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회 이용준 회장(한미우호협회 회장, 前 외교부 북핵대사)이 조선일보(8.25일자)에 기고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朝鮮칼럼] ‘군사력 세계 5위’라는 착시에 취하지 마라
입력2026.08.24. 오후 11:56
규모에 불과할 뿐
핵무기 앞에선 무의미
동북아 최약체는 한국
방심과 자만은 치명적
훈련 축소와 전작권 전환
빈총 경계는 기우 아니다

북한이 ‘항일빨치산 결성 90주년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인화성-17형을 공개했다. ‘괴물 ICBM’
으로 불리는 화성-17형은 최대 사거리 1만 5000㎞의 다탄두 미사일로 미국 전역을 동시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은 이날 핵무기 선제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는 올해 연례 군사력 평가에서 한국을 조사 대상 145국 가운데 5위로 평가했다. 2024년 세계의 열강 영국과 프랑스를 추월하고 세계 5위에 오른 이래 3년째 같은 순위다. 한국 앞에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뿐이다. 지난 반세기 이상 우세한 대남 군사력으로 안보를 위협해 온 북한은 이 평가에서 30위 초반으로 밀렸다. 이는 한국의 세계 10위권 경제력, 첨단 방위산업 육성, 지속적인 군사력 증강의 성과가 반영된 결과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북한은 1960~1970년대 시도 때도 없이 무장 특수부대를 남파해 파괴 공작을 일삼았다. 해외에서 한국 대통령 암살 작전을 벌이던 1980년대, 서해 5도 해상에서 수시로 기습 공격을 벌이던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국민은 북한이 언젠가 다시 벌일지 모르는 전쟁의 공포를 곁에 두고 살았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이래 북한의 직접적 군사 도발은 거의 사라졌고 미사일 발사 등 간접 도발로 전환되었다. 그런 태세 전환의 배경에는 한국의 군사력 성장과 북한의 군사력 피폐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런 상황 변화의 결과 오늘날 한국 국민은 과거 어느 때보다 북한의 침공에 대한 두려움을 거의 잊은 채 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세계 5위 군사력’이라는 국제적 평가는 정부와 국민의 안도감을 더 증폭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사력에 대한 이런 격상된 평가를 마냥 기뻐하고 안도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세계 5위 군사력’이라는 칭호가 유발하는 심각한 착시현상과 그에 따른 방심이 초래할 부작용 때문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첫 번째 착시현상은 군사력의 물리적 규모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신력과 판단력, 전략과 지휘 능력이 종종 군사력의 절대량을 압도한다. 알렉산더, 한니발, 카이사르 등 고대의 유명한 전략가들은 몇 배가 넘는 강대한 적군을 상대로 연이어 압승을 거두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현대전에서도 3차례 대(對)이스라엘 전쟁에서 연패한 아랍연합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고전한 러시아와 미국, 대베트남 전쟁에서 참패한 프랑스·미국·중국,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 등 사례를 보면, 전쟁의 승패가 물리적 군사력의 크기나 핵 보유 여부와 직결된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착시현상은, 한국이 세계 5위 군사국일지는 모르나 정작 한반도 안보가 걸린 동북아 지역에서는 여전히 군사적 서열이 최약체에 속한다는 점이다. 한반도는 세계 1~3위 군사력을 가진 미국, 러시아, 중국이 둘러싸고 있다. 일본도 공군력, 해군력, 미사일 방어력에서는 한국과 대등하거나 한 수 위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에서 유독 북한의 군사력만이 한국보다 열세이나, 그건 핵무기를 포함하지 않을 때의 얘기다. 따라서 한국의 세계적 군사력 서열이 세계 5위로 격상되었다 할지라도 동북아의 군사력 판도나 한반도 안보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세 번째 착시현상은, 이 같은 군사력 평가에 핵무기까지 포함할 경우 한국의 군사력 서열은 그야말로 역내 국가 중 최약체를 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핵무기는 무기의 성격상 아무 때나 쉽게 사용 가능한 무기가 아니지만, 재래식 무기와 비교할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무기다. 그런 핵무기를 동북아 6국 중 4국은 이미 보유하고 있고, 일본도 핵무장을 위한 핵심 인프라를 오래전부터 구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 서열 5위는 별다른 의미를 갖기 어렵다.
‘세계 5위 군사력’ 평가에 내포된 이런 착시현상들을 감안할 때, 정부와 국민이 이에 현혹돼 방심한다면 큰 안보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수치로 매겨진 군사력은 평화를 보장하는 방패가 아니다. 그 방패를 맹신하는 자만과 방심이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국가 방위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 감소를 이유로 대북 경계 태세를 완화하거나 방어 훈련을 축소하려는 움직임, 합당한 보완대책 없이 이념적·정치적 이유에서 전시작전권 전환을 밀어붙이는 정책, 북한의 군사력 증강을 초래할 대북 제재 해제에 집착하는 주장들, 실탄도 없이 경계 임무를 서고 있던 최전방 부대의 해괴한 모습 등은 그런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말해준다.
이용준 한미우호협회 회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朝鮮칼럼] ‘군사력 세계 5위’라는 착시에 취하지 마라
협회 이용준 회장(한미우호협회 회장, 前 외교부 북핵대사)이 조선일보(8.25일자)에 기고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朝鮮칼럼] ‘군사력 세계 5위’라는 착시에 취하지 마라
입력2026.08.24. 오후 11:56
규모에 불과할 뿐
핵무기 앞에선 무의미
동북아 최약체는 한국
방심과 자만은 치명적
훈련 축소와 전작권 전환
빈총 경계는 기우 아니다
북한이 ‘항일빨치산 결성 90주년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인화성-17형을 공개했다. ‘괴물 ICBM’
으로 불리는 화성-17형은 최대 사거리 1만 5000㎞의 다탄두 미사일로 미국 전역을 동시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은 이날 핵무기 선제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는 올해 연례 군사력 평가에서 한국을 조사 대상 145국 가운데 5위로 평가했다. 2024년 세계의 열강 영국과 프랑스를 추월하고 세계 5위에 오른 이래 3년째 같은 순위다. 한국 앞에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뿐이다. 지난 반세기 이상 우세한 대남 군사력으로 안보를 위협해 온 북한은 이 평가에서 30위 초반으로 밀렸다. 이는 한국의 세계 10위권 경제력, 첨단 방위산업 육성, 지속적인 군사력 증강의 성과가 반영된 결과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북한은 1960~1970년대 시도 때도 없이 무장 특수부대를 남파해 파괴 공작을 일삼았다. 해외에서 한국 대통령 암살 작전을 벌이던 1980년대, 서해 5도 해상에서 수시로 기습 공격을 벌이던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국민은 북한이 언젠가 다시 벌일지 모르는 전쟁의 공포를 곁에 두고 살았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이래 북한의 직접적 군사 도발은 거의 사라졌고 미사일 발사 등 간접 도발로 전환되었다. 그런 태세 전환의 배경에는 한국의 군사력 성장과 북한의 군사력 피폐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런 상황 변화의 결과 오늘날 한국 국민은 과거 어느 때보다 북한의 침공에 대한 두려움을 거의 잊은 채 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세계 5위 군사력’이라는 국제적 평가는 정부와 국민의 안도감을 더 증폭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사력에 대한 이런 격상된 평가를 마냥 기뻐하고 안도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세계 5위 군사력’이라는 칭호가 유발하는 심각한 착시현상과 그에 따른 방심이 초래할 부작용 때문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첫 번째 착시현상은 군사력의 물리적 규모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신력과 판단력, 전략과 지휘 능력이 종종 군사력의 절대량을 압도한다. 알렉산더, 한니발, 카이사르 등 고대의 유명한 전략가들은 몇 배가 넘는 강대한 적군을 상대로 연이어 압승을 거두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현대전에서도 3차례 대(對)이스라엘 전쟁에서 연패한 아랍연합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고전한 러시아와 미국, 대베트남 전쟁에서 참패한 프랑스·미국·중국,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 등 사례를 보면, 전쟁의 승패가 물리적 군사력의 크기나 핵 보유 여부와 직결된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착시현상은, 한국이 세계 5위 군사국일지는 모르나 정작 한반도 안보가 걸린 동북아 지역에서는 여전히 군사적 서열이 최약체에 속한다는 점이다. 한반도는 세계 1~3위 군사력을 가진 미국, 러시아, 중국이 둘러싸고 있다. 일본도 공군력, 해군력, 미사일 방어력에서는 한국과 대등하거나 한 수 위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에서 유독 북한의 군사력만이 한국보다 열세이나, 그건 핵무기를 포함하지 않을 때의 얘기다. 따라서 한국의 세계적 군사력 서열이 세계 5위로 격상되었다 할지라도 동북아의 군사력 판도나 한반도 안보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세 번째 착시현상은, 이 같은 군사력 평가에 핵무기까지 포함할 경우 한국의 군사력 서열은 그야말로 역내 국가 중 최약체를 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핵무기는 무기의 성격상 아무 때나 쉽게 사용 가능한 무기가 아니지만, 재래식 무기와 비교할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무기다. 그런 핵무기를 동북아 6국 중 4국은 이미 보유하고 있고, 일본도 핵무장을 위한 핵심 인프라를 오래전부터 구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 서열 5위는 별다른 의미를 갖기 어렵다.
‘세계 5위 군사력’ 평가에 내포된 이런 착시현상들을 감안할 때, 정부와 국민이 이에 현혹돼 방심한다면 큰 안보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수치로 매겨진 군사력은 평화를 보장하는 방패가 아니다. 그 방패를 맹신하는 자만과 방심이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국가 방위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 감소를 이유로 대북 경계 태세를 완화하거나 방어 훈련을 축소하려는 움직임, 합당한 보완대책 없이 이념적·정치적 이유에서 전시작전권 전환을 밀어붙이는 정책, 북한의 군사력 증강을 초래할 대북 제재 해제에 집착하는 주장들, 실탄도 없이 경계 임무를 서고 있던 최전방 부대의 해괴한 모습 등은 그런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말해준다.
이용준 한미우호협회 회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朝鮮칼럼] ‘군사력 세계 5위’라는 착시에 취하지 마라