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교훈과 한미동맹 - 김태우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교훈과 한미동맹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이 카불(Kabul)을 점령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1975년 5월 자유 베트남이 패망할 때 사이공에서 벌어진 아비규환 엑소더스 (exodus)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카불 국제공항에서는 미 공군의 C-17 수송기들이 정원의 3~4배에 달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황급히 이륙해야 했고, 비행기의 바퀴에 매달렸다가 추락사하는 사태도 속출했다. 

  아프간은 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남아시아를 잇는 요충지이며 풍부한 원유 매장량을 가진 카스피해 지역으로 진출하는 통로다. 그래서 지난 19세기 이래 영국은 이곳을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요충지로 보고 세 차례나 아프간을 침공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를 당한 직후 테러의 배후인 빈 라덴을 잡기 위해 NATO의 국제안보 지원군과 함께 ‘항구적 자유 작전 (Operation Enduring Freedom)’ 을 펼쳐 탈레반을 몰아내고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하여 정부군을 양성했다. 하지만,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탈레반은 정부군을 단숨에 굴복시키고 카불에 입성했다.


또 한 번의 ‘키신저 방식’의 해결 

  카불 엑소더스는 1975년 사이공 대탈출의 판박이로서 많은 사람에게 ‘키신저식 논리와 방식’을 상기시킨다. 1970년대 초반 닉슨 대통령의 안보 보좌관이던 키신저(Henry Kissinger)는 중국과 화해하여 소련을 견제하는 전략을 위해 ‘핑퐁외교’ 를 펼쳐 중국을 국제질서 안으로 끌어들였다. 1973 년에는 국무장관 자격으로 북베트남과 막후 협상을 벌여 파리평화협상을 성사시켰고,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공산주의 통일 베트남도 미국의 친구가 될 수 있으므 로 남베트남을 포기하는 것이 미국 국익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로 미군 철수를 정당화했다. 이 방식은 아프간에서도 재현되었다.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는 막후에서 탈레반과 합의한 평화 협정에 따라 일방적으로 철군을 결정했다. 하지만,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있어서 ‘키신저 방식’은 악몽 일 수밖에 없다. 종합하건대, 이번 아프간 사태는 한국과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에 세 가지의 교훈을 던져주고 있으며, 특히 한국에 대한 시사점은 막중하다.  


스스로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는 나라는 패망한다. 

  첫째, 이번 사태는 스스로를 지키려는 능력과 의지를 가지지 않은 나라에게는 미래가 없음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파리평화협정 이후 남베트남은 부패와 혼란 그리고 분열의 도가니였다. 반미·반정부 시위와 분신자살이 일상이 되었고, 북베트남의 간첩들은 정부와 군대, 시민단체, 종교단체, 언론 등에서 암약하면서 겉으로는 평화주의자나 민족주의 자로 활동했다. 파슈툰(Pashtun)족, 타지크(Tajik)족, 하자라(Hazara)족, 우즈베크(Uzbek)족 등 다양한 종족과 30여 개의 언어가 공존하는 아프간도 부정 부패와 종족 갈등으로 얼룩져 있었고, 아프간 정부 군은 정부의 부패로 월급과 식량을 제대로 보급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1975년 자유 베트남을 포기했고, 2021년에는 아프간을 버렸다. 카불이 함락 되던 날 토니 블링컨(Tony Blinken) 미 국무장관은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을 막아내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카불 함락이 예상보다 더 빨랐을 뿐이다”라고 실토했 다. 1975년 남베트남군은 북베트남이 재침을 시작 한 지 56일 만에 항복했다. 영혼이 떠나버린 남베트남군에게 미군이 제공한 첨단무기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아프간 정부군도 7만5천여 명의 탈레반에 비해 4배의 양적 우위에 탈레반이 가지지 못한 공군기들까지 보유하고 있었지만, 탈레반의 공세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대통령은 해외로 피신했고 대통령의 친동생은 탈레반에 충성을 맹세했다. 이런 나라, 이런 정부에게 무제한 도움을 제공할 나라는 없다. 


‘키신저 방식’으로는 ‘미국의 시대 (Pax Americana)’를 이어가지 못한다. 

  당연히, ‘키신저 방식’은 일정 수준의 설득력을 발휘했다. 당장 베트남에서 미군 철수를 정당화하고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오늘날 통일베트남은 그가 예견했던 대로 팽창주의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고자 이념과 체제가 다른 미국과 친구가 되었고 한국에게도 소중한 파트너가 되었다. 워싱턴의 ‘키신저의 후예들’도 같은 논리로 아프간 철군을 정당화한다면 거기에도 일정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서 신정(神政)을 고수하는 탈레반이 중국 편에 설 가능성보다는 위구르의 독립을 추구하는 이슬람 무장세력이 탈레반과의 연계 가능성 때문에 중국이 우려해야 하는 측면이 더 강할 수 있다. 즉, “아프간은 미국 세계전략의 중요거점인 NATO, 한국, 일본, 대만 등과는 다르다”고 한 바이든 대통령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럼에도 아프간 사태가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키신저 방식’만으로는 ‘미국의 시대(Pax Americana)’ 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허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키신저의 이니셔티브에 화답하여 협미항소(協美抗蘇)를 택했고, 미국과의 수교 및 세계시장 진출을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정치·군사 강대국이 되어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도전하는 신냉전의 주역으로 부상했고 주변국들에게 수직적 질서를 강요하는 팽창주의적 위협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래서 미어샤 이머(John Mearsheimer) 교수는 자신의 저서 「거 대한 환상(The Great Delusion)」에서 중국을 국제 질서에 편입하여 경제성장을 하게 하면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 자체가 큰 착각이었음을 실토하고 있다. 크게 보면, ‘키신저 방식’이 오늘날 미·중 간 신냉전의 원인 (原因)인 것이다. 

  ‘키신저식 해결’에는 인도주의 측면에서도 큰 문제가 있다. 미국이 개입했다가 적과의 비밀협상을 통해 평화협정을 성사시키고 떠나간 후 ‘죽음의 산야(killing field)’가 펼쳐지고 수많은 사람이 희생 된다는 점이다. 베트남에서는 공산 통일 이후 6백만여명 이상이 투옥, 숙청 또는 처형되었고, 아프간에서도 탈레반이 불러일으킬 피바람이 얼마나 거셀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방식이 반복된다면 미국은 해외개입 시 현지 주민의 협력을 얻을 수 없게 되어 ‘미국의 시대’를 이어가는 데 한계가 발생할 것이다. 




흑심을 가진 상대와의 평화협정은 비극을 초래한다.

  아프간 사태가 남긴 세 번째 교훈은 군사적 상호억제가 안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흑심을 가진 상대와의 평화협정은 결국 다른 일방의 패망과 참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1973년 1월 파리평화협정(Treaties of Paris)으로 베트남 전쟁을 마감하면서 협정의 준수와 전쟁 재발 방지를 위해 많은 조치들을 취했다. 미국, 남·북 베트남,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베트 콩) 등 4대 교전 당사국에 안보리 상임이사국 4개 국과 휴전 감시위원국 4개국을 더하여 모두 12개국 이 서명국으로 참여하도록 했고, 250명의 휴전 감시위원단도 파견했다. 북베트남에 40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고, 남베트남과 별도의 방위조약도 체결했다. 모두가 무용지물이었다. 아프간에서도 그랬다. 2020년 2월 29일 카타르의 도하(Doha)에서 체결한 미-탈레반 평화협정도 무용지물이었다. 파리평화협정 후 2년 만에 자유 베트남은 패망했고 미-탈레반 평화협정 후 1년 반 만에 아프간도 무너졌다. 

  과거 역사도 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 1939년 히틀러와 스탈린이 체결한 독소(獨蘇) 불가침조약은 2년 후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휴지화되었고, 1941년 일본과 소련이 상호 불가침을 약속한 중립화 조약을 체결했음에도 소련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직후 대일 선전포고를 했고 소련군은 즉각 만주를 거쳐 한반도의 38선까지 진격했다. 이런 역사적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지난 5월 20일 브래드 셔먼(Brad Sherman) 등 민주당 의원 4명 이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포함한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한반도 평화법안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r Act)’을 발의한 것에 대한 우려를 감출 수 없다. 불변의 적화통일 목표에다 핵무기까지 보유한 북한과의 섣부른 평화협정이 가져올 수 있는 환상과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고찰한 연후에 발의 한 것인지 묻고 싶다. 


바이든 시대의 한미동맹 

  이런 교훈들이 한국에게 주는 시사점은 실로 막중하다. 한국이 미국 세계전략의 린치핀(linchpin) 이자 70년 전통의 동맹조약을 맺고 있는 신냉전 시대의 전략요충지라는 점에서 ‘서울 엑소더스’ 우려를 일단 기우로 치더라도, 이번 아프간 사태는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일러주고 있다. 

  모든 것을 넘어, 이번 카불 엑소더스는 한국에게는 스스로를 지키는 안보 역량과 의지, 굳건한 동맹의 중요성을 그리고 미국에게는 동맹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때문에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에 의해 훼손된 동맹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 이래 한국은 ‘국방개혁’의 미명 하에 스스로 안보 역량과 군사력을 축소·약화시키는 조치들을 취해왔고, 친북·친중·탈미·반일 노선으로 동맹외교를 고립화시켜왔으며, 한미 연합연습의 중단·축소· 변질을 통해 동맹의 연합대비태세를 약화시켜왔다. 한국 정부의 이러한 기조가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경시 언행들과 맞물리면서 동맹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 저하되었다.  

  요컨대, 한미 양국은 아프간 사태를 동맹을 다시 본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계기로 삼아나가야 한다. 다행히,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은 ‘미국의 국제무대로의 복귀(return of America)’와 ‘동맹 협력’을 공약하면서 대선에서 당선되었고, 당선 직후 미결 사안으로 남아있었던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신속히 타결했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적 우려를 무 릅쓰고 추진했던 전시작전통권의 조기 분리에 대해 서도 ‘여건조성 이전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동맹 결속력을 해칠 수 있는 불씨를 제거했다. 물론, 지금도 양국 간에는 북핵 공조 강화, 한미 연합 훈련의 정상화, 한·미·일 안보공조 강화, 한국의 미 인도·태평양 전략 및 쿼드안보대화(Quad Security Dialogue) 동참, 사드(THAAD) 기지 정상화 및 미사일 방어 협력 강화 등 다양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한국 국민은 바이든 행정부 동안 긴밀한 동맹 협력을 통해 이런 과제들이 타결되기를 희망하며, 당장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면 한국의 차기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서라도 그렇게 해 줄 것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아프간 사태를 맞으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나토와 대만 그리고 한국은 아프간과 다르다. 피침시 즉각 대응하겠다”라고 한 말이 한국 국민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