항이나 도발이 발생할 경우 현장 조사나 쌍방 간 중재 및 협의 등 상황관리가 제한된다. 만약 천안함 공격이나 연평도 포격도발과 같은 고강도 도발이 발생한다면, 유엔사의 부재(不在)는 추가 도발이나 확전 등으로 자칫 한반도를 더 큰 위기상황으로 몰고 갈 위험성이 있다. 향후 핵을 보유한 북한군이 의도적으로 고강도 도발을 자행할 경우 한국군의 대응카드는 극히 제한될 것이다. 더욱이 유엔사가 해체된 상태에서 전쟁이 발발한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처럼 한반도에 유엔사가 존재하는 이상 유사시 유엔안보리 결의 채택 등 여타 별도의 절차 없이도 신속히 회원국 중심의 다국적군 전력을 구성하여 한반도에 투사하는데 별다른 제한은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유엔사가 없다면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로부터 필요한 전력 창출은 물론, 이들이 제공하는 지원전력을 신속히 한반도에 전개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유엔사가 해체된 상태라면 국제적 여건도 달라진다. 국제사회에서 특정 분쟁지역에 다국적군 전력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유엔안보리 결의 채택이 필수인데,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이상 불가능할 것이며, 게다가 각국 역시 제각기 자국 의회 동의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물리적으로도 신속한 전력제공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및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면서, 대내적으로는 ‘기습전’과 ‘속전속결전’, 그리고 전후방 동시전투를 강요하는 ‘배합전’을 그들의 군사기본전략으로 강조하고 있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미군 및 유엔사 회원국의 지원전력이 한반도에 도착하기 이전 조기에 한반도를 석권하고자 하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유엔사가 해체되면 90일 내에 주일 유엔사 후방기지 역시 철수하게 되어 있어 다국적군 전력의 한반도 전개를 위한 일시 수용 및 최종 점검 등에도 큰 차질이 발생하게 된다. 유엔사 후방기지가 폐쇄될 경우 전시 한반도에 둘 수 없는 전략자산의 전진 배치라든가, 한반도에 출동한 부대 및 자산에 대한 작전지속능력 보장에도 심대한 차질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Ⅲ.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그리고 유엔사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2021. 9. 22)을 통해 ‘남북미 3자 또는 중국을 포함한 4자가 한반도 종전선언을 할 것’을 재차 국제사회에 제기함에 따라, 향후 진전 정도에 따라 필연적으로 유엔사는 중대한 기로(岐路)에 서게 될 조짐이다. 한미 간 전작권 전환이 임박해진 가운데 북한 비핵화 협상이 별다른 성과 없이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때 이른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논의가 재점화될 경우 한동안 잠복되어 있던 유엔사 해체 논란이 다시금 수면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남과 북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논의한 후 이를 ‘판문점 선언’에 포함하였다. ‘판문점 선언’ 제3항에는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남과 북이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며, 한반도에서 현재의 비정상적인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임을 전제하고, 하위의 ③에서는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2018년)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을 명시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현하기 위한 우선적 실천 과업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임을 분명히 하였었다.
남과 북이 현 상태에서 종전선언을 하게 된다면 북한이 가장 먼저 취하게 될 우선적 행동은 아마도 ‘유엔사 해체’ 요구일 것이며, 다음 수순은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것이다.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유엔사가 고유 임무인 ‘정전협정 관리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므로 마땅히 해체되어야 한다는 것이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오래된 주장이었다. 필자가 보기에 북한이 유엔사 해체를 요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가 수행하게 될 ‘전력제공자(Force Provider)’ 기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유엔사 해체를 관철시킴으로써 유사시 미군을 포함한 우방국들이 지원하는 전력의 한반도 전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한다. 만약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가 현실화된다면, 그동안 북한이 꿈꿔왔던 소위 ‘3대 혁명역량’4)을 완성시켜 줌으로써 무력에 의한 대남 적화통일을 실행할 수 있는 더할 나위없는 호기(好機)를 만들어 줄 뿐이다.
또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다. 설사 남북이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때까지는 현재의 정전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준 행태를 볼 때 이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전협정은 어느 일방이 마음대로 수정하거나 파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전협정 제61항에는 ‘정전협정 수정은 반드시 쌍방이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이, 제62항에는 ‘정전협정은 쌍방의 정치적 수준에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적당한 협정으로 명확히 교체될 때까지 계속 효력을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지난 68년 동안 국제적 협정으로서의 효력을 가진 정전협정을 임의로 훼손하고, 정전협정 관리의 주체인 유엔사를 부정하는 등 상황에 따라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과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북한은 1991년 한국군 장성을 유엔사 군정위 수석대표에 임명한 것을 트집하여 조·중 측 군정위를 해체하고 북측 중감위 국가인 체코와 폴란드 대표단마저 강제 축출하였다. 또한 2013년 3월에는 연이은 핵실험 강행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고강도 제재를 받게 되자, 이에 항의하여 일방적으로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태도는 남과 북이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1992. 9)에 담긴 ‘정전협정 준수’ 의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도발적 행위이다.5)
따라서 전작권 전환을 앞두고 있는 현시점에서 종전선언과 연계하여 유엔사 거취를 논하는 자체에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실 정전협정문 그 어디에도 ‘종전선언이나 정전체제 종료와 동시에 유엔사를 해체 한다’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정전협정 서언에는 “쌍방에 막대한 유혈을 초래한 한국 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서와,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정전협정은 유효한 것”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말미에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유추해 보면, ‘군사적으로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한 평화적 해결’이 없는 상태에서는 유엔사 해체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일방적인 군사 도발과 위협이 제거되어져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은 당연히 ‘북한 비핵화’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된다면 한국은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잃게 될 것이 자명하며,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북한의 기만전략일 경우 한국 방위의 취약성은 더욱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1) Anne Leland, “American War and Military Operations Casualties : Lists and Staistic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Feb. 26, 2010, p.3.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한미동맹 60년사』, p.49에서 재인용.
2)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위 제목, p.49.
3)정천구, “한국의 안보 딜레마와 한미동맹의 가치,”『통일전략』, 2012. 7, pp. 28-29.
4)북한의 대남전략 기조(基調)는 1964년 2월27일 당중앙위원회 제4기 8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주장한 전(全)조선 혁명 달성을 위한 ‘3대 혁명역량 강화’ 노선에 제시되어 있다. ‘3대 혁명역량 강화’는 ‘북한내부 혁명역량’(정치, 경제, 군사), ‘남한혁명역량’(남한 내 지하당 구축, 통일전선형성, 保守세력 와해), ‘국제혁명역량’(反美, 反韓, 통일전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5)남북기본합의서 제1장 5조에는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에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강녕,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과제와 전망,” 『한미동맹 50년 정전협력 50년 기획논문Ⅱ』, p. 136.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